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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뉴스

병원 장례식장, 왜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병원 장례식장, 왜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당신은 아마 불만이 없을 것이다.
병원에서 가족을 잃었고, 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렀고, 그럭저럭 잘 끝났다고 느낄 것이다. 직원들은 친절했고, 이동 거리도 짧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을 누군가 알아서 처리해줬다. 힘든 시간을 무사히 넘긴 것 같은 기분.


그 만족감이 이 글의 주제다.


당신이 만족한 이유
비교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장례식장을 이용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대부분은 생애 처음 장례를 치르는 상황에서, 가장 극심한 슬픔과 혼란 속에서, 선택지를 검토할 심리적 여유 없이 그냥 거기서 했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비싼지 싼지 모른다. 좋은지 나쁜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됐다"는 것 자체가 만족으로 느껴진다. 그게 상품이다. 병원 장례식장이 실제로 팔고 있는 것은 서비스가 아니라 판단 유예다.


잘 설계된 포획은 피포획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만족과 포획은 다르다. 그런데 만족한 사람은 그 차이를 물어볼 이유가 없다.


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가
만족한 피해자는 증언자가 되지 않는다.


병원 부속 장례식장이 독립 장례식장보다 평균적으로 더 비싸다는 사실을, 이용한 사람 중 몇 명이나 알고 있을까. 계약서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그 수익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확인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불만이 없으니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니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정치권이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으니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이 순환이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나는 좋았는데"라며 반론자가 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병원 장례식장 존속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정확하게 소비된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문제
이 의제가 조용한 것은 돈 문제도, 정보 부족도 아니다.


죽음을 직면하기 싫은 것이다.


장례식장 구조를 문제 삼으려면 먼저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내 죽음, 부모의 죽음, 그 이후에 남겨질 사람들.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여전히 회피의 영역이다. 장례는 빨리 끝내야 하는 일이고, 끝나면 잊어야 하는 일이다.


병원 장례식장은 그 심리 위에 완벽하게 앉아 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희가 다 해드립니다. 이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이유다.


분노하기 위해서는 먼저 직면해야 한다. 그 직면을 사회가 집단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 침묵의 진짜 구조다.


그렇다면 무엇이 침묵을 깨는가


억울함이나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직면한 사람의 감정이다.


침묵을 깨는 것은 낯설게 만들기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에 갑자기 물음표가 붙는 순간.


병원에서 치료받다 돌아가시면,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한가요?


이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당연하니까 질문하지 않았다. 그 당연함이 지금 이 구조를 유지시키고 있다.


당연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질문 하나가 논문 열 편보다 강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정책 논리가 아니라, 이 질문을 더 많은 사람이 듣게 하는 일이다.

 

 

답답한데 뮤비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