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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안과 산분, 그 사이의 선택지 ②바세루른

자연회귀

by 다비코 2026. 8. 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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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안과 산분, 그 사이의 선택지 ②바세루른

국내 장사 문화는 '봉안(납골)'과 '산분(散粉)·자연장'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봉안은 유골함을 특정 장소에 안치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설 이용 기간이 끝나면 결국 이장이나 처리 문제를 다시 마주해야 한다. 반대로 산분·자연장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상징성은 크지만, 한 번 흩뿌리고 나면 더 이상 물리적으로 찾아갈 자리가 남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바세루른은 이 두 방식의 중간 지점에 있다. 유골이 한 곳에 '머무는 시간'을 만들어 봉안처럼 찾아가 애도할 장소를 제공하면서도, 그 시간이 지나면 빗물을 통해 서서히 흙으로 스며들어 결국 산분과 같은 결말에 도달한다. 다만 바세루른이 구별되는 지점은, 이 과정의 속도를 유족이 직접 조절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배출 과정을 일시 정지시킬 수 있는 특허 기술 덕분에, 예를 들어 부부 중 한 사람의 유골이 서서히 흙으로 돌아가는 도중이라도 남은 배우자의 유골을 훗날 함께 안치할 수 있다. 유예 기간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언제 놓아줄 것인가"를 정하는 권한 자체를 유족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최근 국내 여러 지자체와 화장장에서 조성 중인 산분장(散粉葬) 시설에 이런 방식을 접목해볼 수 있다. 지금의 산분장은 대개 유족이 한 번 방문해 유골을 뿌리고 떠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구조다. 여기에 바세루른과 같은 완충 장치를 더한다면, 산분장 한켠에 일정 기간 머무를 수 있는 '과정형 안치 공간'을 함께 둘 수 있다. 유족은 처음부터 완전한 산분을 택하는 대신, 몇 년간 찾아가 인사를 건넬 장소를 먼저 갖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연으로의 온전한 회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배출 정지 기능을 활용하면, 가족 구성원이 시차를 두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에도 하나의 함에서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설계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국내 정서, 특히 합장(合葬)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한 가지 참고할 만한 지점은, 바세루른이 이미 독일처럼 화장 유골의 처리 방식을 법으로 엄격히 규정한 나라에서도 10년 넘게 지자체 공동묘지에 정식으로 설치·운영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즉 '규제가 엄격한 나라에서 제도권 안으로 들어간 선례'가 이미 존재한다는 뜻이다. 조성 초기 단계에 있는 국내 산분장이라면, 부지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런 중간 단계형 시설을 함께 배치하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 국내 장사법상 자연장·봉안 규정을 함께 충족하는 구체적 설계는 별도 법률 검토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이용자 경험의 관점에서는 '봉안이냐 산분이냐'라는 이분법 대신 세 번째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미 해외에 안착한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이별을 서두르지 않는 법, 원조 '바세루른'이 걸어온 20년

 

유골함이라 하면 흔히 정적인 물건을 떠올린다. 형태가 고정되어 있고, 담긴 것도 변하지 않으며, 한 번 자리를 정하면 그대로 머문다. 그러나 네덜란트의 한 회사는 20년 전, 이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 유골함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름은 바세루른(Wasserurne), 영어로는 워터우른(Waterurn). 우리말로 옮기면 '물의 유골함' 정도가 될 것이다.

 

2004년, 조용히 시작된 발명

 

바세루른을 만든 회사는 네덜란드 헬더란트주 엘스트(Elst)에 본사를 둔 Waterurn B.V.이다. 제품은 2004년부터 시장에 나왔으며, 이듬해인 2005년에는 혁신과 창의성 부문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 장례 어워드를 수상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이 제품을 발명한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지금 회사를 이끄는 이들조차 애초에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흐른, 이미 하나의 전통이 된 제품인 셈이다.

 

바세루른(Wasserurne) 구조도. - AI이미지

 

청동 구슬 하나에 담긴 정교한 구조

 

바세루른의 형태는 단순하다. 속이 빈 청동으로 만든 구(球)이며, 두 사람의 유골을 담을 수 있는 크기다. 그러나 이 단순한 겉모습 아래에는 상당히 정교한 구조가 숨어 있다.

 

지면 위에는 청동 유골함이 놓이고, 그 아래로 콘크리트 받침이 자리한다. 받침 속에는 플라스틱 관이 약 150센티미터 깊이로 묻혀 있으며, 그 둘레는 자갈로 채워져 있다. 지하 약 2미터 지점까지 이어지는 이 구조를 통해, 함에 고인 빗물이 유골과 서서히 뒤섞이며 땅속으로 스며든다. 이 과정은 평균 10년에 걸쳐 진행된다.

 

한 번에 흩뿌리는 산골이 명확한 종결점을 남긴다면, 바세루른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이별에 뚜렷한 마침표를 찍는 대신, 10년이라는 긴 시간 위에 이별을 펼쳐놓는다.

 

유족이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

 

바세루른의 특허 기술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이 배출 과정을 유족이 원할 때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 유골이 함 안에서 서서히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도중이라도, 남은 배우자가 훗날 세상을 떠나면 그 과정을 멈추고 두 번째 유골을 함께 안치할 수 있다. 이사를 하게 되어 함의 위치를 옮겨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진행을 잠시 정지시킬 수 있다.

 

결국 언제 유골이 완전히 땅으로 넘어갈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시간이나 자연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회사는 이를 두고 "자신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을 다룰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원묘지의 바세루른(Wasserurne) - AI재구성

 

정원에도, 공원묘지에도

 

바세루른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설치 장소의 자유로움에 있다. 연못가의 벤치 옆, 좋아하던 나무의 그늘, 테라스 근처 등 자택 정원 어디에나 놓을 수 있으며, 동시에 화장장이나 공원묘지에 안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적인 추모와 공적인 안치,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아우르는 유연함을 갖춘 셈이다.

 

색상 또한 다채롭다. 본체는 청동으로 만들어지지만, 수작업으로 패티나를 입히는 과정에서 검정, 갈색, 청동색, 녹색 등 여러 톤으로 완성되며, 현재는 터키석빛, 연두, 진녹, 밝은 혼합색, 어두운 혼합색, 코르텐 느낌, 클래식 갈색, 빨강, 아이리시 그린까지 아홉 가지 색상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함 하나하나도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지니게 된다.

 

가장 엄격한 나라에서 살아남은 20년

 

이 제품이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독일에서의 행보 때문이다. 독일은 화장한 유골을 반드시 지정된 묘지에서만 처리하도록 규정하는 이른바 '묘지강제법(Friedhofszwang)'을 두고 있는, 장사 문화에 있어 매우 보수적인 나라다. 그럼에도 Waterurn B.V.는 2012년부터 독일 법규에 맞춰 제품을 개조했고, 이후 로바흐, 그로스발슈타트, 뒤렌, 닥센하우젠 등 독일 여러 지자체의 공동묘지에 정식으로 설치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그로스발슈타트 지자체의 경우, 도입 첫해 만에 설치된 열두 기의 바세루른이 모두 예약되거나 사용 중인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화장후 자연장이 늘어나는 요즘 추세 속에서, 오래된 묘지 구역의 비어 있는 자리를 새롭게 활용하는 방편으로도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로바흐 지자체의 사례는 조금 더 개인적이다. 완화의료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시장의 부인이 이 방식을 접하고 남편에게 제안했고,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 마을의 '추억의 정원'에 바세루른이 자리를 잡았다.

 

법으로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는 나라에서조차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은, 이 발명이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실제로 작동하는 제도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두 발명품, 같은 질문

 

바세루른과 비슷한 개념의 유골함으로 최근 네덜란드에서 다시 주목받은 것이 코르텐강 소재의 '레겐우른'이다. 소재도, 형태도, 운영 방식도 서로 다르지만(바세루른이 판매 방식이라면 레겐우른은 5년 단위 임대 방식을 택하고 있다) 두 제품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그 기억을 어디에 어떻게 두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답을 찾는 시간을, 누가 대신 정해줄 수 있는가.

 

바세루른은 그 답을 스무 해 가까이 흙과 물,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손에 맡겨왔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주 오래전부터 조용히 증명해온 셈이다.

 

 

https://waterurn.de/projec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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