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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엔딩

전문 안치센터3

대만의 시행착오, 한국은 그 다음 단계에서 출발할 수 있다

 

이전글에서 우리는 병원과 장례를 분리한 나라들 - 대만, 중국, 홍콩, 일본 - 을 훑어보고, 유독 한국만 그 결합을 법으로 완성시킨 이유까지 살펴봤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대만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단순히 "분리에 성공한 나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막상 시행해보니 이런저런 문제에 부딪혔고, 그 문제들이 우리가 구상하는 '전문 안치센터' 모델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거의 그대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왜 대만은 병원에서 장례를 몰아냈을까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2002년 대만이 장사관리조례(우리의 장사법에 해당)를 처음 만들 때만 해도, 재향군인병원이나 군병원은 오히려 염습·빈소·제사 시설을 병원 안에 두는 게 합법이었다. 가족 없이 세상을 떠나는 상이군인들을 위해 병원 근처에서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주자는 취지였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이 치료 공간과 장례 공간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 자체가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의료기관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인데, 병원 안에서 빈소 운영과 조문이 이루어지면서 의료 환경과 장례 환경이 뒤섞인다는 비판이 커졌다. 여기에 영안실 운영을 민간 업체에 위탁한 병원이 늘어나면서 유족 유치 경쟁과 장례상품 강매 같은 상업화 문제가 잇따랐다. 결국 대만 정부는 문제의 원인을 일부 업체가 아니라 병원 내 장례 기능 자체에서 찾았고, 병원은 시신의 일시 안치만 담당하고 장례는 별도의 전문 시설에서 치르도록 제도를 개편하게 된다.

 

2012년 "병원은 염습·빈소·제사 시설을 둘 수 없다"고 못박고(제65조), 5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7년 7월 1일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어기면 우리 돈으로 천만 원대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시신을 아예 못 받는 건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대만이 "안치"와 "추모"를 서로 다른 것으로 봤다는 점이다. 병원 태평간(영안실)의 냉동·냉장 보관 기능 자체는 그대로 남았다. 병원이 없앤 건 그 안에서 이루어지던 빈소 차리기, 위패 세우기, 제사 지내기 같은 '추모 행위'였다. 냉동 보관료는 하루 400대만달러, 냉장은 200대만달러로 못 박혔고, 그 이상은 어떤 명목으로도 추가 청구할 수 없다. 위탁 운영업체가 유족에게 장례상품을 팔러 다니는 것도 엄격히 금지된다.

 

정리하면 이런 그림이다.

  • 병원 = 시신의 물리적 관리(냉동·냉장)만 담당
  • 빈소·조문·제사 = 공립 장례식장(殯儀館)으로 완전히 이전

병원은 병원 일만 하고, 추모는 추모를 위해 설계된 별도 공간에서 하라는 것.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전문 안치센터' 모델의 뼈대와 거의 똑같다.

 

타이베이시 빈장관리처 제2빈의관 장례모습

 

그런데 시행해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흥미로운 부분이다. 대만은 좋은 취지로 법을 밀어붙였지만, 현실은 곧바로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공립 장례식장의 그릇이 너무 작았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빈소를 몰아내면 그 수요가 고스란히 공립 장례식장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부지가 좁아서 확장이 쉽지 않았다. 결국 큰 홀을 작은 홀로 쪼개거나, 주차장을 시신 냉동구역으로 개조하는 식의 임시방편으로 버텨야 했다.

 

유족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빈소가 집에서 너무 멀어서 상 치르기가 불편하다"는 것. 게다가 설이나 음력 7월(백중 무렵)처럼 전통적으로 출상을 꺼리는 시기가 되면, 다들 시신 냉동 보관 기간을 늘려달라고 요청이 몰려서 냉동 설비 운용에 상당한 부담이 걸렸다.

 

더 눈에 띄는 건, 감찰원이 2017년에 지적한 내용이다. 전국에 무려 67개 업체가 허가도 안 받고 사설로 '예당(禮堂)과 빈소'를 차려놓고 영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공이 준비한 시설이 실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니, 사람들이 결국 불법 사설 시설로 흘러간 셈이다.

 

전통 풍습과의 충돌도 있었다. 대만(그리고 한국도 비슷하지만)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옆에 곧바로 위패를 세우고 밥을 올리는(豎靈·拜飯) 관습이 있는데, 병원에서 이런 행위 자체를 금지해버리니 "시신과 위패는 원래 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온 것이다. 결국 병원이 위패나 영정, 제수품 정도는 임시로 놓을 수 있게 하자는 절충 조항 개정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대만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 이야기를 정책 실패담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반대다. 대만은 "병원과 장례를 분리한다"는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시행 이후에도 그 방향을 되돌리자는 논의는 없었다. 문제가 된 건 방향이 아니라 속도와 준비였다. 공립 시설을 충분히 늘리지 않은 채 병원에서 먼저 손을 떼게 하니, 그 공백을 사설 불법 시설이 메꾼 것이다.

 

대만이 걸린 지점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전문 안치센터' 모델이 애초에 왜 이런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하는지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방향은 맞았지만 준비가 부족했던 대만의 시행착오는, 한국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지도가 될 수 있다.

 

문제 1. 공립 시설의 그릇이 너무 작았다

 

대만은 병원에서 빈소를 몰아내면서, 그 수요를 받아낼 그릇을 오직 '공립 장례식장 확충'이라는 한 가지 경로에만 의존했다. 공립 시설은 부지도 좁고 예산도 한정되어 있어서, 확장 속도가 수요 이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전문 안치센터 모델이 '지정·위탁' 구조를 핵심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공공이 모든 시설을 직접 짓고 운영하겠다는 게 아니라, 공공이 기준과 요금 체계를 설계하고 민간이 그 기준 안에서 시설을 짓고 운영하도록 하는 구조다. 확충의 부담을 오직 정부 예산과 공유지에만 지우지 않고, 민간 자본을 공공의 통제 아래 끌어들여 확충 속도 자체를 높이는 설계인 셈이다. 대만이 걸렸던 "그릇이 안 커진다"는 문제는, 애초에 그릇을 키우는 주체를 공공 하나로 한정하지 않으면 상당 부분 피해갈 수 있다.

 

문제 2. 빈소가 너무 멀어서 상 치르기 불편했다

 

이건 사실 대만이 "안치"와 "추모"를 완전히 분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대만의 새 제도에서도 빈소(추모 공간)는 여전히 시신이 냉동 보관된 장소, 즉 공립 장례식장에 딸려 있어야 했다. 그러니 그 장례식장이 어디 있느냐에 유족의 동선이 그대로 종속됐다.

 

전문 안치센터 모델은 이 지점을 다르게 설계한다. 물리적 처리는 안치센터에서 마무리하고, 추모는 유족이 원하는 장소 - 집 근처 종교시설이든, 지역 커뮤니티 공간이든 - 에서 원하는 시점에 치를 수 있게 한다. 안치센터가 집에서 멀리 있어도 상관없다. 유족이 매일 거기까지 오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빈소가 멀다"는 불만은 안치와 추모가 한 장소에 묶여 있다는 전제에서만 성립하는 문제인데, 그 전제 자체를 없애는 게 이 모델의 출발점이다.

 

문제 3. 명절·백중 무렵 냉동 설비에 몰리는 수요

 

대만은 출상을 꺼리는 시기가 되면 다들 냉동 보관을 연장해달라고 요청이 몰려서 설비 운용에 압박이 걸렸다. 이건 "화장·발인 날짜를 좋은 날에 맞추려는 수요"가 "제한된 냉동 용량"과 정면으로 부딪힌 결과다.

 

전문 안치센터가 데이터 기반의 통합 존엄 플랫폼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제안은 바로 이런 상황을 겨냥한 것이다. 전국 안치센터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으면, 특정 지역 특정 시설에 수요가 몰릴 때 인근 센터로 자동 배분하는 게 가능해진다. 게다가 추모와 안치를 분리해두면, "이 좋은 날짜에 발인까지 다 끝내야 한다"는 압박 자체가 줄어든다. 화장은 미리 끝내두고, 정식 추모는 계절이 지난 뒤에 따로 치러도 되기 때문이다. 대만이 명절마다 겪은 병목은, 결국 "정해진 좋은 날짜에 모든 절차를 다 몰아넣어야 한다"는 구조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 모델은 그 압축 구조 자체를 풀어버린다.

 

문제 4. 무허가 사설 빈소가 67곳이나 생겨났다

 

공공이 준비한 그릇이 부족하니, 결국 사람들이 정식 허가 없는 사설 시설로 흘러갔다. 이건 규제만 있고 그 규제를 충족시킬 합법적 공급이 부족할 때 항상 벌어지는 일이다.

 

지정·위탁 구조는 애초에 이걸 막기 위한 설계다. 민간이 이 시장에 들어오는 걸 막는 게 아니라, 공공이 정한 기준(표준 요금, 품질 인증, 정기 평가)을 충족하는 사업자를 적극적으로 찾아 지정하고 위탁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규제는 있는데 합법적 공급이 없어서 불법으로 흐르는" 상황 자체가 애초에 설계 단계에서 차단된다. 대만의 67개 무허가 업체는 사실 시장의 수요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 수요를 합법적으로 흡수할 통로가 없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문제 5. "시신과 위패는 원래 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전통과의 충돌

 

이건 가장 섬세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다. 대만은 병원에서 위패·제사 관련 행위 자체를 일괄 금지하면서, "죽은 이 옆에 곧바로 위패를 세우고 밥을 올리는" 오랜 관습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전문 안치센터 모델은 이 마찰을 처음부터 피해갈 여지가 있다. 이 모델이 금지하는 건 "정식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받는 행위"이지, 유족이 안치센터에서 간단히 고인의 영정이나 위패를 잠시 모시고 마음을 정리하는 최소한의 행위까지 막을 필요는 없다. 대만처럼 "일체의 제사 행위 금지"로 선을 긋는 대신, "본격적인 조문·빈소 운영은 안 되지만, 유족이 잠시 고인과 마주하며 애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과 시간은 보장한다"는 식으로 설계하면, 전통과의 충돌 지점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홍콩의 '고별실' - 조문객을 받지는 않지만 유족이 짧게 작별 의식을 치를 수 있는 공간 - 이 이런 절충의 좋은 참고 사례다.

 

정리하면

 

대만은 병원과 장례를 분리하는 방향이 가능하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함께 준비해야 하는지도 보여주었다. 공공 시설의 공급, 민간 참여의 제도화, 전국 단위의 안치 네트워크, 그리고 전통 의례를 수용할 최소한의 유연성까지. 대만이 시행 과정에서 치른 비용은 한국이 같은 제도를 설계할 때 미리 반영할 수 있는 경험이 된다. 다시 말해, 한국은 대만이 시행착오를 거쳐 도달한 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