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몇 년 사이, 세계 각국에서 조용히 반복된 장면이 하나 있다. 한 나라의 장례업계 선두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이 바뀌어 있는 장면이다. 그것도 대부분 같은 유형의 새 주인, 사모펀드나 연기금, 혹은 선불 장례 상품과 맞닿은 보험사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례는 호주다. 2023년 11월, 호주 최대 장례업체 인보케어가 미국계 사모펀드 TPG에 약 18억 호주달러(미화 약 12억 달러)에 인수되며 증시에서 사라졌다. 같은 해 5월 영국에서는 대표 상장 장례기업이자 지점 수 기준 업계 2위권인 디그니티가 캐슬노그룹·SPWOne V·피닉스 애셋 매니지먼트 컨소시엄에 인수되어 역시 상장폐지됐다. 인수가(지분가치)는 약 2억 8,100만 파운드, 부채를 포함한 기업가치는 약 7억 8,900만 파운드였다. 캐나다에서는 이듬해인 2024년 8월, 캐나다 자본 소유 최대 상장 장례·묘지 사업자였던 파크론이 미국 선불 장례보험사 홈스티더스 라이프와 캐나다 사모펀드 버치힐 연합에 팔려나갔다. 주당 26.5캐나다달러로, 발표 직전 종가에 62.1퍼센트의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이다. 프랑스는 조금 더 일찍, 2015년 소수 지분 투자를 거쳐 2017년 과반(74퍼센트)을 확보한 캐나다 온타리오주 교원연금이 자국 1위 업체 OGF를 지배하고 있다. 이 지배 구조는 2026년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 VIG파트너스는 2016년 좋은라이프를 시작으로 금강문화허브(2017년), 모던종합상조(2019년)를 차례로 사들인 뒤, 2020년 좋은라이프를 통해 프리드라이프를 약 2,600억 원에 인수했다. 이듬해 프리드라이프가 좋은라이프 등을 흡수합병하며 통합법인이 출범했고, 2021년 공정위 공개 자료에서 선수금 1위(약 1조 4,800억 원)로 올라섰다. 이후 선수금은 1조3천억 원대에서 2024년 말 2조5천억 원대로, 회원 수는 140만 명에서 230만 명으로 늘며 격차를 벌렸다. 2025년 6월, VIG는 지분 99.77퍼센트를 웅진그룹에 8,879억 원에 되팔았다. 5년 만에 사모펀드에서 대기업으로 주인이 바뀐 셈이고, 웅진은 이 인수로 12년 만에 대기업집단에 복귀했다. 웅진프리드라이프의 선수금은 2026년 4월 기준 3조 166억 원(가입자 257만 명)으로, 상조업계 최초로 3조 원을 넘어섰다.
정리하면 이렇다. 호주 최대, 영국 대표 상장사, 캐나다 대표 상장사, 프랑스 1위, 그리고 한국 1위까지.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 어떤 곳은 증시에서 퇴출됐고, 어떤 곳은 사모펀드 사이에서 손바뀜이 일어났고, 어떤 곳은 사모펀드에서 대기업으로 넘어갔다 - 결국 국가마다 존재하는 "죽음을 관리하는 선두 기업"이 최근 몇 년 새 잇달아 소유구조를 바꿨다는 사실만은 공통적이다. 1위 기업 가운데 유일한 예외는 미국의 SCI다. 이 회사만은 여전히 뉴욕증시에 상장된 채로 남아, 분기마다 실적을 공개하며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장례업일까.
답은 이 산업이 가진 특이한 성격에 있다. 장례업은 경기를 그다지 타지 않는다. 불황이든 호황이든 사람은 죽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선진국에서 사망자 수는 장기적으로 늘어난다. 다만 사망자 증가가 곧바로 매출 증가는 아니다. SCI의 장례 건수는 2026년 1분기 6퍼센트, 2분기 1.7퍼센트 줄었고, 영국에서는 직접 화장이 장례의 5분의 1에 이르렀으며, 한국에서도 가족장·간소 장례가 퍼지고 있다. 그래서 건수보다 건당 단가와 선불 계약이 중요해진다.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 미리 장례비를 내고, 그 돈은 신탁이나 준비금 형태로 회사 안에 쌓인다. 웅진프리드라이프의 3조 원, SCI의 약 176억 달러 백로그가 바로 이런 돈이다. 보험사의 플로트(float)와 원리가 똑같다. 파크론 인수 주체에 선불 장례보험사가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본 입장에서는 경기 방어적이고, 장기 수요가 구조적으로 받쳐주며, 심지어 고객이 돈을 먼저 맡겨주는 드문 자산이다.
동시에 이 산업은 일반 주식시장에서는 그다지 사랑받지 못한다. 성장 스토리를 팔기 어렵고, 소비자 감성상 화려한 마케팅도 조심스러우며, 어느 나라에서든 가격 논란과 규제 리스크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상장 유지에 드는 공시 부담과 주가 변동성을 견디느니, 비상장으로 전환해 장기 관점으로 운영하는 편이 사모펀드나 연기금 같은 장기투자자에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다만 비상장 전환이 곧 몸 사리기는 아니다. 디그니티는 인수 이듬해인 2024년 10월 디지털 유언·장례 스타트업 페어윌을 사들이며 사업 확장에 나섰다.
한국의 경우는 여기에 조금 다른 결이 하나 더 있다. 프리드라이프를 인수한 것은 사모펀드가 아니라 웅진이라는 종합 기업이다. 웅진은 교육, 여가, 헬스케어, 요양, 장례까지 아우르는 "토탈 라이프 케어"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웅진 이전에도 교원, 대교 같은 교육기업이 상조 시장에 뛰어들었고, 코웨이도 2024년 10월 코웨이라이프솔루션을 세워 진출했다. 2026년 3월 말 기준 국내 상조시장 선수금은 76개 업체 합계 11조 3,544억 원으로 커졌고, 교원라이프(1조 7,367억 원)는 보람그룹(1조 6,817억 원)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고령화 사회에서 요람부터 무덤까지 한 고객을 오래 붙잡아두려는 생애주기 사업 전략이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선수금이 커진 만큼 규제도 따라오고 있다. 할부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공정위는 상조회사 자산운용과 선수금 보전을 점검하고 있다.
결국 두 갈래의 큰 그림이 겹쳐 있는 셈이다. 하나는 순수하게 재무적인 그림으로, 안정적 현금흐름을 노리는 사모펀드와 연기금이 세계 각국의 장례업 선두 기업을 조용히 사들이는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전략적인 그림으로, 고령화 사회를 맞아 시니어 생애주기 전체를 하나의 사업권으로 묶으려는 대기업들의 확장 전략이다. 한국의 프리드라이프 사례는 이 두 그림이 순서대로 겹친 경우다. 먼저 사모펀드가 재무적으로 몸집을 불려놓았고, 그다음 대기업이 전략적으로 그 몸집을 사들였다.
이 흐름 속에서 유독 SCI만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이미 압도적인 규모와 약 176억 달러의 안정적 백로그를 확보한 SCI 입장에서는, 굳이 비상장으로 전환해 몸을 숨길 이유가 없다. 오히려 매 분기 실적을 공개하며 시장의 신뢰를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는 무기로 쓰는 쪽이 더 유리하다. 세계 각국의 장례업 선두 기업들이 하나둘 대중의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사이, 유일하게 시장 한복판에 남아 있는 이 미국 기업의 존재가 오히려 예외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출처: InvoCare IR · Castelnau Dignity · Park Lawn 종결 공시(2024.8.9) · 딜사이트(VIG 매각) · 머니투데이(3조 돌파) · 아시아경제(2026.7.3 상조시장) · SCI 2026년 2분기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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