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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엔딩

병원 장례식장은 30년짜리 과도기 모델

 

향후 30년, 한국 장례 시스템을 다시 설계한다

1990년대 이후 병원 장례식장이 한국 장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지 이제 30여 년이 지났다. 이 모델은 편의성과 접근성이라는 무기로 시장을 통일했지만, 애초부터 개선이 아니라 폐기가 필요한 구조적 결함을 안고 출발했다.


죽음이 의료에 종속되고, 사흘이라는 시간이 애도를 압사시키고, 발인 이후는 철저한 공백으로 남는다. 이 세 가지는 병원 장례식장이라는 설계도 자체의 결함이다. 잘못된 설계도로 지은 건물은 아무리 손봐도 원래의 결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음 30년의 정책은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 재건축이어야 한다.

 

 

안치와 지원을 분리해야 한다


병원 장례식장이 독점해온 기능은 사실 두 가지로 쪼갤 수 있다. '안치'와 '지원'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이 둘을 하나의 사업자, 하나의 건물, 사흘이라는 하나의 시간표 안에 억지로 욱여넣어 왔다. 안치는 시신을 존엄하게 모시는 최소한의 필수 기능이고, 지원은 사별 이후 유족의 삶이 회복되도록 돕는 지속적 기능이다. 이 둘은 성격도, 필요한 시간도, 담당해야 할 주체도 전혀 다르다. 하나의 공간에 묶어둘 이유가 없다.

 


안치는 공공이 맡아야 한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 영안실 모델은 시신 안치라는 필수 기능을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온다. 이렇게 되면 병원 장례식장의 끼워팔기 구조가 깨지고, 유족은 자신의 형편과 뜻에 맞는 장례 업체를 선택할 주권을 되찾는다. 지금 유족이 병원 장례식장을 '선택'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안치라는 인질을 잡힌 채 나머지 모든 것을 끼워 사는 것에 가깝다. 안치를 공공이 분리해 맡는 순간, 이 인질극은 끝난다.

 

 

지원은 지역 사회가 지속해야 한다. 영국의 'Bereavement Advice Centre'는 사망 신고부터 유산 처리, 유언 검인까지 실무 전반을 무료로 안내하고, 'Cruse Bereavement Support' 같은 자선 단체가 감정 상담을 결합한다. 이 모델의 핵심은 지원에 유통기한이 없다는 것이다. 사별 후 수년이 지나도 상담과 지지 그룹이 운영된다. 한국의 장례 지원은 발인일에 정확히 종료된다. 이것은 지원이 아니라 행사 진행에 가깝다. 사별의 회복은 사흘 안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므로, 이를 돕는 체계도 사흘 안에 끝나서는 안 된다.

 


병원은 생명을 살리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병원 장례식장 모델이 유지되는 유일한 이유는 편의성이다. 그런데 그 편의성은 유족의 편의가 아니라 사업자의 편의다. 안치·조문·화장예약·수익 창출을 한 건물 안에서 끝낼 수 있다는 사업적 효율성일 뿐, 유족에게 필요한 것은 애초에 다른 것이었다. 슬퍼할 시간, 선택할 권리, 끝나지 않는 돌봄.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병원 장례식장은 제공하지 못한다.


죽음이 병원의 부수적인 수익 모델로 남아 있는 한, 이 왜곡은 해소되지 않는다. 정책은 이 지점을 명확히 겨냥해야 한다. 병원에서 안치 기능을 분리하는 것은 단순한 시설 재배치가 아니라, 죽음을 의료의 실패로 규정해온 구조 자체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강제로 없앨 필요가 없다,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이 제언은 병원 장례식장을 법으로 금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안치를 공공이 맡고, 지원을 지역 사회가 지속하고, 의례를 유족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병원 장례식장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점은 저절로 사라진다. 사업자에게는 편리했지만 유족에게는 한 번도 최선이었던 적이 없는 이 모델은, 대안이 실제로 존재하는 순간 시장에서 스스로 정리된다.


정책의 역할은 강제 폐지가 아니라 조건의 재설계다. 안치라는 인질을 풀어주고, 지원이라는 공백을 지역 사회가 채우면, 병원 장례식장은 그저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옵션이 된다.

 


사흘로 끝나지 않는 시스템을 설계하라


병원 장례식장은 '죽음의 처리'라는 실무에 매몰된 시설이다. 반면 우리가 설계해야 할 시스템은 '사별의 경험'을 보듬고 '삶의 회복'을 돕는 체계다. 이 둘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대체하는 관계다. 하나가 존재할 이유를 잃으면,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채운다.


죽음은 사흘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을 처리해온 시설도, 그 시설을 지탱해온 정책도, 사흘짜리 시야를 벗어나야 한다. 다음 30년의 장례 정책이 물어야 할 질문은 '어떻게 사흘을 더 편리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사흘이라는 틀 자체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