옛날에는 장례를 대부분 무속의례로 치렀다. 때문에 번잡하고 까다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정자(程子 - 중국 송나라의 정명도(程明道, 1032~1085)와 정이천(程伊川, 1033~1107) 두 형제)는 '예는 옛 제도에만 얽매여서는 안되니 현재의 기풍이 중요하다.'고 하였고,
주자(朱子, 1130 ~ 1200)는 '번욕한 고례(古禮)를 어찌 그대로 행할 수 있겠는가. 예는 시대성이 있어야 한다. 예의 생명은 시대성이다. 시대에 맞게 예를 만들어야 인(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며 가례(家禮)를 편찬했다.
우리는 이 주자의 가례를 고려말에 성리학의 도입과 함께 받아들였고,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주자가례에 따른 관혼상제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백성은 번잡한 무속례에 따른 까다로운 상례를 여전히 신봉하였고, 이에 조선중기에 와서 주자가례 가운데 상례부분을 특화한 상례비요(신의경)를 만들어 보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재 21세기 한국의 장례문화를 이야기할때, 12세기 중국 송나라때 만들어진 이 주자의 가례를 '전통'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옛 것 중에 좋은 것은 전통(傳統)이고 나쁜 것은 인습(因襲)이라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전통이고 무엇이 인습인가 하는 것은 딱 잘라 구별하기 힘든일이다. 누군가 판단해서 강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옛것이니 일단은 지키고 보자'는 식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다.
'옛것이니 일단은 지키고 보자'는 식의 결론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통 장례'가 아닐까 한다.
중국의 오랜 전통 가운데 전족(纏足)이라는게 있다. 무려 천년간이나 지속되었던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전통과 대비되는 대표적인 인습(因襲)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족(纏足)과 같은 인습이 우리의 장례 속 '염습(殮襲)'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전통은 사회적 유산으로 현대적 가치기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의 가치에 대해 신념을 가질 수 없는 경우라면 전통이 아니라 '인습'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본질을 모른다면 그것은 전통이 아니라 인습을 따르는 것이 된다.
번욕한 고례(古禮)를 어찌 그대로 행할 수 있겠는가.
예는 시대성이 있어야 한다. 예의 생명은 시대성이다.
시대에 맞게 예를 만들어야 인(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주자(朱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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