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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엔딩

병원 장례식장, 왜 한국에만 남았을까

죽으면 왜 병원 지하로 가야 할까... 동아시아는 다 지나온 길, 한국만 되돌아가지 않은 길


병원 안에서 시신을 염하고 조문을 받는 풍경... 사실 이건 한국만의 것이 아니었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한때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다. 20세기 후반 급격한 도시화로 아파트·맨션 같은 공동주택이 보편화되면서, 전통적으로 '집'에서 치르던 장례를 더는 집에서 할 수 없게 됐다. 그 빈자리를 메운 게 사망 진단을 받은 병원의 공간이었다. 대만도, 중국도, 일본도, 홍콩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단계를 거쳤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나라들은 시간이 지나며 하나같이 "병원과 장례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한국만 정반대로, 그 결합을 아예 법으로 못박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타이베이시 빈장관리처 제2빈의관
타이베이시 빈장관리처 제2빈의관 회은청
타이베이시 빈장관리처 제2빈의관

 

대만 - 2017년, 법으로 병원에서 장례를 몰아내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대만이다. 2002년까지만 해도 재향군인병원 등에 장례 시설 부설이 허용됐지만, 위탁 업체의 강매·경쟁 문제가 쌓이자 2012년 법을 고쳐 병원의 장례업 겸업을 전면 금지했고(殯葬管理條例 제65조), 2017년 7월 1일부터 이를 실제로 시행했다. 이름하여 의빈분류(醫殯分流). 병원은 시신 냉동·냉장 보관만 하고, 빈소·조문·제사는 공립 장례식장(殯儀館)으로 완전히 넘겼다. 냉동 보관료는 하루 400대만달러, 냉장은 200대만달러로 못 박혔고, 위탁업체가 유족에게 장례상품을 강매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됐다.


시행 후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공립 장례식장이 넘겨받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큰 홀을 쪼개고 주차장을 냉동구역으로 바꾸는 임시방편이 이어졌고, "빈소가 집에서 너무 멀다"는 유족 불만, 무허가로 사설 빈소를 차려 영업하다 적발된 업체가 전국 67곳이나 됐다는 감찰원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 문제들이 "병원과 장례를 분리하자"는 방향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문제가 된 건 방향이 아니라 준비 속도였다.

 

중국 북경창평빈의관


중국 - 사실은 대만보다 훨씬 나중, 그것도 겨우 반년 전 일


중국이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 영업을 몰아낸 게 오래전 확립된 정책처럼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2026년 1월 12일에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등 6개 부처가 공동으로 발표한 아주 최근 규정이다. 병원이 장례용품을 진열·판매하거나 영안실을 외주 운영해 제3자가 장례서비스를 하도록 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고, 시신은 '임시 안치구역'에만 두고 원칙적으로 24시간 안에 장례식장(빈의관)으로 넘기도록 했다. 다만 이 규정이 나온 배경은 '존엄 설계' 차원의 개혁이라기보다, 2024년 10월부터 시작된 장례업계 부패 근절 전문 행동의 후속 제도화에 가깝다. 방향은 비슷해 보여도 출발 동기는 다르다.


홍콩 - 병원 안에서 '작별'만 하고, '장례'는 금지


홍콩은 처음부터 병원과 장례식장의 역할이 명확히 나뉘어 있었다. 병원 영안실은 시신이 라이선스 장례식장(Funeral Parlour)으로 넘어가기 전 머무는 곳일 뿐이고, 실제 조문은 홍콩 전역에 단 7곳뿐인 정식 장례식장에서만 이루어진다. 다만 병원 내 '고별실(Farewell Room)'에서는 꽃·사진·만련 정도만 놓고 약 30분간 간단한 작별 의식을 치를 수 있는데, 이건 특수한 경우에 한정된 게 아니라 해당 병원 사망자 유족이면 대부분 이용 가능한 상시 서비스다. 최근에는 안치 수요 폭증으로 병원 영안실 가동률이 100%를 넘는 경우가 잦아, 무료 보관 기간을 28일로 늘리는 등 병목 관리에 애를 먹고 있기도 하다.


일본 - 법이 아니라 시장이 밀어낸 경우


일본은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의료 위생 기준이 강화되고 민간 장례산업이 커지면서 병원 내 장례 관행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지금 일본 병원의 영안실(霊安室)은 장례업체가 시신을 인수하러 오기 전까지 몇 시간만 머무는 임시 대기실 수준으로 축소돼 있다. 다만 최근엔 정반대 방향의 새로운 문제도 겪고 있다. 화장장 예약이 밀려 며칠씩 대기해야 하는 지역이 늘면서, 시신 보관만 전문으로 하는 민간 '유해 호텔(遺体ホテル)'이 도시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 이건 공공이 설계한 모델이 아니라 병목 현상에 시장이 자생적으로 반응한 결과다.


법으로 밀어붙였든(대만·중국), 처음부터 설계로 분리했든(홍콩), 시장이 자연스럽게 정리했든(일본), 방식은 달라도 방향은 하나였다. 병원은 병원 일만 하고, 장례는 장례를 위한 공간에서.


한국 - 유일하게, 법으로 '결합'을 완성시킨 나라


한국도 처음엔 같은 길 위에 있었다. 1973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오히려 병원 영안실은 불법으로 간주됐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병원은 임종이 임박한 환자를 퇴원시켜 집에서 눈을 감게 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이 시점부터 한국은 정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1981년, 가정의례법 시행령 개정으로 장례식장의 도심 입지 규제가 풀렸다. 병원 영안실을 도심에 둘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전환점은 2010년 1월 31일이었다. 보건복지부령 제158호로 의료법 시행규칙 별표3이 개정되면서, "종합병원·병원·한방병원·요양병원은 장사법 제29조에 따른 장례식장을 설치할 수 있다"는 조항이 명문화됐다. 그것도 그냥 신설에 그치지 않았다. 부칙에 경과조치를 두어, 이 규칙이 시행되기 전부터 이미 병원 안에 있던 장례식장들까지 전부 '적법하게 설치된 것'으로 소급 인정해줬다.


대만이 2017년에 "병원은 이제부터 장례를 할 수 없다"고 선언한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은 2010년에 "병원은 원래부터 장례를 해도 됐던 것으로 하자"고 선언한 셈이다. 방향이 완전히 반대다.


왜 하필 한국만 이 방향으로 갔을까


같은 문제를 겪고도 대만·중국·홍콩·일본은 분리로, 한국만 결합으로 갔다면, 그 차이를 만든 조건이 있을 것이다.


첫째, 병원이 장례식장을 '놓을 수 없는' 재무 구조였다. 한국은 건강보험 수가를 국가가 낮게 고정하는 저수가 체계다. 정작 진료 부문에서는 적자를 보는 병원이 많고, 이걸 메우는 게 장례식장·주차장·매점 같은 '의료외수익'이다. 대학병원의 의료외수익을 분석한 연구를 보면, 국립대병원은 총수익 대비 의료외수익 비율이 8.2%로 사립대병원(4.0%)보다 훨씬 높은데, 그 이유로 장례식장·주차장·임대료 의존도가 꼽힌다. 최근 몇 년간 '빅5' 대형병원들의 적자를 장례식장·주차장·기부금 수익이 메꿔주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한국 병원에게 장례식장은 부업이 아니라, 저수가 체계가 만든 구조적 적자를 메우는 핵심 수익원 중 하나였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은 장례업에서 손을 떼라"는 정책은 병원 경영에 실질적 타격이 되고,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렵다.


둘째, 대체할 공공 인프라가 처음부터 없었다. 대만은 병원에서 장례를 몰아내기 전에 이미 공립 殯儀館 네트워크가 존재했고, 그 그릇을 키우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한국은 1980년대 아파트화로 가정 장례가 급격히 무너지던 시점에, 이를 받아줄 공공 장례 인프라가 애초에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 공백을 병원이 메웠고, 정부도 대안을 마련하는 대신 이미 벌어진 현실을 뒤따라 추인하는 쪽을 택했다. 1981년 입지규제 완화도, 2010년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도, 둘 다 새 판을 설계했다기보다는 이미 자리잡은 관행을 사후적으로 합법화한 성격이 짙다.


셋째, 병원 장례식장은 '혐오시설'로 인식되지 않았다. 화장장이나 공동묘지와 달리, 병원 부속 장례식장은 지역 주민들의 님비 저항을 거의 받지 않는다. 오히려 장례식장이 딸린 대형 종합병원이 들어선다는 건 지역에 좋은 의료 인프라가 생긴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만처럼 "병원에서 장례식장 빼라"는 법을 밀어붙이면 병원도 지역사회도 반발할 유인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 반발이 애초에 형성되지 않았다.


정리하면, 대만·중국이 법으로 분리를 강제할 수 있었던 건 '병원이 이 사업을 포기해도 버틸 수 있는 구조'와 '대체할 공공 인프라'가 있었기 때문이고, 한국은 정반대로 병원이 이 수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재무구조 속에서, 대체 인프라도 없이, 정치적 반대급부도 없는 상태로 관행이 먼저 자리잡고 법이 뒤늦게 그걸 추인하는 순서를 밟았다. 분리를 강제할 이유는 약했고, 결합을 유지할 이유는 강했던 셈이다.


같은 문제, 정반대의 결론


동아시아 국가들이 겪은 문제는 사실 똑같았다. 병원이 사후 시설을 겸업하며 생기는 강매, 이해상충, 위생·심리적 불편. 대만과 중국은 이 문제를 "분리"로 풀었다. 홍콩은 애초에 섞이지 않게 설계했다. 일본은 시장이 알아서 걷어냈다. 그런데 한국은 이 문제를 "겸업의 정식화"로 풀었다. 병원 장례식장을 없애는 대신, 오히려 법적 근거를 만들어 세워준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전국 어디를 가나 있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전문화되고 대형화된 '병원 지하 장례식장' 구조다. 다른 나라들이 "이 결합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안, 한국은 거의 유일하게 "이 결합을 어떻게 법적으로 완성할 것인가"를 고민해온 셈이다.

 

이 구조에서 제기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망을 진단하고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주체와, 그 죽음으로 수익을 올리는 주체가 같은 병원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중증 환자, 특히 암 병동 입원 환자들이 매일 오가는 동선 근처에서 장례 행렬과 조문객을 마주치는 구조는, 병원과 장례 공간을 물리적으로 분리해놓은 다른 나라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문제다.


병원 지하가 유일한 선택지였던 시대. 이웃 나라들은 이미 그 시대를 접었다. 한국만 아직, 그 시대를 법으로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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