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공안치시설’을 찾아보다 - 한국에 ‘공공안치센터’가 없는 이유
당연해 보이는 질문 하나
한국에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시신이 머무는 장소는 사실상 정해져 있다. 병원에서 사망하면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장례식장에 안치된 뒤에는 빈소를 차리고 염습과 입관, 조문, 발인 등의 절차가 이어진다. 시신을 모시는 공간과 장례를 치르는 공간이 하나의 시설 안에 묶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장으로 가야 한다고.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의 장례 인프라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영국·프랑스·독일·호주·홍콩·대만·싱가포르 등에서는 Public Mortuary, Municipal Mortuary 등 장례식장과 구분되는 공공 또는 공공성이 강한 시신안치시설이 존재한다.
물론 이들 시설이 모두 한국에서 말하는 ‘공공안치센터’와 같은 것은 아니다. 일부는 검시와 부검을 위한 법의학 시설이고, 일부는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공공 장례시설이며, 일부는 시신의 보관과 유족 접견, 장례업체로의 인계를 담당한다. 하지만 이들 사례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시신을 안전하게 모시는 기능과 장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은 반드시 하나의 시설, 하나의 사업자에게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홍콩, 공공안치시설도 ‘장례식장’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
홍콩은 이 개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홍콩 정부는 Victoria Public Mortuary, Fu Shan Public Mortuary, Kwai Chung Public Mortuary 등 여러 공공 mortuary를 운영해 왔다.
특히 Kwai Chung Public Mortuary는 눈여겨볼 만하다. 홍콩 정부 건축서(Architectural Services Department) 자료에 따르면 이 시설은 2005년 완공된 2층 건물로, 자연 경사면을 활용하고 내부에 조경 중정을 설치했다. 천창을 통해 자연광을 받아들이고 입구 앞에는 넓은 공간을 마련했다. 홍콩 정부는 이러한 설계를 통해 기존 mortuary가 가진 차갑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완화하려 했다.
공공안치시설이라고 해서 냉장시설과 작업공간만 갖춘 창고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뒤 찾아오는 장소인 만큼, 시신의 안전한 보관과 함께 유족을 배려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홍콩은 지금도 공공 mortuary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Victoria Public Mortuary 재배치 사업에는 냉장실, 냉동고, 부검실, X-ray 및 CT 시설, 신원확인 공간, 면담실과 유가족 지원공간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Public Mortuary가 장례식장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신을 공공시설에서 관리하는 기능과 이후 장례를 치르는 기능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영국, 지방정부가 지금도 새로운 Public Mortuary를 짓는다
영국의 사례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지방정부가 Public Mortuary를 독립적인 공공시설로 건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런던 Waltham Forest Council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Waltham Forest Council은 기존의 Walthamstow Public Mortuary를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공공 Mortuary를 건설했다. 기존 시설을 현대적인 목적형 시설로 교체하는 사업이 추진됐고, 새로운 시설은 2024년 완공됐다.
새로운 시설에는 시신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비롯해 가족을 위한 viewing room, 직원과 방문객의 별도 출입구, 별도의 시신 반입 동선, 주차공간과 조경 등이 마련됐다. 특히 시신을 다루는 공간과 가족이 이용하는 공간의 동선을 분리한 설계가 눈에 띈다.
이 사례에서 주목할 부분은 시설의 규모나 장비가 아니다. 시신을 모시는 기능을 장례식장의 부대시설로만 보지 않고, 지방정부가 별도의 공공시설로 구축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공공안치센터를 생각할 때 중요한 참고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공안치센터가 반드시 장례식장처럼 빈소와 접객실, 식당, 장례용품점 등을 모두 갖춘 복합시설일 필요는 없다. 시신의 반입과 반출, 냉장·냉동 보관, 가족의 접견, 직원의 작업동선을 분리한 안치 중심의 독립시설로 설계할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 ‘안치’라는 기능을 아예 별도로 본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비슷한 개념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용어부터 다르다. 병원 내 시신안치시설을 뜻하는 chambre mortuaire와, 병원 밖에서 장례를 준비하기 위한 chambre funéraire를 구분해서 쓴다. 여기에 더해 지방정부가 관여하는 municipal mortuary도 존재하며,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정부 지침은 이 두 시설의 기술적·시설적 기준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 역시 Leichenhalle, Leichenhaus 등 시신안치시설 개념이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독일 행정체계에서는 시신이 사망 장소에서 곧바로 특정 장례식장으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시신안치시설을 거치는 구조가 제도적으로 가능하다.
물론 이들 나라의 제도를 한국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지역마다 시설의 운영주체와 법적 성격이 다르고, 검시·부검·병원·장례업체의 역할도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죽은 사람을 어디에 모셔둘 것인가’라는 문제를 ‘장례식장을 어디에 예약할 것인가’와 반드시 동일한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 차이가 중요하다.
호주, 법에 아예 “지방정부가 설치한 morgue”라고 못 박아 놓았다
호주는 이 개념을 법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나라다.
호주 일부 주에서는 지방정부가 시신을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morgue 또는 public mortuary를 설치·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Western Australia의 보건법에는 “morgue established by the local government” - 지방정부가 설치한 morgue를 별도로 명시한 조문이 있다.
이것은 단순한 민간 장례업체의 영안실과 다르다. 지방정부가 시신의 안전한 보관이라는 기능을 공공서비스의 일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공공안치센터를 논의한다면 바로 이런 법적 구조를 참고할 수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별도의 시설 유형으로 ‘공공안치시설’을 규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만,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의 공공 장례 인프라
대만은 한국이 더욱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한국과 장례문화의 뿌리가 비슷하면서도, 공공이 장례 인프라를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 훨씬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대만 지방정부는 공공 장례시설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타이베이시에는 Mortuary Services Office가 있고 지방정부가 장례 관련 시설을 관리한다. 다른 지방정부에서도 공공 장례시설과 냉장안치시설을 운영한다.
다만 대만의 시설은 한국이 구상하는 순수한 ‘안치센터’와는 조금 다르다. 냉장안치뿐 아니라 빈소와 염습, 입관, 의례 공간 등이 함께 들어간 복합형 시설이 많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가 시신안치와 장례 인프라를 공공시설로 직접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장례문화가 비슷한 사회에서도 장례를 전적으로 민간 장례식장에만 맡기는 방식이 유일한 것은 아니라는 걸 대만이 보여준다.
싱가포르, “mortuary는 임시 보관용”이라고 법적으로 규정한다
싱가포르는 “안치와 장례서비스는 별개”라는 원칙을 가장 단호하게 법제화한 나라다. 보건부(MOH)는 국회 답변 자료에서, 병원과 보건과학청(HSA)이 관리하는 mortuary가 유가족이 시신을 인수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용도로만 운영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mortuary는 처음부터 장례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보관 전용” 시설로 성격이 규정돼 있다.
법의학 수사가 필요한 경우는 보건과학청 산하 법의학부(Forensic Medicine Division)가 별도로 운영하는 시신안치시설을 거치는데, 이 시설은 싱가포르종합병원 부지 안에 있지만 운영 주체는 병원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다. 이후 화장·매장 절차 역시 국가환경청(NEA)이 직접 운영하는 공영 화장장·납골당과 민간 시설이 병존한다. “안치는 국가·병원, 장례서비스는 별도”라는 원칙이 법적 정의 수준에서부터 갈라져 있는 셈이다.
공공안치시설과 장례식장은 무엇이 다른가
여기서 공공안치시설과 장례식장의 차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장례식장은 기본적으로 장례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다. 시신 안치뿐 아니라 빈소, 조문, 의전, 음식, 장례용품, 염습, 입관, 발인 등 다양한 서비스가 결합된다.
반면 공공안치센터는 기능을 훨씬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 시신을 안전하게 모시고, 냉장·냉동 보관하고, 유족이 시신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장례업체나 화장장 등 다음 단계의 시설로 인계하는 것이다.
빈소가 없어도 된다. 대형 접객공간도 필요 없다. 식당도 필요 없다. 장례용품 판매점도 필요 없다. 공공안치센터는 장례를 대신하는 시설이 아니라 장례를 시작하기 전에 시신을 안전하게 모시는 공공 인프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만들어지면 장례산업의 구조도 달라진다
현재 한국에서는 시신이 장례식장에 안치되는 순간 유족의 선택지가 사실상 하나의 사업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장례식장은 시신을 보관하면서 동시에 빈소와 장례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공공안치센터가 별도로 존재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시신은 공공안치센터에 모셔두고, 유족은 그 이후 장례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어떤 장례식장을 이용할 것인지, 빈소를 차릴 것인지, 가족끼리 조용히 작별할 것인지, 장례지도사에게 필요한 의전만 맡길 것인지, 바로 화장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안치와 장례서비스의 분리다. 이것은 단순히 장례비용을 낮추는 문제가 아니다. 장례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유족의 권리를 넓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공공안치센터는 ‘공공장례식장’과 달라야 한다
한국에서 공공안치시설을 만든다고 하면 흔히 공공장례식장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두 시설은 처음부터 다르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공공장례식장은 민간 장례식장과 비슷한 기능을 공공이 제공하는 시설이다. 반면 공공안치센터는 장례식장의 기능을 최소화하고 ‘안치’라는 핵심 기능만 공공영역으로 분리하는 시설이다.
이렇게 되면 장례식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간 장례식장은 계속 존재한다. 다만 시신의 안치 기능을 반드시 장례서비스와 묶어 판매해야 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공공안치센터는 장례산업의 경쟁을 없애는 시설이 아니라 오히려 장례서비스의 선택권을 넓히는 기반시설이 될 수 있다.
예상되는 반론들
물론 이 구상에도 현실적 걸림돌은 있다.
업계의 반발은 가장 먼저 예상되는 문제다. 안치 단계에서부터 유족을 확보해온 기존 장례식장·상조업계 입장에서는 공공안치센터가 자신들의 수익 기반을 흔드는 시설로 비칠 수 있다. 재원과 부지 문제도 만만치 않다. 냉장 안치시설은 특성상 기피시설로 인식되기 쉽고, 도심 접근성이 좋은 부지를 확보하는 일 자체가 난제다. 다만 홍콩 Kwai Chung나 영국 East London Forensic Centre의 사례처럼, 설계 단계에서 자연광·조경·유족 공간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면 기피시설이라는 인식 자체를 낮출 여지도 있다.
법적 정비도 선행돼야 한다.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체계에서 시신을 장례식장이 아닌 별도의 공공시설에 일정 기간 보관하는 것이 어떤 절차로 가능한지, 검안·검시와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할지부터 검토가 필요하다. 호주가 법 조문에 “지방정부가 설치한 morgue”를 명시했듯, 싱가포르가 mortuary의 법적 성격을 “임시 보관 전용”으로 규정했듯, 한국도 지방정부의 설치 근거와 시설의 법적 성격을 명문화하는 작업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장벽들이 “그러니 하지 말자”는 결론으로 이어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장벽의 목록 자체가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로드맵에 가깝다.
왜 지금 공공안치센터인가
이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장례문화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전통적인 3일장과 대형 빈소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 규모가 작아지고 1인 가구가 늘면서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빈소를 차리지 않는 장례, 가족끼리만 치르는 장례, 화장 후 바로 자연장이나 산분을 선택하는 장례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데 장례방식은 다양해지는데 시신이 머무는 물리적 공간은 여전히 장례식장 중심으로 고정돼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공안치센터라는 새로운 인프라가 필요해진다. 장례는 선택이지만, 시신을 안전하게 모시는 일은 사회가 책임져야 할 기본적인 공공서비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신은 공공이, 장례는 선택으로’
한국형 공공안치센터를 만든다면 원칙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안치는 공공이 책임지고, 장례는 유족이 선택하는 것.
공공안치센터는 시신을 안전하게 모신다. 유족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접견공간을 제공한다. 장례업체와 화장장, 자연장지 등 다음 단계로 연결한다. 그러나 어떤 장례식장을 이용할지는 결정하지 않는다. 어떤 관을 사용할지도 강요하지 않는다. 빈소를 차릴지 말지도 간섭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장례식장은 비로소 ‘시신이 있기 때문에 이용해야 하는 장소’에서 ‘유족이 필요해서 선택하는 서비스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어쩌면 장례의 변화는 장례식장을 바꾸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시신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홍콩의 Kwai Chung, 영국의 East London Forensic Centre, 프랑스의 municipal mortuary, 독일의 Leichenhalle, 호주의 법정 morgue, 대만의 복합형 공공 장례시설, 싱가포르의 “임시 보관 전용” mortuary. 세계 여러 나라의 Public Mortuary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죽음 이후의 첫 번째 공간을 꼭 장례식장이 맡아야 하는가?”
한국의 장례정책도 이제 이 질문에 답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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