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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엔딩

4페니 관

 

Four Penny Coffin


19세기 영국에는 '4페니 관(Four Penny Coffin)'이라는 것이 있었다. 극빈층 노동자들이 4페니를 내고 관 모양의 침대에서 하룻밤을 자는 빈민 숙소였다. 살아있는 사람이 관 속에서 자는 것이다. 맥락은 딱하지만, 관이 단순한 죽음의 도구가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도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이 묘하게 흥미롭다. 캡슐 호텔의 원조다.
 

  • 1페니는 그냥 앉아서 버티기
  • 2페니는 줄에 몸을 기대어 자기 (Two Penny Hangover)
  • 4페니는 전용 관에서 누워 자기

Two Penny Hangover


1884년 런던, 화이트채플의 어느 겨울밤

템스강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이 런던의 골목마다 스며들었다. 석탄 연기와 마천루의 그림자가 뒤섞인 화이트채플의 밤은 숨이 막힐 듯 무거웠다. 토마스는 낡은 외투 깃을 바짝 세웠지만, 해진 옷감 사이로 파고드는 냉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오늘 하루 온종일 부두에서 짐을 나르고 받은 차가운 동전 네 개가 들어있었다. 딱 4페니였다.

어제 그는 '2페니 줄(Two Penny Hangover)'에서 밤을 지새웠다. 기다란 밧줄에 몸을 지탱한 채 서서 잠을 청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새벽녘, 관리인이 밧줄을 풀어버리자 바닥으로 고꾸라지던 비참함이 아직도 뼈마디마다 남아 있었다. 토마스는 결심했다. 오늘은 반드시 '누워서' 자겠노라고.

"4페니입니다. 가죽 덮개는 포함이지만, 코골이는 사절입니다."

구세군 쉼터의 관리인은 무심하게 동전을 가로챘다. 토마스는 거대한 창고 같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나무 상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관(Coffin)이라 불리는 그 상자들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직 죽지 못한 자들이 하룻밤을 빌리는  침대였다.

상자 안에 몸을 뉘었다. 폭 60센티미터의 좁은 공간. 사방이 나무 벽으로 막힌 그곳에 눕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격리된, 오직 나만을 위한 한 평도 안 되는 우주. 토마스는 비로소 다리를 쭉 뻗었다. 낡은 타르칠을 한 가죽 덮개가 가슴 위로 덮였다. 차가운 나무 냄새가 코끝을 스쳤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댈 필요도, 끊어질 듯한 밧줄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다.

옆 상자에서는 누군가의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역시 4페니의 안식을 산 동료였다. 토마스는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천장의 어스름한 램프 불빛을 바라보았다. 이 상자가 진짜 관이 되어 내일 아침 눈을 뜨지 못한다 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온했다.

"내일은 5페니를 벌 수 있을까."

그는 중얼거렸다. 5페니가 있다면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런던의 겨울은 길었고, 인간의 체온은 4페니짜리 나무 상자보다 빠르게 식어갔다. 토마스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서서히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19세기 런던, 가난한 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는 죽음을 닮은 이 좁은 상자 안에서의 하룻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