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지 않아도 푸른, 무덤의 오래된 대답
벌초는 여전히 한국 장묘 문화에서 가장 무거운 노동 중 하나다. 여름 폭염 속에 낫과 예초기를 들고 봉분을 다듬는 일, 가뭄이 들면 누렇게 타들어가는 잔디, 장마철이면 웃자라 무덤을 뒤덮는 잡초. 조선시대에는 이 일을 '사초(莎草)' 또는 '개사초(改莎草)'라 불렀고, 한식마다 무너진 봉분에 떼를 다시 입히는 일을 의례로 삼을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만은 억새로 봉분을 덮어 지금도 매년 한식마다 '청완예초의'라는 행사로 그 전통을 잇고 있다.
문제는 이 잔디 관리가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인 가구가 늘고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정기적으로 벌초할 사람도, 시간도 줄고 있다. 여기에 폭염과 집중호우가 극단화되면서 들잔디는 여름철 생육 스트레스를 겪고, 뿌리가 얕아 폭우 시 토양이 쓸려나가는 일도 잦아졌다. 잔디는 아름답지만, 사람의 지속적인 손길을 요구하는 식물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유럽의 묘지들이 먼저 실험하고 있다.

유럽이 잔디 대신 심기 시작한 식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헤르덴킹스파르크 베스트가르더는 2025년 10월, '인스피라티펠트(Inspiratieveld)'라는 지속가능 묘지 장식 시범 구역을 열었다. 화강암 비석 대신 살아있는 식물로 무덤을 덮는 여섯 가지 방식을 전시하는데, 그 핵심이 세덤(Sedum) 매트다.
헤이그의 베스트데윈 묘지는 이미 2005년부터 추모광장 주변을 세덤으로 덮었고, 노르웨이 롬메달렌 교회 묘지는 2013년 경사면 전체를 세덤 매트로 조성했다. 도에틴험의 자연장 묘지 슬랑엔뷔르흐는 화장장 파빌리온 지붕 600㎡를 세덤과 허브 혼합종으로 덮었다. 유럽의 묘지 조경업체들이 세덤을 고르는 이유는 거의 동일하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세덤의 대표종인 Sedum sarmentosum의 원산지는 한국이다. 우리가 봄나물로 먹는 돌나물이다.

정리하면 잔디는 초기 비용이 싸지만 장기적으로 사람의 손을 계속 요구하고, 세덤은 초기 조성에 조금 더 들지만 이후로는 거의 손이 가지 않는다. 자주 찾아뵙기 어려운 무덤, 관리할 가족이 마땅치 않은 무덤일수록 세덤이 더 어울리는 이유다.
게다가 이 식물,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세덤을 새로 도입해야 하는 유럽과 달리, 한국은 이미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돌나물은 원래 한반도 산과 들, 바위 틈에서 자생해온 식물이다. 한방에서는 석지갑(石指甲), 수분초(垂盆草), 석상채(石上菜) 등으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약재이자 봄나물로 쓰였다. 별도의 관수 없이도 척박한 땅에서 번식하는 생태적 특성은 이미 충분히 검증되어 있다. 수입 종자나 외래 식물을 들여올 필요 없이,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식물을 그대로 묘지 조경에 옮겨오면 된다. 기후 적응력 면에서도, 심리적 거부감 면에서도 오히려 유럽보다 유리한 조건이다.
특히 여름 폭염이 매년 기록을 갱신하는 한국의 기후를 감안하면, "기후 대응형 묘지 식물"이라는 프레임은 유럽보다 한국에서 더 절실하게 작동할 수 있다.
형형색색의 무덤을 상상해보자
세덤의 또 다른 매력은 색이다. 단일한 초록으로 뒤덮인 잔디 봉분과 달리, 세덤은 품종에 따라 노랑, 주황, 붉은빛, 짙은 자주색까지 다채로운 색을 낸다. 계절이 바뀌면 색도 함께 바뀐다. 여름엔 노란 꽃이 만개하고, 가을이 되면 잎끝이 붉게 물든다. 획일적인 화강암 판석과 짧게 깎인 잔디가 만드는 삭막한 풍경 대신, 계절마다 표정을 바꾸는 살아있는 무덤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무덤을 반드시 엄숙하고 정적인 공간으로만 남겨둘 필요는 없다. 자주 찾아오지 못해도 스스로 푸르고, 때로는 노랗고 붉게 물드는 무덤이라면,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전환의 시작
물론 모든 잔디를 당장 걷어내고 세덤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립묘지나 전통이 깊은 왕릉처럼 상징성이 큰 곳은 기존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관리가 어려운 개인·가족 묘지, 새로 조성되는 자연장·수목장, 무연고 묘역처럼 '돌봄의 지속가능성'이 문제가 되는 공간부터는 세덤 전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유럽의 묘지들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잔디보다 손이 덜 가고, 기후 변화에 더 강하고, 보기에도 더 다채로운 지피식물이 있다면, 우리도 굳이 잔디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 식물이 마침 우리 산천에 원래 있던 것이라면, 망설일 이유는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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