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세루른이 독일에 자리 잡기까지
새로운 발명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법이 허락하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다. 특히 장례 문화처럼 오래된 관습과 엄격한 규제가 겹겹이 쌓인 영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바세루른이 독일이라는, 유럽에서도 손꼽히게 보수적인 장사 법제를 가진 나라에 자리를 잡기까지의 과정은 그래서 특별히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이라는, 가장 넘기 어려운 벽
독일에는 '묘지강제(Friedhofszwang)'라는 원칙이 있다. 고인의 유골은 반드시 공식적으로 인가된 묘지에서만 안치되어야 한다는 이 원칙은 독일 16개 주 전역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독일은 연방 차원의 통일된 장사법이 없고 주마다 각자의 법을 두고 있지만, 이 원칙만큼은 예외 없이 관통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주에서는 유골함을 가정에 영구히 보관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네덜란드나 스위스처럼 유골을 자택에 두거나 자연에 흩뿌리는 데 비교적 관대한 이웃 나라들과는 확연히 다른 풍토다. 바세루른이 독일에 진입하려면, 바로 이 벽을 넘어야 했다.
법을 바꾸지 않고, 조례 안으로 들어가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나온다. Waterurn B.V.는 국가 차원의 법 개정을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훨씬 더 현실적인 길을 택했다. 바로 개별 지자체의 묘지 조례, 이른바 프리트호프자충(Friedhofssatzung)에 바세루른을 정식 안장 방식으로 하나씩 등재시키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묘지 운영 규칙은 국가가 아니라 각 지자체가 자체 조례로 정한다. 그렇다면 국가법 전체를 바꾸는 일보다, 지자체 하나하나를 설득해 조례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인 경로였다.
실제로 이 전략은 문서로도 확인된다. 2022년 5월 제정된 뒤렌(Düren)시의 공식 묘지 조례에는 바세루른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바세루른 하나당 최대 두 사람 분의 유골을 안치할 수 있다. 시설 관리는 오직 묘지 관리 주체가 수행하며, 이 서비스 이용은 의무 사항이다."
바트 홈부르크(Bad Homburg)시의 조례에는 한층 세밀한 이용 규정까지 담겨 있다.
"바세루른에는 각인은 허용되나 돋을새김(양각) 문구는 허용되지 않는다. 꽃, 초, 장식물 등 추가적인 개인 장식은 허용되지 않으며, 이는 묘지 관리소를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제한된다."
법 전체를 바꾸는 대신, 지자체의 행정 문서 안에 새로운 안장 유형으로 조용히 자리를 만든 것이다.
새 제도가 아니라, 기존 제도를 빌려 쓰다
더 눈에 띄는 부분은, 바세루른이 완전히 새로운 법적 카테고리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독일에 이미 확립되어 있던 '묘지 이용권(Nutzungsrecht)' 제도를 그대로 빌려 썼다.
로바흐(Lobbach) 지자체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시장이던 에드가 크네히트는 바세루른이 이웃 지자체 그로스발슈타트와 마찬가지로 지자체가 직접 제공하는 방식이며, 이용자는 25년짜리 이용권을 구매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로바흐 기준 비용은 약 2,000유로였다.
이 25년 이용권이라는 기간은 특별한 숫자가 아니다. 독일의 일반적인 묘지 조례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이용권 기간과 정확히 같다. 즉 바세루른만을 위한 별도의 특수 계약 구조를 새로 설계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표준적인 무덤 이용권 계약의 틀 안에 그대로 들어간 것이다.
2012년, 조용한 개조의 시간
Waterurn B.V. 측 관계자는 이전 인터뷰에서 2012년부터 독일 법규에 맞춰 제품을 개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뒤렌과 바트 홈부르크의 조례를 놓고 보면, 이 '개조'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각인 방식의 제한, 유지관리 주체의 일원화, 개인 장식 금지 같은 세부 규정들이 이미 조례 안에 촘촘히 박혀 있다는 사실은, 제품이 시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지자체와의 협의를 거쳐 설계 자체를 조정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땅속 깊이에 관한 기준도 마찬가지다. 독일 묘지 조례는 대개 지하수위 기준으로 최소 50센티미터 이상의 여유를 두고, 개별 묘의 바닥이 지면 아래 180에서 240센티미터 사이에 위치하도록 규정한다. 앞서 살펴본 바세루른의 150센티미터 깊이 배출관 구조는, 이런 표준적인 지하수·매장 깊이 규정과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남는 질문
바세루른의 독일 진출기는 발명 그 자체보다, 그 발명을 제도 안에 들여보내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무리 참신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 앞에서는 결국 서류 한 장, 조례 문구 하나가 성패를 가른다.
법을 바꾸려 하지 않고, 이미 있는 틀 안에서 자리를 찾아낸 것. 그리고 그 틀에 맞춰 스스로를 조용히 조정한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바세루른이 20년 가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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