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식장 빈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영정과 국화, 그리고 가늘게 피어오르는 향 연기이다.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어도 우리는 향을 집어 촛불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향로에 꽂는다. 이 작은 동작에는 천 년이 넘는 시간이 쌓여 있다.
냄새가 아니라 경계를 만드는 일
향은 흔히 좋은 냄새를 내는 물건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의례 속의 향은 역할이 훨씬 넓다. 향이 타오르는 순간 평범한 공간은 다른 질서가 작동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음식 냄새와 일상의 냄새가 섞여 있던 곳이 "지금 여기는 고인을 기리는 자리"라는 신호로 전환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향과 꽃을 올려 도량을 정화하는 의식을 따로 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물리적으로 냄새를 지우는 일과 상징적으로 경계를 긋는 일이 한 번에 이루어진다.
연기를 타고 오르는 소통
제사에서 향은 한층 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조선의 예서를 따르는 제례에서는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는 강신 절차에서 제주가 향을 피워 하늘의 영혼을 청하고, 이어 술을 모사 그릇에 부어 땅의 혼을 부른다. 위로 올라가는 연기는 하늘과 이어지고, 땅에 스며드는 술은 지상의 혼백과 이어진다는 구조이다. 조선 왕실의 향로가 향을 태운 연기로 천상의 혼을 내려 모시는 의식에 쓰였다는 설명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향이 음식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음식과 술이 조상에게 올리는 봉헌물이라면, 향은 그 봉헌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문을 여는 역할에 가깝다. 그래서 분향은 대개 절차의 맨 앞에 놓인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향의 첫인상
한국에서 향이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졌는지는 『삼국유사』의 묵호자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다. 중국 양나라에서 신라로 향이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그 쓰임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묵호자가 나서서 태우면 향기가 나고, 이것이 신성한 존재에게 정성을 전달한다고 일러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일화를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보기는 어렵지만, 후대 사람들이 향을 정성을 전하는 물질로 이해했음을 잘 보여 준다.
이후 향 문화는 불교와 함께 꽃을 피웠다. 백제 금동대향로와 고구려 고분벽화 속 향로는 향이 종교와 왕실, 장례를 잇는 고급 의례 문화였음을 말해 준다. 고려에 이르면 안식향, 사향, 자단향, 백단향은 물론 송나라와 대식국을 통해 들어온 침향, 용뇌, 정향, 몰약까지 쓰였다. 향은 외국 사신 접대와 왕실 행사, 불교 의식, 하사품에 두루 등장하는 귀한 물품이었다. 조선에 들어서는 유교식 국가 의례 속에 자리를 잡았고, 궁궐에는 향을 관리하는 향실까지 두었다.
같은 향, 다른 마음
같은 향이라도 어떤 전통 안에 놓이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불교에서 향은 부처에게 올리는 공양이자 수행의 상징이다. 향과 꽃, 등, 차, 과일, 쌀을 올리는 여섯 가지 공양 가운데 하나이며,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을 뜻하는 오분향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관점에서 향을 피우는 일은 고인에게 냄새를 보내는 행위라기보다, 향을 올리는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고 고인을 좋은 곳으로 보내려는 발원에 참여하는 일이다. 죽음 이후 일곱 번의 의례를 올리는 49재에서도 향은 이 긴 이별의 과정을 함께한다.
유교식 제례에서는 조상을 맞이하고 보내는 절차의 한 부분이며, 후손이 예를 갖추고 있음을 드러낸다. 오늘날의 장례식장에서는 종교적 해석보다 마지막 인사와 애도의 표현이라는 성격이 강해졌다. 제사가 이미 조상이 된 이를 정기적으로 모시는 반복 의례라면, 장례는 방금 세상을 떠난 이를 보내고 남은 이들이 상실을 받아들이는 통과 의례라는 점도 다르다.
흔히 듣는 설명,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
"향(香)은 향할 향(向)과 소리가 같아서 신에게 향한다는 뜻"이라는 설명을 들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럴듯하지만 정식 어원이라기보다 후대에 덧붙여진 상징적 해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향의 의미는 한자 음의 우연한 일치가 아니라 연기, 향기, 불, 공양, 정화, 예법이 오랜 세월 겹치며 만들어졌다.
"조상이 실제로 연기를 타고 내려온다"는 믿음 또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진 것은 아니었다. 신령의 존재를 전제하는 신앙적 측면이 분명히 있었으나, 제례는 동시에 후손이 조상을 기억하고 관계와 책임을 확인하는 사회적 행위이기도 했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인 다수는 유교를 자신의 종교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조상 의례와 그 가치는 종교의 경계를 넘어 폭넓게 이어지고 있다.
빈소에서의 향, 이렇게 올린다
현대의 문상 절차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상주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영정 앞으로 나아가 향을 한두 개 집어 촛불에 붙인다. 불꽃은 입으로 불지 않고 손으로 가볍게 흔들어 끈다. 두 손으로 공손히 향로에 꽂되, 여러 개라면 한꺼번에 쥐지 않고 하나씩 꽂는다. 이어 묵념하거나 절을 하고, 상주와 맞절하거나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짧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종교에 따라서도 방식이 다르다. 불교식과 유교식에서는 분향을, 기독교식에서는 보통 헌화를, 천주교식에서는 헌화와 분향을 함께 하기도 한다. 따라서 향이 유일한 예법은 아니다. 종교적 이유로 분향이 어려운 사람은 헌화, 묵념, 기도, 깊은 인사로 충분히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빈소의 안내와 유가족의 뜻을 따르는 것이 현대 장례의 예절이다.
정성은 연기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향은 태우는 물질인 만큼 실내에서 미세입자와 휘발성 물질을 만들어 낸다. 미국 환경보호청의 검토 자료는 향 연기가 실내 미세입자의 주요 발생원이 될 수 있다고 밝혔고, 질병관리청은 임산부, 영유아, 노인, 심혈관질환자, 호흡기 질환자가 실내 미세먼지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다만 제품과 노출량에 따라 위험의 크기가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의례의 뜻을 지키면서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필요한 만큼만 피우고, 환기와 화재 안전을 살피고, 향로를 가연성 물건 가까이 두지 않으며, 천식이나 향 과민성이 있는 사람 곁에서는 피하면 된다. 가족이 합의한다면 헌화나 묵념으로 대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향을 많이 태워야 정성이 크다는 생각은 오해이다. 의례의 핵심은 기억과 공경, 애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 향을 피우는가
정리하면 향에는 네 가지 마음이 겹쳐 있다. 공간을 정화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청하고, 부처에게 공양을 올리고, 산 사람이 고인에게 공경을 표하는 것이다. 향은 고인을 실제로 불러내는 물질이라고만 하기도, 단지 냄새를 지우는 도구라고만 하기도 어렵다.
향은 냄새와 연기, 불과 손동작, 정해진 순서와 기억을 한데 엮어 죽은 이와 산 사람 사이의 관계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 준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한 마음을 한 줄기 연기에 실어 올려 보내는 것, 우리가 빈소 앞에서 말없이 향을 꽂는 까닭은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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