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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죽음

파묘 2


서(序) — 낙인
조선 중기, 어느 고을에 형제가 있었다.
형은 업복, 동생은 두천.
두 사람은 천민 중에서도 가장 낮은 피붙이였다. 아비는 일찍 죽었고, 어미는 더 일찍 사라졌다. 형이 동생의 손을 잡고 저잣거리를 전전하며 자랐다. 굶는 날이 더 많았고, 웃는 날은 드물었다.


그 시절 두 사람에게는 한 가지 같은 점이 있었다.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말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업복이 열아홉이 되던 해 봄, 그는 관아의 창고를 털었다.
계획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담을 넘었다. 손이 닿는 대로 곡식 자루를 집었다. 열 걸음도 못 가서 잡혔다. 포졸들이 들이닥쳤을 때 그는 자루를 안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뛰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형이 내려졌다.
자자형(刺字刑) — 이마에 죄명을 새기는 벌.
뜨거운 인두가 이마를 지지는 동안 업복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에서 두천이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동생의 목 놓는 소리가.
竊盜.
절도.
두 글자가 이마에 새겨졌다. 뼈에 닿도록 깊이.

낙인이 찍힌 자는 갈 곳이 없었다.
장사치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농사꾼도, 막일꾼도. 이마의 글자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업복은 망나니가 되었다. 사람의 목을 치는 일. 그것만이 그에게 열려 있는 문이었다.


반면 동생 두천은 달랐다.
두천은 조용한 아이였다. 형이 잡혀간 뒤 그는 홀로 살아남는 법을 찾았다.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고, 마지막 길을 차린다 — 장의사의 일을 배웠다. 사람들은 두천의 손길이 정갈하다고 했다. 죽은 자에게도 예를 갖추는 성품이라고. 신뢰가 쌓였다. 세도가 집안에서도 두천을 불렀다. 명성이 고을 전체에 퍼졌다.


두 형제는 같은 하늘 아래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형은 이마의 글자를 달고 죽은 자를 만들었고, 동생은 깨끗한 손으로 죽은 자를 거두었다.

 

 


1부 — 부조금 상자
그해 가을, 고을에서 가장 큰 세도가 집에 경사가 났다.
대감의 환갑이었다. 사흘 동안 잔치가 벌어졌고, 인근 고을에서까지 하례객이 몰려들었다. 부조금이 쌓였다. 비단 보자기에 싸인 상자들이 사랑채 한켠에 줄지어 놓였다.
나흘째 아침, 상자 하나가 사라졌다.
가장 컸던 것. 은자 이백 냥이 들어 있었다는 것.


대감의 노복들이 사방을 뒤졌다. 잔치에 들어왔던 인부들을 불러 심문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다.
"망나니 업복이 사흘 내내 대문 근처를 어슬렁거렸습니다."
소문은 불처럼 번졌다.
"이마에 도둑 낙인이 찍힌 자가 못 할 짓이 무엇이냐."
"사람 목을 치는 손이 돈을 못 훔치겠느냐."
"본래 그런 피를 타고난 것이지."


포졸들이 업복의 움막으로 들이닥쳤다. 업복은 마루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뒤지고 또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포졸들은 그를 반나절 동안 묶어두었다가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풀어주었다. 사과는 없었다.


업복은 풀려나는 즉시 두천을 찾아갔다.
그의 얼굴은 붉었다. 분노인지, 술인지, 부끄러움인지 알 수 없었다.
"두천아. 나는 손을 씻었다. 분명히 씻었다. 그런데 세상은 이 이마의 글자만 보고 나를 도둑으로 만드는구나."


두천은 조용히 형의 맞은편에 앉았다. 차를 내왔다. 그리고 낮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그냥 잊으십시오. 세상이 원래 그런 것입니다. 형님은 형님의 양심을 아시지 않습니까."
업복은 한참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 속에 흔들림이 없었다. 어떤 죄책감도, 어떤 균열도.
업복은 차를 마시고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왜인지 목덜미가 서늘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서늘했다.

 

 


2부 — 달빛 아래의 그림자
그날 밤, 업복은 잠이 오지 않았다.
분이 삭지 않았다. 술을 더 마셨다. 그래도 눈이 떠졌다. 하늘을 보다가, 어느 순간 몸이 일어났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발이 움직였다.


세도가 집 뒷담에 다다랐을 때, 그는 스스로도 왜 여기 왔는지 몰랐다. 그냥 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내 발도 들어간 적 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달빛이 뒷마당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달빛 속에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업복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낮은 담 밑에 석 자 남짓한 구멍이 있었다. 낡은 기왓장 뒤로 숨겨진 구멍.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상자를 끌어내는 손. 손은 희고 정갈했다.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죽은 자를 닦던 손이었다.
두천이었다.


업복은 담 너머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두천은 천천히 상자를 가슴에 안았다. 낮에 대감 댁에 드나들며 봐두었던 구멍이었다. 염습을 하러 들어갔을 때, 죽은 노복의 곁에 앉아 이 집 구석구석을 살폈을 것이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으면서.
발소리가 났다. 두천이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달빛 속에서 두천은 놀라지 않았다. 잠깐 멈추었다가, 그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오래된 미소였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안에 있었던 것이 처음으로 밖으로 나온 것 같은 미소.
업복이 담을 넘어 내려섰다. 목소리가 떨렸다.


"네가… 어찌 이런 짓을 하느냐."
두천은 상자를 내려놓지 않은 채 형을 바라보았다.
"형님."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형님은 이마에 죄를 새겨 세상이 경계하게 했습니다. 나는 마음속에 죄를 숨겨 세상을 속였습니다. 어느 쪽이 더 현명한 것입니까."


"…이 녀석이."
"형님이 술에 취해 길에서 쓰러질 때, 나는 시신의 품속에서 노자 한 푼 빼내는 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형님이 이마의 글자를 부끄러워할 때, 나는 손을 깨끗이 씻으며 더 큰 것을 노리고 있었고요."
두천의 눈에는 슬픔이 없었다. 변명도 없었다. 그것이 업복을 가장 무너뜨렸다. 죄책감이라도 있었다면. 눈물 한 방울이라도 있었다면.


"너는… 처음부터 그랬느냐."
두천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형님만 그런 세상에 혼자 살 수는 없었습니다."


업복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것이 동생이 형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말이었다. 나는 형님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는 말도 아니었다. 나는 형님처럼 살지 않으려 이렇게 된 것이라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오래 서 있었다.
바람이 뒷마당의 낙엽을 긁었다.
업복이 먼저 몸을 돌렸다.

 

 


3부 — 고발
새벽에 업복은 관아의 문을 두드렸다.
이방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왔다가, 이마의 글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도둑을 잡았소."
업복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고요했다. 취기가 가신 듯 눈이 맑았다. 이방은 그 눈을 보고 뭔가를 느꼈는지 안으로 들어가 사또를 깨웠다.


동이 틀 무렵, 포졸들이 두천의 집을 에워쌌다.
두천은 저항하지 않았다. 포박을 받으면서도 표정이 무너지지 않았다. 이끌려 나오다가 멀리 서 있는 형의 얼굴을 보았다. 업복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것이 두 사람이 서로를 마지막으로 바라본 순간이었다.

재판은 짧았다. 증거가 명확했다. 구멍 안에서 상자가 나왔고, 두천의 집 마루 밑에서는 그간 염습 때 빼낸 것들로 보이는 패물과 돈이 쏟아져 나왔다. 죽은 자들의 것이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것들이.
형이 내려졌다.
참수형.


집행은 사흘 뒤였다.
그 사흘 동안 업복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움막 마루에 앉아 이마에 손을 얹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 울퉁불퉁한 흉터가 느껴졌다. 두 글자. 평생 그를 따라다닌 두 글자.


나는 운이 없었을 뿐, 본래 선한 놈이다.
그 말이 공허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사라졌다.

 


4부 — 집행
형장에 안개가 짙었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저잣거리에서, 골목에서, 멀리 다른 마을에서까지. 장의사 두천이 세도가 집을 털고 죽은 자의 품을 뒤졌다는 소문은 고을 전체를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속았다는 분노와 믿고 싶지 않다는 당혹감 사이 어딘가에서 술렁였다.
망나니 업복이 형장에 들어섰을 때,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그가 동생을 고발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얼굴로 볼지 몰라 그냥 보았다. 업복은 그 시선들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걸었다. 칼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두천이 끌려나왔다.
여전히 의연했다. 죽음 앞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소름 돋는다고, 누군가 낮게 속삭였다.
포졸이 죄목을 낭독했다.


업복은 하늘을 보았다. 안개 너머로 해가 뜨고 있었다. 저 해는 오늘도 어김없이 뜨는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형틀 앞에 두천이 꿇렸다.
두천이 고개를 돌려 형을 보았다. 그 눈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업복은 끝내 읽지 못했다. 후회인지, 원망인지, 아니면 그저 체념인지. 그 무엇도 아닌 것인지.


"집행하라."
칼이 허공을 가르는 동안, 업복의 눈 안에서 기억들이 흘렀다.
어릴 적 두천이 처음 웃던 얼굴. 배가 고파 손을 맞잡던 밤. 자자형을 받던 날 담 너머에서 울던 동생의 소리. 형의 죄를 씻겠다는 듯 묵묵히 시신 곁을 지키던 뒷모습. 그것이 모두 진심이었던 시절이 있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는지.


쿵.
형장이 고요해졌다.
업복은 칼을 놓지 않았다. 한참 동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마의 글자. 손의 피. 그는 입을 열었다가, 그냥 다물었다.
그리고 웃었다.
슬픔도 기쁨도 아닌, 어떤 것이 완전히 부서져버린 자의 웃음이었다. 그 웃음이 형장을 가득 채웠다. 구경꾼들이 뒤로 물러섰다. 아이들이 어미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었다.
업복은 칼을 땅에 꽂고 형장을 나갔다.
아무도 뒤를 쫓지 않았다.

 


5부 — 방랑
그날 이후 업복은 미쳤다.
아니, 미쳤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멀쩡히 말을 했고, 멀쩡히 걸었다. 다만 이유 없이 울다가, 이유 없이 웃었다. 새벽 저잣거리를 맨발로 걸었고, 남의 집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바라보다 쫓겨났다. 아이들이 몰려다니면 그 뒤를 따라가며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람들은 그를 피했다.
이마의 글자 때문이 아니었다. 눈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않는 눈.
어떤 날은 형장 앞에 혼자 서서 술을 마셨다.
어떤 날은 두천의 빈 집 앞에 서서 이름을 불렀다.
"두천아."
"두천아."
"나왔느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집은 텅 빈 채 서 있었다. 업복은 그래도 매번 한참을 기다리다 돌아갔다.


포졸들이 그를 내쫓으려 했다. 관아에서 더 이상 망나니 자리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업복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는지도 아무래도 좋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느 가을 아침, 그는 산으로 올라갔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6부 — 파묘꾼
산에 오른 업복은 삽을 구했다.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산비탈에는 묘들이 있었다. 반듯한 비석이 있는 것도, 이름 없이 흙만 쌓인 것도. 파헤치면 나왔다. 비녀, 노리개, 동전, 더러는 은제 그릇도. 그는 꺼낸 것들을 장터에 내다 팔아 술을 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업복은 파낸 묘를 절대 그냥 두지 않았다. 귀중품을 꺼낸 뒤에는 반드시 흙을 다시 덮었다. 봉분을 다시 쌓고, 묘 주변의 잡초를 걷어내고, 한참 앉아 있다가 떠났다. 어떤 묘 앞에서는 혼자 중얼거렸다.
"잘 가거라. 가져가봤자 쓸 데도 없는 것, 내가 먼저 가져갔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그가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 파묘꾼이 아니라 먼저 치우는 자.


산 아래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산에 귀신이 산다고. 무덤을 파는 귀신이라고. 가끔 나무꾼들이 새벽에 산비탈을 지나다 보면, 안개 속에서 삽질 소리가 들리고, 이마에 글자가 새겨진 노인이 흙을 다독이고 있다고.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업복은 혼자였다.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7부 — 두천의 묘
그날도 업복은 새벽부터 산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어느 묘 앞에서 발이 멈췄다.
비석이 없었다. 죄인의 묘에는 이름을 새기지 않는다. 그러나 업복은 알았다. 봉분의 크기가. 묻힌 자리의 방향이. 무덤 가장자리에 쌓인 돌의 모양이. 동생이 살던 집에서 관아까지의 거리, 형장에서 공동묘지까지의 길. 모든 것을 계산하면 이 자리가 맞았다.
두천이었다.


업복은 삽을 손에 쥔 채 무릎을 꿇었다.
오랫동안 꿇어 있었다. 해가 뜨기 전이라 하늘이 아직 어두웠다. 바람이 솔숲을 흔들며 지나갔다. 멀리서 새 한 마리가 울었다.
삽이 손안에서 무거웠다.
파야 하는가.
파지 말아야 하는가.


파묘꾼으로 산 세월이 스쳤다. 온갖 묘를 팠다. 양반의 묘도, 천민의 묘도. 살아서 좋은 사람이었든, 나쁜 사람이었든. 땅 아래에서는 모두 같았다. 흙이 되어가는 것들.
그렇다면 두천도.
삽이 땅에 꽂혔다.
천천히 팠다. 마치 두천의 몸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는 것처럼. 한 삽, 한 삽. 흙이 옆으로 쌓였다. 봉분이 낮아졌다. 땅이 점점 깊어졌다.


관이 드러났다.
업복은 뚜껑에 손을 올렸다. 낡은 나무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손을 거두었다.
열지 않았다. 열 수 없었다. 안에서 두천의 그 서늘한 눈이 자신을 올려다볼 것 같았다. 혹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더 두려운지 알 수 없었다.
업복은 구덩이 안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관 옆에 몸을 뉘었다. 차가운 흙바닥이 등에 닿았다. 하늘이 구덩이 위로 좁게 보였다. 별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새벽이 오기 직전의, 가장 어두운 하늘이었다.
빈 술병을 꺼내 들었다. 언제 들고 왔는지도 몰랐다. 기울였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한참 들고 있었다.
"두천아," 하고 그는 말했다.
목소리가 구덩이 안에서 작게 울렸다가 사라졌다.
"나 왔다."

동이 텄다.
하늘이 구덩이 위로 조금씩 밝아왔다. 별들이 하나씩 꺼졌다. 바람이 불었다. 업복은 눈을 감지 않았다. 그냥 하늘을 보았다. 이마의 글자가 새벽빛에 드러났다.
竊盜.
절도.
그것이 세상이 그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그것이 그가 평생 달고 살아야 했던 이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구덩이 안에서, 동생의 관 곁에 누운 이 순간에도, 그것은 여전히 그의 이마 위에 있었다.


지워지지 않았다.
지워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무겁지 않았다.

나무꾼 하나가 산비탈에서 허물어진 묘를 발견한 것은 아침 해가 솟은 뒤였다.
구덩이 안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나무꾼이 조심스럽게 어깨를 흔들었다.
남자가 눈을 떴다.
이마에 낡은 글자가 새겨진 노인이었다. 눈이 맑았다. 오랫동안 잠을 잔 사람의 눈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업복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흙을 털었다.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허물어진 봉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흙을 올리기 시작했다. 삽을 쓰지 않았다. 맨손으로. 한 줌, 한 줌.
나무꾼은 뭔가를 물으려다 그냥 지켜보았다.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업복은 흙을 올렸다. 봉분이 완성되었다. 예전보다 조금 더 반듯하게. 옆에 돌을 가져다 경계를 쌓았다. 잡초를 뽑았다. 마지막으로 묘 앞에 앉아 한동안 있었다.
그리고 일어났다.
삽을 들고 산을 내려갔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무꾼도, 산도, 아마 그 자신도.

 


결(結) — 낙인 이후
업복에 대한 이야기는 거기서 끊긴다.
어떤 이는 그가 다른 고을에 흘러들어 늙어 죽었다고 했다. 어떤 이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도 했다. 또 어떤 이는 그해 겨울, 고을 어귀에서 동사한 노인이 발견되었는데 이마에 흉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도 했다.


무엇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남아 있다.
그해 이후로 산비탈의 묘들이 유난히 단정해졌다는 것이다. 누군가 봉분을 쌓아두고, 잡초를 걷어두고, 돌을 가지런히 올려두었다는 것이다. 귀중품이 사라진 자리에.
사람들은 그것을 귀신의 짓이라고 했다.

이마에 새겨진 글자는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글자가 그 사람을 전부 말해주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분명한 낙인은 피부 위에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깊은 죄는 웃음 뒤에 숨어 있었다.
업복은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리고 두천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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