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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길을 다시 설계하다 ③]화장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길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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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코 2026. 10. 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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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매장을 포함한 복수의 장례 경로를 열자… 화장률 100%는 목표가 될 수 없다

한국에서 '자연장'이라고 하면 대개 나무나 잔디 아래에 유골을 묻는 장면을 떠올린다. 봉안당처럼 큰 건축물이 필요 없고 봉분과 석물도 줄일 수 있으니 분명 자연친화적이다. 그런데 이 자연장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자연매장(Natural Burial)'과 출발점이 다르다. 앞선 두 편에서 화장시설 병목과 순환형 묘역을 짚었다. 이번에는 화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실제로 고를 수 있는 길을 묻는다.


자연장과 자연매장의 차이

장사법상 자연장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수목·화초·잔디 등의 밑이나 주변에 묻거나, 해양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구역에 뿌려 장사하는 것이다. 2008년 도입된 이 제도는 2025년 1월 24일 산분장이 포함되면서 범위가 넓어졌다. 모두 화장을 전제로 한다.

반면 자연매장은 시신을 생분해성 관이나 수의로 흙에 직접 묻는 방식이다. 미국 Green Burial Council은 방부처리와 독성 물질을 피하고, 콘크리트 매장함을 쓰지 않으며, 묘역을 숲이나 공원에 가깝게 관리하는 것을 핵심 원칙으로 설명한다. 현행 장사법에서 '매장'은 시신이나 유골을 땅에 묻는 행위를 넓게 뜻하므로, 시신을 직접 묻는 일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 다만 자연매장이라는 별도 유형과 그에 맞는 관·수의·토양·묘역 관리 기준이 없을 뿐이다.

이 구분은 단어의 문제가 아니다. 자연장 선택지를 늘린다는 것은 화장 뒤의 안치 방식을 다양화하는 일이지, 화장 외의 장법을 늘리는 일이 아니다. 화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자연으로 돌아갈 길을 열려면 자연매장을 제도 안에서 따로 검토해야 한다.

자연매장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자연매장은 봉분형 매장으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봉분과 석물은 최소화하고, 생분해성 소재를 쓰고, 토양과 수질·식생을 고려해 입지를 정한다. 표식은 자연석이나 공동 추모비, 디지털 위치 정보로 대신할 수 있다. 시신을 오래 보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연의 분해 과정을 받아들이되, 위생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식이다.

한국에 도입한다면 '자연스럽게 묻는다'는 선언으로는 부족하다. 아래는 이 시리즈가 제안하는 최소 기준이다.

  1. 위생·안전: 인공물 제한, 관·수의 재질, 매장 깊이와 간격, 배수 조건. 현행 장사법 시행령은 시신 매장 깊이를 지면에서 1m 이상으로 정하는데, 이는 자연매장의 일반적인 관행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 토지·생태: 식수원·하천·농지 주변 배제, 침수와 산사태 위험 조사, 조성 후 토양·수질 모니터링.
  3. 표식·기록: 큰 비석 대신 작은 자연석이나 공동 추모비를 쓰되, 위치는 디지털 묘적부에 남겨 유족이 언제든 확인하게 한다.
  4. 장기 관리·재사용: 아무리 생분해성 관을 써도 영구 점유라면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다. 2편의 순환형 묘역과 결합해야 한다.

 

화장과 매장, 경쟁이 아닌 보완

2025년 국가데이터처 사회조사에서 19세 이상 국민이 선호하는 장례 방법은 화장 후 봉안시설 안치 36.5%, 화장 후 자연장 32.2%, 화장 후 산·강·바다에 뿌림 23.8%, 매장 6.8% 순이었다. 매장 선호가 한 자릿수라고 해서 매장 인프라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소수의 선택이라도 법이 인정한다면 실행할 최소한의 시설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화장률은 사람들이 실제로 한 선택의 결과를 보여줄 뿐이고, 선택권은 인프라로 측정해야 한다. 

정책이 할 일은 하나의 정답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화장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화장시설과 합리적인 예약 체계를, 봉안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과도한 비용과 이동을 요구하지 않는 시설을, 산분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안전하게 관리되는 공식 산분장을, 화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연매장과 순환형 매장을 마련해야 한다.

'친환경'이라는 말의 한계

자연에 부담을 전혀 주지 않는 장례 방식은 없다. 화장에는 연료와 시설이, 봉안에는 건축물과 관리 에너지가, 자연매장에는 토지와 생태 관리가, 산분장에는 허용 구역과 환경 관리가 필요하다. 어느 하나를 '가장 친환경적'이라고 선언하기보다 장법별 장단점을 공개해, 국민이 자기 가치와 가족의 조건에 맞게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사전 준비에서 시작되는 선택권

복수의 경로가 있어도 고인의 뜻을 확인할 수 없다면 실제 선택은 가족의 판단과 시설의 관행에 좌우된다. 보건복지부의 제3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2023~2027)도 국민 누구나 '좋은 죽음'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에 책임을 부여한다는 방향을 내놓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사전 의향서에 화장 여부뿐 아니라 봉안·자연장·산분 중 무엇을 원하는지, 자연매장을 원하는지, 추모 표식과 묘역 재사용에 동의하는지까지 적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이 시리즈의 제안이다. 고인의 뜻과 현실이 충돌할 수 있으니, 이행이 어려울 때는 대체 경로와 사유를 기록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보 공개와 비용 공개, 상담이 함께 있어야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작동한다.

지역별 장례 인프라망

복수의 경로를 전국에 똑같이 깔 필요는 없다. 대도시권에는 광역 장사시설로 화장·봉안 부족을 보완하고, 기존 공설묘지를 순환형 매장과 자연매장 구역을 갖춘 복합시설로 재편할 수 있다. 농산촌은 넓은 땅을 활용하되 분묘가 다시 흩어지지 않도록 집단화된 공설 묘역을 중심에 둔다. 화장로·봉안시설·자연장지·산분장·자연매장 구역이 하나의 공공 체계 안에서 기록으로 이어져야 한다. 앞으로는 화장로 숫자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고를 수 있는 장법의 종류와 각각의 처리능력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화장률 100%는 목표가 될 수 없다

정부가 화장률 100%를 공식 목표로 내건 것은 아니다. 다만 화장 중심 정책이 관성적으로 이어지면 사실상 그 방향으로 기울 수 있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우려다.

한국은 이미 화장 중심 사회다. 이제 필요한 것은 화장률을 더 올리는 일이 아니라, 화장 중심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는 수요와 가치까지 포괄하는 일이다. 화장률 100%를 목표로 삼으면 화장시설을 더 지으라는 압박만 커지고, 화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인프라는 계속 사라진다. 결국 화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시설 부족과 사회적 압력 때문에 화장을 택하게 될 수 있다.

장례정책의 새로운 기준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장법을 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원하는 장법을 안전하고 존엄하게 고를 수 있게 하는 것. 접근성(이동 거리와 비용), 회복력(위기 때의 대체 경로), 선택권(실제로 고를 수 있는 장법)이라는 세 잣대로 보면 지금의 한국은 화장 하나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어떤 장법이 가장 옳은가"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몇 개의 장례 경로를 준비하고 있는가"다. 죽은 사람에게도 선택권이 필요하고, 유족에게도 선택할 시간과 정보가 필요하다. 사회 전체에도 하나의 관문이 막혔을 때 작동할 다른 길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장례정책의 출발점이다.



※ 참고자료: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같은 법 시행령 매장 기준, 보건복지부 「제3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2023~2027)」, 국가데이터처 2025 사회조사, Green Burial Counc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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