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유골함은 생각보다 작았다.
두 손으로 안아도 남을 만큼 작았다.
화장장을 나서며 어머니는 그 작은 함을 품에 안고 오래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차창 밖으로 겨울 끝자락의 흐린 빛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몇 번이나 말을 걸려다 그만두었다. 무슨 위로를 꺼내도 너무 가볍게 느껴질 것 같았다.
한참 뒤, 어머니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이별 모임에는 재즈를 틀자.”
그 말이 이상하게도 아버지다웠다.
화장을 마치고 일주일 뒤, 우리는 아버지가 살던 집 거실에 사람들을 불렀다.
장례식장은 아니었다. 검은 양복 줄지어 선 빈소도, 끝없이 들어오는 조의 화환도 없었다. 대신 거실 벽에는 아버지가 평생 모아 온 LP판들이 빼곡했고, 낮은 테이블 위에는 작은 유골함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아버지가 늘 마시던 맥주 한 캔.
안경 위에 얹어 쓰던 낡은 돋보기.
군데군데 밑줄이 그어진 책 한 권.
마치 잠깐 외출한 사람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아버지의 자리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울어야 하는 자리인지, 웃어도 되는 자리인지 몰라 어색해하는 얼굴들이었다.
그래도 결국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잠시 뒤,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소리가 거실에 천천히 번지기 시작했다.
낮고 깊은 음이 방 안 공기를 흔들자, 사람들도 조금씩 긴장을 내려놓았다.
아버지의 옛 직장 동료가 먼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노래 기억나세요? 야근 제일 힘들 때마다 사장님이 꼭 이거 틀었잖아요.”
“맞아. 그러면서 꼭 하던 말 있었지.”
누군가 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냈다.
“인생은 원래 피곤한 거야. 대신 음악은 좋아야지.”
순간 거실에 웃음이 터졌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듣다가 문득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듣던 바로 그 웃음이었다.
오래된 동네 친구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를 꺼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 이야기였다.
술김에 오토바이를 몰고 바다까지 갔던 이야기.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어머니를 기다리던 이야기.
어머니에게 처음 고백했다가 단번에 차였던 이야기.
어머니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세요.”
그런데도 눈가엔 웃음과 눈물이 함께 맺혀 있었다.
이야기들은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누군가에게 아버지는 엄격한 직장 상사였고,
누군가에게는 새벽 두 시에도 달려와 주던 친구였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철없던 술친구였고,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따뜻한 아버지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깨달았다.
사람은 죽어도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관계의 수만큼 다른 모습으로 오래 남는다는 것을.
유골함은 여전히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삶은 도무지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다.
아버지는 떠났는데,
거실 여기저기에서는 자꾸만 아버지가 다시 살아났다.
누군가의 웃음 속에서,
익숙한 말투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사이에서.
마치 아버지가 방 한쪽에 조용히 앉아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녁이 깊어질 무렵,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문이 닫힐 때마다 집 안은 조금씩 조용해졌다.
마지막 손님까지 돌아간 뒤,
어머니는 한동안 유골함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좋아하던 맥주 캔을 천천히 따더니,
작은 잔에 아주 조금 따라 유골함 앞에 내려놓았다.
잔 속에서 거품이 조용히 올라왔다.
어머니가 낮게 말했다.
“이제 편히 쉬어요.”
그 목소리는 울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래 사랑한 사람을 끝까지 잘 배웅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실에는 아직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트럼펫 소리가 낮고 길게 공기 속을 떠돌다가,
열어 둔 창문 틈 사이로 천천히 밤 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누군가를 아주 먼 곳까지 배웅하듯이.
잘 가셨지요, 아버지.
아버지 뜻대로.
끝까지,
아버지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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