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신을 처리하는 일은 위생과 법의 문제이고, 고인을 애도하는 일은 기억과 관계의 문제다. 영국에서 직접화장을 택한 사람의 86%가 따로 추모 모임을 열었다는 사실은, 이 둘을 한 건물과 한 시간표에 묶어 온 관행이 필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장례를 떠올리면 장면이 거의 정해져 있다. 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을 모시고, 빈소를 차리고, 사흘 동안 조문객을 맞는다. 입관과 발인을 거쳐 화장장으로 향한다. 시신을 처리하는 일과 고인을 애도하는 일이 한 장소, 한 시간표, 한 패키지로 묶여 있다.
그런데 이 둘은 정말 한 몸이어야 할까.
시신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법적 절차에 따라 화장하는 일은 위생과 안전, 운송, 시설 운영의 문제다. 고인을 기억하고 이별을 나누는 일은 관계와 종교, 문화, 개인의 선택에 속한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일을 같은 날, 같은 건물에서 한꺼번에 치러야 할 이유는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 이미 여러 나라가 이 둘을 떼어놓고 있다. 영국에서는 직접화장이 주요 장례 유형으로 자리 잡았고, 호주에서는 공공기관이 직접화장을 별도의 선택지로 안내한다. 캐나다에서는 화장 후 추모식이 독립된 장례 형식으로 제공된다.
이들 나라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장례의 소멸이 아니다. 장례는 반드시 하나의 장소, 하나의 상품이어야 한다는 관념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반전, '생략'한 사람들이 '추모'를 챙겼다
영국의 장례비용 조사기관 선라이프(SunLife)가 2026년 1월 발표한 사망 비용 보고서 2026에 따르면, 2025년 영국 전체 장례의 21%가 직접화장이었다. 2019년 3%에 불과하던 비중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급등한 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직접화장은 조문객이 참석하는 장례식 없이 시신을 곧바로 화장장으로 옮겨 화장하는 방식이다. 빈소 운영과 의전의 상당 부분을 빼니 비용도 적게 든다. 2025년 영국의 직접화장 평균 비용은 1,628파운드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돈을 아끼려고 예식을 건너뛰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진짜 흥미로운 대목은 그다음이다. 직접화장을 택한 사람 가운데 86%가 별도의 모임, 추모식, 웨이크(wake) 또는 이들의 조합을 마련했다. 직접화장과 후속 행사를 합친 평균 지출은 2,949파운드였다.

장례식을 생략하려는 마음과 고인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은 충돌하지 않았다. 이들은 애도의 시간을 장례 당일에서 떼어내 자기 사정에 맞는 날로 옮겼다. 사망 직후 경황없이 흘러가는 사흘 대신, 친척들이 모일 수 있는 날을 정하고, 고인이 좋아하던 음악을 틀고, 사진을 함께 넘겨 보며 충분히 슬퍼할 여유를 택한 셈이다. 종교적 예식이 필요하면 따로 치르고, 격식이 필요 없으면 소규모 모임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직접화장은 애도를 포기하는 방식이 아니다. 시신 처리와 애도 의식을 서로 다른 시간표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호주 공공기관이 시민에게 건네는 설명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묘지·화장시설 규제기관 Cemeteries & Crematoria NSW는 일반 화장과 직접화장을 구분해 안내한다. 일반 화장이 선택한 장례 의식과 결합해 진행하는 방식이라면, 직접화장은 화장 시점과 장소에 공식적인 장례 의식이 포함되지 않는 방식이다. 가족은 화장 전에 다른 장소에서 장례식을 열 수도, 화장 후 별도의 장소에서 추모식을 열 수도 있다. 공식 의식을 열지 않는 선택도 가능하다.
눈여겨볼 점은 공공기관의 태도다. 직접화장을 싼 대안으로만 소개하지 않고,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과 작별 의식을 진행하는 방식을 구분해 설명한다. NSW 주정부는 추모식이 반드시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에서 열릴 필요가 없고 자택 등에서 열어도 된다고 안내한다. 장례식이나 공식적인 작별 의식은 법적 의무도 아니다. 다만 화장과 매장에는 관련 법규에 따른 절차가 필요하고, 시신을 운송하고 처리하는 과정에는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절차는 법과 전문성의 영역이고, 애도는 가족의 영역이다. 빈소를 열지 않았다고 장례가 불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일본의 오와카레카이
비슷한 변화는 영국과 호주 밖에서도 확인된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정부는 장례식과 추모식을 구분해 안내하면서, 직접 화장이나 매장 뒤에 시신 없이 추모식을 여는 경우가 많고 그 시기도 유연하게 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는 장례를 화장으로 치르는 비율이 2025년 63.4%로 매장(31.6%)의 두 배를 넘었다. 미국장례지도사협회(NFDA)는 이 비율이 2045년 82.3%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협회의 2025년 소비자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8.3%가 장례식장이 아닌 곳에서 열린 장례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장례가 장례식장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일본의 사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일본 종활 서비스 업체 가마쿠라신쇼의 2026년 전국 조사에서 가족장이 47.0%로 가장 많았고, 일반장은 30.2%, 의식 없이 화장만 하는 직장(直葬)·화장식은 10.8%였다. 2020년 조사에서 일반장이 약 절반을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장례의 중심이 작은 형식으로 빠르게 옮겨간 셈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장례를 줄인 뒤에 따로 모임을 여는 방식이 함께 자라났다. 일본 장례 컨설턴트 기카와 미쓰코는 가족장과 직장이 늘면서, 일정을 달리해 여는 고별의 자리가 오와카레노카이(お別れの会), 시노부카이(偲ぶ会)라는 이름으로 열리게 됐다고 짚었다. 일본 경제지 프레지던트는 장례를 간소하게 치른 유족 가운데 시간이 지나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 모임을 따로 여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2018년에는 요코하마의 한 연회장이 결혼 피로연장이 줄어드는 현실에 맞춰 오와카레카이와 생전장 공간으로 용도를 바꿨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분리의 실패가 아니라 분리의 확장이다. 유족은 경황없는 사흘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가 생긴 때에 고인다운 방식으로 모임을 꾸린다. 고인이 좋아하던 꽃과 음악으로 공간을 채우고, 지인과 동료들을 불러 저마다의 기억을 나눈다. 시신 처리와 애도를 떼어놓으면 애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장소와 방식을 고를 수 있게 된다. 영국에서 직접화장을 택한 사람의 86%가 따로 추모 모임을 마련했다는 숫자와 일본의 오와카레카이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례식장은 반드시 시신을 모시는 곳이어야 할까
지금의 장례식장 중심 산업에서는 시신이 안치된 공간이 곧 조문과 추모의 공간이다. 시신을 모시는 기능과 유족이 고인을 기억하는 기능이 한 시설에 겹쳐 있다. 그래서 빈소를 열지 않으면 장례식장을 쓸 이유가 사라지고, 장례식장을 쓰면 빈소를 열어야 하는 구조가 된다.
두 기능을 분리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시신은 전문 안치시설에서 안전하게 관리하고, 화장은 별도의 화장시설에서 진행한다. 가족은 원하면 화장 전에 작별 인사를 하고, 화장 후에는 자택이나 종교시설, 지역사회 공간에서 추모식을 연다. 공식적인 추모식을 원하지 않으면 열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장례식장을 없애자는 주장이 아니다. 장례식장이 맡아온 기능을 하나씩 풀어 다시 살펴보자는 제안이다. 모든 시신이 빈소를 거칠 필요도, 모든 추모식이 시신 곁에서 열릴 필요도 없다. 서비스를 분리하면 장례식장은 유일한 길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시신 처리와 애도는 서로 다른 산업이다
시신을 처리하는 일에는 분명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시신 인수와 신원 확인, 사망 관련 서류 처리, 보관, 운송, 화장시설 인계, 유골 반환까지 각 단계가 정확하게 연결돼야 한다. 시신이 바뀌거나 기록이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위생과 안전을 지키고, 모든 과정을 법에 따라 기록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애도 의식은 결이 다르다. 고인의 삶을 돌아보고, 가족과 친구가 기억을 나누고,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의식을 치르거나 작별 인사를 하는 일이다. 정형화된 빈소와 의전 인력이 반드시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두 기능을 구분하면 산업의 분업도 가능해진다. 시신 처리 전문업체는 인수, 보관, 운송, 화장 절차를 맡는다. 안치시설 운영자는 안전한 보관과 인계 기록을 관리한다. 화장시설은 법적 절차와 운영 기준에 따라 화장을 진행한다. 추모 서비스 제공자는 가족장, 종교 의식, 별도 추모식, 온라인 추모를 지원한다. 사후 행정 지원 서비스는 유족이 처리해야 할 서류를 돕는다.
이 업무를 반드시 서로 다른 회사가 맡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 기업이 통합 제공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서비스가 분리되어 있어 유족이 필요한 것만 골라 조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규모와 깊이는 다르다
장례를 간소화하거나 빈소를 생략하면 고인에 대한 예우도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장례의 규모와 애도의 깊이는 같지 않다. 조문객이 길게 줄을 선 장례가 충분한 작별의 자리가 될 수도 있고, 가족 몇 명이 모여 고인의 음악을 듣고 사진을 바라보는 작은 추모식이 더 깊은 애도의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시신 처리 이후 별도의 의식을 마련하지 않는 것 또한 한 사람의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장례 형식을 모두에게 요구하지 않는 일이다. 시신은 안전하고 존엄하게 처리돼야 하며, 애도 의식은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에서 직접화장을 택한 사람의 86%가 별도의 추모 행사를 마련했다는 사실은 이 두 요구가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는 가장 간명한 증거다.
장례식이 없어도 애도는 가능하다. 빈소를 열지 않아도 고인을 기억할 수 있다. 시신을 전문시설에서 처리하더라도 가족은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이별을 나눌 수 있다.
한국 장례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시신 처리와 애도 의식을 왜 반드시 하나의 상품, 하나의 시설에 묶어야 하는가. 장례식장 중심의 산업에서, 시신 처리와 애도 의식을 필요에 따라 조합하는 산업으로. 세계의 직접화장과 별도 추모 서비스가 보여주는 변화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 참고 자료
영국
SunLife, Cost of Dying Report 2026 (https://www.sunlife.co.uk/funeral-costs/)
SunLife, Cost of Dying Report 2026 전문 PDF (https://www.sunlife.co.uk/siteassets/documents/cost-of-dying/sunlife-cost-of-dying-report-2026.pdf)
호주
Cemeteries & Crematoria NSW, Know more about my options (https://www.cemeteries.nsw.gov.au/community/planning-burial-and-cremation/know-more-about-my-options)
NSW Government, Different types of services (https://www.nsw.gov.au/family-and-relationships/deaths/after-a-death/organise-a-funeral-or-memorial-service/different-types-of-services)
Cemeteries & Crematoria NSW, Your burial and cremation rights (https://www.cemeteries.nsw.gov.au/community/your-burial-and-cremation-rights)
캐나다
Government of Nova Scotia, Events & Services (https://novascotia.ca/sns/access/individuals/events-services.asp)
미국
NFDA, 2025 Cremation & Burial Report 발표 자료 (https://www.nfda.org/nfda-releases-2025-cremation-burial-report-comprehensive-insights-to-guide-the-future-of-funeral-service/)
NFDA, Media Center (https://www.nfda.org/media-center/)
일본
鎌倉新書 お葬式に関する全国調査(2026년 제7회), 生協共済 くらしTips 자료 재인용 (https://coopkyosai.coop/about/kurashi-tips/pdf/kurashi-tips-senior_sub_24.pdf)
nippon.com, コロナ禍の葬儀、家族葬が主流に (https://www.nippon.com/ja/japan-data/h01344/)
吉川美津子, 마네현대 칼럼, 2020년 4월 26일 (https://gendai.media/articles/-/72110)
旦木瑞穂, PRESIDENT Online, 2017년 8월 23일 (https://president.jp/articles/-/22910)
神奈川新聞 カナロコ, 2018년 2월 12일 (https://www.kanaloco.jp/news/economy/entry-258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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