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장사법
우리는 모두 생의 마지막 관문으로 장사를 치릅니다. 하지만 정작 이 절차를 규율하는 국가 법령인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에 '장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 정의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법률 제2조(정의)는 매장, 화장, 봉안 등 하위 개념만 나열할 뿐, 정작 상위 개념인 '장사' 그 자체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마치 교육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은 채 '학교 건물 신축 규정'만 가득 채워놓은 교육법과 같은 이 기이한 법령은, 우리의 사후 절차가 철학 없는 행정 편의주의와 부동산 논리에 갇혀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입법 기술의 실수가 아닙니다. 이 공백이 어디서 왔는지를 추적하면, 우리가 100년 넘게 물려받아온 구조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정의 없는 법, '장사'를 행위의 나열로만 보다
대한민국 입법 기술의 고질적 특징 중 하나는 본질적 가치보다 현상을 나열하는 열거주의입니다. 장사법은 '장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대신, 매장·화장·자연장 같은 하위 행위들을 단순히 묶어놓는 방식을 취합니다. 법 제2조는 매장을 "시신이나 유골을 땅에 묻어 장사하는 것", 화장을 "시신이나 유골을 불에 태워 장사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장사'라는 단어가 정의 조항 곳곳에 상위 개념으로 반복 등장하지만, 정작 그 장사 자체가 무엇인지는 어느 조문에도 없습니다.
현행법은 "A, B, C를 하는 시설을 장사시설이라 한다"고 규정할 뿐, 그 기저에 흐르는 '생명의 순환'이나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핵심 가치는 법문에 담지 않습니다. 이 정의의 부재는 우연이 아닙니다. 장사를 '생명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으로 정의하는 순간, 이 법이 지금껏 묵인해온 구조들의 정당성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공백은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막입니다.
'총독부 규칙'에서 출발한 법의 계보
장사법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왜 이 법이 그토록 관리 지침에만 매몰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현행 장사법의 전신은 1962년 제정된 「매장및묘지등에관한법률」인데, 이 법은 1912년 조선총독부령 제123호 '매장취제규칙'을 폐지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법의 계보가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 규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납골당'이라는 용어 역시 일본에서 유입된 표현이었습니다. 정부가 2007년 장사법 개정을 통해 이를 '봉안당'으로 공식 교체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어는 바꿨지만, 법의 본질적인 구조—시신 처리와 유골 보관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관리 규제 틀에 묶는 방식—는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이것이 직접 이식이었는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가 이후의 방향을 규정한다는 경로 의존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1912년 총독부 규칙이 이 법의 출발점이었고, 그 이후 100년이 넘도록 기본 구조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장사법은 죽음을 다루는 법이 아니라, 죽음이 차지하는 '부동산'을 다루는 법이다."
같은 구조를 가진 나라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다른 길
유골재를 시신과 동일하게 규율하는 구조가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독일과 폴란드에서도 같은 구조가 확인됩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한국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법이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를, 적어도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은 가장 유사한 사례입니다. 1934년 제정된 'Friedhofszwang(묘지 의무)' 법은 관이든 유골함이든 모든 유해를 반드시 공인된 묘지에 안치하도록 규정합니다. 원래 목적은 시신이 아무 곳에나 매장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전염병 우려, 즉 보건위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일 당국은 스스로 이 논리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화장 과정에서 모든 미생물이 소멸하므로 유골재에 위생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으로 인정하면서도, 규제를 유지하는 이유를 다른 논거로 전환했습니다. 공인된 추모 장소는 문화적으로 중요하며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이른바 '공동체 애도권'의 논리입니다. 논리가 충분한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적어도 독일은 "위생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이 규제를 유지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그 결과도 분명합니다. 규제가 너무 경직되어 유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유골을 처리하기 위해 스위스로 고인의 유골을 보내는 이른바 '유골 관광'이 최근 10년 사이 급증했고, 독일 사회는 이 문제를 공개적 논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폴란드 역시 화장 유골을 반드시 묘지에 안치해야 하는 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경우 근거는 명확합니다. 가톨릭 전통에서 비롯된 시신 존엄 보호라는 종교적 세계관이 법의 논리적 기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영국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영국법은 화장 후 유골재에 대해 매장에 적용되는 법적 요건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습니다. 토지 소유자의 동의만 있으면 강·바다·산 어디서든 산골이 가능하고, 집에 유골을 보관하는 데 기간 제한도 없습니다. 출발점이 다릅니다. 위생적 위해가 없는 물질에는 시신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할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위스는 더 단순합니다. "화장이 완료되는 시점에 법적으로 장례가 종결된다"는 원칙을 채택하여 이후 유골 처리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습니다. 독일인들이 유골을 스위스로 보내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한국 장사법의 구조적 문제가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독일은 같은 결함을 가지면서도 그 결함을 인식하고, 규제 유지의 이유를 공동체 추모권으로 전환했습니다. 폴란드는 종교적 세계관이라는 명확한 가치 기반 위에서 법을 운용합니다. 영국과 스위스는 위해성 판단에 따라 유골재를 시신과 구분했습니다. 한국은 어느 쪽도 아닙니다. 1912년 총독부 위생 규칙에서 출발한 논리를, 명시적 전환도 없이, 새로운 근거도 없이, 100년 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왜 유골재를 시신처럼 규제하는가라는 질문에 이 법은 답하지 않습니다. 답하지 않아도 되도록 '장사'를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존, 보전, 순환: 법이 구분하지 못한 세 가지 길
장사의 흐름에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시신을 물리적으로 처리하는 단계와, 그 이후 골분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단계입니다.
첫 번째 단계(매장과 화장)에서는 위생, 토지 이용, 공공 안전의 문제가 실제로 발생합니다. 법이 개입해야 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사회는 세 가지 답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보존(保存)은 유골함에 담아 봉안시설 선반에 올려두는 방식입니다. 공간을 점유하고 시설을 필요로 하며, 시간이 지나도 형태를 유지합니다. 무덤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수직화한 것으로, 점유라는 속성은 그대로입니다.
순환(循環)은 골분을 강이나 바다, 산에 뿌리는 방식입니다. 시설이 필요 없고 공간을 점유하지 않으며, 자연의 물질 흐름 속으로 곧바로 돌아갑니다.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화장 후 자연스럽게 여겨온 방식이 이것이었습니다. 빠르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자유로움을 위해 화장을 택했던 문화입니다.
보전(保全)은 이 둘 사이에 있습니다. 수목장이나 자연장처럼 골분을 자연 속에 돌려보내되, 그 땅과 생태계를 함께 지키는 방식입니다. 단순한 산골과 달리 생태 보전의 논리가 결합됩니다. 나무의 뿌리가 되고, 숲이 되고, 그 숲이 계속 살아있는 추모의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세 가지는 완전히 다른 철학을 가집니다. 보존은 '죽음 이후에도 존재를 유지한다'는 관념에서 출발합니다. 순환은 '빠르게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자유를 지향합니다. 보전은 '돌아가되, 그 돌아감이 살아있는 세계에 기여한다'는 생태적 사유입니다.
그런데 장사법은 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법 제17조는 묘지·화장시설·봉안시설·자연장지를 한 줄에 나열하며 동일한 입지 제한 구역을 적용합니다. 보존의 공간도, 순환의 공간도, 보전의 공간인 자연장지까지 모두 같은 규제 칸에 묶입니다. 위생적으로 무해한 골분 보관 시설이 화장장과 동일한 혐오시설 취급을 받게 된 것도, 생태적 가치를 가진 자연장지가 도심 밖 산속에 갇혀 있는 것도, 이 구분 없는 열거에서 비롯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법이 보존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설 봉안시설에는 안치 기간 제한이 없습니다. 영구 보존이 법의 묵인 아래 산업의 주류가 됩니다. 반면 순환과 보전은 지정 구역 안에서만, 법이 허락한 방식으로만 가능합니다. '봉안당은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은 시민의 편견이 아닙니다. 법이 논리적 구분 없이 시설을 한 묶음으로 취급한 행정적 결과입니다. 자연장이 변두리 선택지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문화적 보수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법이 보전과 순환을 선택하기 쉽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정합성이 낳은 영구 안치 비즈니스의 덫
장사법 제1조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목적으로 내세웁니다. 그러나 실제 규정은 이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분묘는 30년에 1회 연장으로 최장 60년의 설치 기간 제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설 봉안시설에는 국가법 차원의 안치 기간 제한이 없습니다. 무덤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선반에 수직으로 쌓았을 뿐, 항구적 점유라는 속성은 그대로인 구조가 법의 묵인 아래 산업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위생적으로 무해한 골분에 화장장 수준의 입지 규제를 적용해 도심 진입을 막고, 동시에 기간 제한 없는 영구 보관을 방치하는 구조. 법이 목적으로 내세운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법 자신이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목적 조항은 제1조에 있고, 그것을 무력화하는 조항들은 본문 곳곳에 흩뿌려져 있습니다.
보존이 기본값인 법 안에서, 순환과 보전은 항상 예외적 선택지입니다. 예외는 불편하고, 불편한 것은 선택받지 못합니다. 법이 어느 쪽을 쉽게 만들었는지가 우리 죽음 문화의 현재를 설명합니다.
보존에서 보전과 순환으로
대한민국의 화장률은 이제 90%를 넘어섰습니다. '화장 장려'라는 2001년의 입법 목표는 이미 달성되었습니다. 이제 물어야 할 질문은 다음입니다. 화장된 유골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보존되어야 하는가, 순환해야 하는가, 아니면 보전의 방식으로 자연에 기여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세 가지 개편이 필요합니다.
첫째, 법 제2조에 '장사' 자체의 정의를 삽입해야 합니다. '시신이나 유골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이라는 정의가 들어가는 순간, 이후 모든 조항은 그 정의에 복무해야 합니다. 보존을 기본값으로 유지하는 현재 구조는 이 정의와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낯선 요구가 아닙니다. 영국과 스위스는 이미 위생적 위해가 없는 유골재를 시신과 구분해 처리하고 있습니다. 독일조차 위생 논리만으로 유골재 규제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공식으로 인정했습니다. 비교법적 근거는 충분합니다.
둘째, 봉안시설과 자연장지를 묘지·화장시설과 분리해 별도의 입지 규율을 적용해야 합니다. 보존의 공간, 순환의 공간, 보전의 공간은 각기 다른 위험도와 사회적 기능을 가집니다. 이것을 한 줄에 나열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이지 합리적 규제가 아닙니다. 위생과 무관한 시설에 화장장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행정 낭비이자, 추모 공간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장벽입니다.
셋째, 사설 봉안시설에 안치 기간 상한을 설정하고, 기간 종료 후 순환 또는 보전의 방식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법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보존이 끝나는 지점에서 자연이 시작될 수 있도록 법이 그 통로를 열어야 합니다.
1912년 총독부의 시신 위생 규칙에서 출발해 100년 넘게 이어진 이 법의 계보는 이제 다른 언어를 필요로 합니다. 부동산의 언어가 아닌 생명의 언어, 보존의 언어가 아닌 순환과 보전의 언어. 우리의 마지막 여정이 규제 목록이 아닌 존엄한 귀환으로 기록되려면, 법은 먼저 자신의 이름에 담긴 단어의 뜻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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