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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엔딩

전문 안치센터를 위한 제도 설계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부터 시신은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필요한 행정 절차가 차질 없이 이루어지고, 화장이나 매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안정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는 한 개인이나 유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반드시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공공의 기능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러한 기능의 상당 부분을 병원 장례식장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맡겨 왔다. 병원은 삶을 위한 치료가 끝나는 장소인 동시에, 죽음 이후의 절차가 시작되는 곳이 되었고, 안치와 조문, 장례까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운영되어 왔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익숙한 방식이지만, 익숙함이 곧 가장 합리적이거나 지속 가능한 구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 안치센터는 장례를 대신하는 시설이 아니다. 지금까지 장례식장 안에 함께 묶여 있던 안치 기능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사회 기반시설이다. 즉, 고인을 안전하고 전문적으로 보호하며 이후의 장례 절차가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공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새로운 제도는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존 시스템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누가 운영하고 누가 책임질 것인지까지 함께 설계되어야 비로소 현실이 된다. 전문 안치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사회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 의료기관이 각각의 역할을 나누고, 이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를 함께 바꾸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대만의 醫殯分流 정책이 도입 초기 혼선을 겪었던 것도, 아이디어는 앞서갔지만 운영 주체와 이행 로드맵에 대한 설계가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제도 설계 자체가 이 제안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공공이 설계하고, 민간이 운영한다


전문 안치센터는 공공이 직접 모든 시설을 운영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공공은 기준을 만들고 관리하는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영은 일정한 자격과 시설 기준을 갖춘 민간기관이 맡고, 국가는 지정과 평가를 통해 서비스의 품질과 공공성을 관리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응급의료 이송체계나 사회복지시설의 위탁 운영처럼, 공공은 제도를 설계하고 감독하며 민간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표준이다. 안치 비용과 운영 기준, 시설 요건과 서비스 절차를 국가가 표준화하고, 정기적인 평가와 인증을 통해 품질을 관리해야 한다. 민간이 운영하더라도 공공의 기준 안에서 움직이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결국 민영화 아니냐"는 반론에 대하여


이 모델에 대해 "공공이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위탁 운영과 책임 회피는 다르다. 핵심은 국가가 표준·인증·감독 권한을 쥐고 있느냐이다. 응급의료 이송체계가 민간 구급차를 활용하면서도 공공의 기준으로 통제되듯, 전문 안치센터 역시 운영 주체가 민간이라도 서비스의 질과 공공성은 국가가 규정한 기준으로 담보될 수 있다. 오히려 공공이 모든 것을 직접 운영하려다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표류하는 것이, 위탁 구조가 감독 없이 방치되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이다.


병원의 역할은 치료에서 끝난다


현재 병원은 사망 확인 이후에도 시신 안치와 장례식장 운영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구조일 뿐, 의료기관의 본질적인 역할은 아니다.


병원이 담당해야 할 일은 환자의 치료와 사망의 의학적 확인까지다. 그 이후의 안치는 전문 안치센터가 맡고, 장례는 유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선택하는 구조가 역할의 경계를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이러한 변화는 병원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료기관이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하는 과정이다.


단계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현행 병원 장례식장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다. 현실적인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병원 안치 기능을 외부 전문 안치센터에 위탁하는 모델을 도입할 수 있다. 이후 병원은 장례 관련 시설을 점차 축소하고, 전문 안치센터가 안치와 이송을 전담하도록 기능을 이관한다. 장례식장은 병원 밖에서 다양한 형태로 운영될 수 있으며, 유족은 시간적 여유 속에서 원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병원의 수익 구조 변화는 공공 협약이나 정책적 지원을 통해 일정 부분 완충할 필요가 있다. 제도는 현실을 무시한 선언이 아니라, 기존 이해관계까지 고려한 전환 계획이어야 한다.


법과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병원 장례식장 중심의 구조를 전제로 만들어져 있다. 독립적인 전문 안치센터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안치시설의 법적 지위와 역할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망 신고, 시신 이송, 화장 예약, 공영장례 등 관련 행정 절차를 하나의 공공 시스템으로 연계하여 유족이 여러 기관을 개별적으로 찾아다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문 안치센터는 단순히 새로운 시설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행정과 서비스를 통합하는 새로운 기반시설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 공공 인프라를 향하여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경험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누군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마지막을 준비하지만, 누군가는 시간과 비용, 정보의 부족 속에서 서둘러 이별을 마무리해야 한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 차이를 줄이는 것이다.


전문 안치센터는 장례산업을 대체하려는 사업이 아니다. 병원의 역할을 부정하려는 제안도 아니다. 그동안 하나의 공간에 묶여 있던 의료, 안치, 추모를 각각의 기능에 맞게 분리하고, 그 사이를 공공의 기준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제안이다.


언젠가는 공공이 직접 책임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는 완성된 형태로 시작되지 않는다. 민간이 먼저 가능성을 증명하고, 공공이 이를 제도화하며, 사회가 새로운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병원 지하 영안실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시대를 넘어, 죽음 이후에도 선택권과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 전문 안치센터는 그 변화를 시작하는 첫 번째 인프라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