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세루른과 레겐우른, 한국 자연장의 새로운 가능성
화장한 유골은 흙에게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골분은 인산칼슘이 주성분이며 강한 알칼리성을 띠고, 나트륨을 비롯한 각종 염류 농도도 높은 편이다. 그래서 산분이나 자연장 실무에서는 한 번에 다량의 골분을 한 지점에 쏟아붓지 말고 넓게 흩어야 한다는 조언이 따라붙는다. 국소적으로 집중된 알칼리와 염분이 주변 토양을 일시적으로 척박하게 만들고, 심어둔 나무나 수목의 뿌리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세루른과 레겐우른이라는, 언뜻 보면 그저 아름다운 유골함처럼 보이는 이 발명품들이 실은 이 문제에 대한 상당히 실용적인 해법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시간이 하는 일
두 제품의 원리는 단순하다. 유골을 담은 함 속으로 빗물이 서서히 스며들고, 그 물이 유골을 아주 조금씩 아래로, 흙 속으로 옮긴다. 이 과정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년 가까이 걸린다.
이 긴 시간이 하는 일은 단순히 유골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만이 아니다. 빗물이 유골을 통과하며 서서히 흘러내리는 동안, 골분에 농축되어 있던 염분과 알칼리 성분 역시 함께 희석되고 씻겨 나간다. 한 번에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방출되기 때문에, 주변 토양이 국소적으로 받는 화학적 충격이 크게 줄어든다. 트리 우른이 코르크로 만든 별도의 '조절기'를 두어 화장재의 알칼리성을 완충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목적을, 바세루른과 레겐우른은 물과 시간이라는 훨씬 단순한 도구로 이뤄내는 셈이다.
이 점은 국내 수목장이나 자연장에 그대로 적용해볼 만한 대목이다. 지금의 수목장은 골분을 나무 밑동 주변에 직접 묻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이 과정에서 나무 뿌리가 국소적인 염류 집적과 급격한 pH 변화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만약 유골을 곧바로 흙에 매장하는 대신, 완충 장치를 거쳐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구조를 함께 둔다면 수목의 활착률을 높이고 뿌리 손상을 줄이는 실질적인 이점을 기대할 수 있다.
조형물이자 기념물이라는 두 번째 가치
바세루른과 레겐우른이 지닌 또 다른 강점은 이 제품들이 처음부터 하나의 조형물, 하나의 기념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이다. 청동 구체의 은은한 패티나, 코르텐강의 거칠고 따뜻한 녹빛, 그 위에 놓인 크리스털 유리 오브제. 이들은 단순한 매장 장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미학적 완결성을 지닌 조각품에 가깝다.
이는 국내 산분장이나 자연장지가 겪는 고질적인 고민, 즉 '아무 표식도 남기지 못한다'는 문제에 직접적인 답이 될 수 있다. 산분은 특성상 특정 지점을 눈에 띄게 표시하기 어렵다. 넓은 잔디밭이나 화단에 유골을 흩뿌리고 나면, 유족은 다시 찾아와도 정확히 어디에 고인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반면 바세루른이나 레겐우른 같은 조형물은 지상에 뚜렷한 형태로 남아, 방문할 때마다 시선이 머물 수 있는 구체적인 지점을 제공한다. 산분장 한켠에 이런 조형물을 배치한다면, 유족에게는 눈에 보이는 이정표가, 시설 입장에서는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조경 요소가 동시에 생기는 셈이다.
산분형 자연장의 아쉬움을 달래는 방법
산분형 자연장을 선택한 유족들이 가장 흔히 토로하는 감정은 후회가 아니라 아쉬움이다. 흩뿌리는 순간의 상징성은 크지만, 그 이후에는 물리적으로 돌아가 인사를 건넬 장소가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바세루른과 레겐우른은 이 아쉬움을 정면으로 겨냥한 설계다. 유골이 즉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몇 년, 길게는 십 년에 걸쳐 서서히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유족은 명확한 장소를 갖고 반복해서 찾아올 수 있다. 이는 산분이 주는 상징적 해방감과 봉안이 주는 물리적 안정감을 동시에 취하는 방식이며, 완전한 산분을 택하기 망설여지는 유족에게 완충 지대와도 같은 선택지를 제공한다.
한국적 현실에 적용 가능성이 높은 이유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 바세루른과 레겐우른의 원리가 국내 자연장에 적용될 만한 이유는 뚜렷하다.
먼저 기술적으로, 빗물과 시간을 이용한 완충 방출 방식은 수목의 생육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자연 회귀라는 본래의 목적을 그대로 달성한다. 국내 여러 지자체와 화장장이 조성 중인 산분장과 자연장 시설에 이런 구조를 도입한다면, 심어진 나무와 화초의 생존율을 높이는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서적으로, 조형물로서의 완성도는 산분장이 갖는 익명성과 무표정함을 보완한다. 표식이 없다는 산분의 근본적인 한계를 조형물이라는 형태로 해소하면서도, 법적으로는 여전히 자연장이나 산분의 범주 안에 머무르게 설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적으로, 유예의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은 한국 특유의 애도 문화, 이를테면 삼년상이나 탈상 같은 단계적 이별의 개념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하루아침에 완결되는 이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동안 서서히 진행되는 이별이라는 발상은 오히려 한국인의 정서에 낯설지 않다.
결국 바세루른과 레겐우른이 증명하는 것은 하나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도,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도, 서두르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온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산분장이 조성 초기 단계에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 오래된 발명이 던지는 질문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적기일지도 모른다.
바세루른·레겐우른, 한국의 법적용
바세루른과 레겐우른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봉안묘로 보면, 지상에 설치된 봉안시설로 볼 여지가 있다. 산분으로 보면, 유골이 빗물과 함께 서서히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장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행 장사법에서는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다. 봉안으로 보면, 신고 없이 저절로 자연장으로 넘어가는 원본의 방식과 충돌한다. 자연장으로 보면, 안치하는 순간부터 요구되는 깊이와 생분해성 용기 요건과 충돌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순간'을 판단하는 법과 '과정'을 설계하는 발명 사이의 차이다.
법은 묻는다. "지금 이게 봉안인가, 자연장인가?"
발명은 묻는다. "시간이 지나며 유골이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그 흐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법은 상태를 판단하고, 발명은 과정을 설계한다.
독일과 한국의 차이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규제가 세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할 권한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다. 독일에서는 묘지라는 큰 틀만 국가가 정하고, 그 안에서 구체적인 방식을 정할 권한은 지자체에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이 나타나자 지자체가 조례에 항목 하나만 추가하면 됐다.
한국은 봉안과 자연장의 구체적인 요건(깊이, 재질)까지 국가 법령이 이미 정해두었다. 지자체에게는 새로운 방식을 자체적으로 받아들일 권한이 없다.
현실적인 해법
그래서 지금 시도해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기존 제도를 조합하는 것이다.
봉안 → 개장 신고 → 자연장...
처음에는 합법적인 봉안 상태로 두고, 유족이 준비됐을 때 정식 절차를 거쳐 자연장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바세루른과 레겐우른이 한국에서 막히는 진짜 이유는 새로운 장례 방식이어서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안장'을 판단하고 허용할 권한이 현장 가까이에 없기 때문이다.
애도의 방식을 국가가 일일이 규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자체와 현장이 판단할 수 있도록 권한을 나눠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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