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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엔딩

생화제단, 어떻게 한국 장례의 표준이 되었나

 

오늘날 한국 장례식장의 국화 생화제단은 일본의 백목제단(白木祭壇)에서 발전한 생화제단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에서 생화제단은 20세기 후반 화훼산업이 개발한 장례 상품이다. 획일적인 백목제단 대신 고인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하고, 종교색을 줄이며, 유족 중심의 장례를 만들려는 요구 속에서 등장했다. 즉 권위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인화 장례가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시작이 그러했을지라도, 오늘날 일본의 현실 역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화훼산업과 결탁한 생화제단은 날이 갈수록 지나치게 화려해졌고, 과도하게 비싼 가격으로 인해 유족들에게 큰 경제적 부담을 안기며 현지에서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반면 한국은 이러한 형식만 받아들이고 본래의 철학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화의 양과 규모로 등급을 나누는 획일적인 상품으로 정착했고, 대통령 국가장까지 같은 형식을 사용하면서 오히려 국가 권위와 격식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또한 국가장과 국민장 분향소를 시공한 상조회사들이 대형 생화제단을 전국에 반복 노출하면서 이 형식은 민간 장례식장의 표준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결과적으로 국가 의례가 장례산업의 쇼케이스 역할을 했고, 그 상품이 하나의 표준처럼 인식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결국 현재의 생화제단은 일본에서 발전한 상업적 장례 형식이 국가 의례와 장례산업을 거쳐 한국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사례에 가깝다.

 

이게 정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