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 번 돌려막았다. 다음엔 그럴 여유가 없다

2031년, 64만 5천 기 이상의 무덤이 한꺼번에 만료된다
추석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이 벌초를 하고 성묘를 간다. 조상의 산소 앞에 서서 절을 하고 술 한 잔을 올리면서도, 정작 이 무덤이 앞으로 몇 년이나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답은 이미 법으로 정해져 있다. 2031년 1월, 전국에서 64만 5천여 기의 무덤이 동시에 법적 사용기한을 맞는다. 보건복지부가 한시적 매장제도의 적용 대상으로 파악한 숫자다. 신고조차 되지 않은 무연분묘까지 더하면 실제 규모는 훨씬 커진다. 지금 법대로라면 이 무덤들은 개장해서 화장하고 봉안해야 한다.
이 시한은 원래 2016년 1월이었어야 했다. 2001년 시행된 장사법은 분묘 사용기한을 15년으로 정했다. 그런데 첫 만료를 2주 앞둔 2015년 12월 29일, 정부와 국회는 법을 급하게 고쳐 기한을 30년으로 늘렸다. 묘를 정리할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시한이 코앞에 닥치자, 기한 자체를 늦춰버린 것이다. 그렇게 미뤄진 시한이 2031년 1월이다.
법대로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나
장사법 제20조는 사용기한이 끝난 분묘의 연고자에게 1년 안에 시설물을 철거하고 유골을 화장하거나 봉안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제40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64만 5천 기가 전부 자동으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연고자가 확인되면 법적으로 한 번 더, 30년을 추가로 연장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최장 60년까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문제는 연고자가 없거나 확인되지 않는 분묘, 그리고 애초에 신고조차 안 된 무연분묘다. 이런 무덤에는 이 안전판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2021년 기준 전국의 무연고 묘지는 약 220만 기로 추정된다. 한시적 매장제도가 파악하고 있는 64만 5천 기는, 어쩌면 이 훨씬 큰 문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산으로 보면 답이 안 나온다
2010년, 보건복지부는 대한지적공사(현 한국국토정보공사)에 의뢰해 전국 5개 지역을 표본으로 묘지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전체 묘지의 15.6%가 무연분묘로 추정됐다. 이 조사를 전국 단위로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 조사 비용만 최소 2,221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실제로 개장한 유해를 처리하는 비용은 여기에 최소 수조 원이 더 얹힌다. 조사에만 2천억 원대, 집행에는 그 몇 배가 드는 사업이다. 행정력도, 예산도, 정치적 유인도 이만한 규모를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는 알고 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27년까지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사전 준비를 마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지자체 반응은 회의적이다. 묘지 정비에 예산을 쓰겠다고 하면 "그 돈으로 차라리 다리를 놓지"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표를 얻기 어려운 사업에, 누구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는 구조다.
5년 뒤, 우리는 또 기한을 늘릴 것인가
이미 한 번 겪은 일이다. 2016년, 원칙은 세워놓고 준비는 하지 않다가, 닥치자 기한만 늘렸다. 지금 이대로 가면 2031년에도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법 조문상 60년까지는 이미 열려 있는 길이니, 이번에도 조용히 기한만 밀어버리는 쪽이 정치적으로는 더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리해야 할 무덤은 쌓이고, 정작 정리할 방법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채로 다음 세대에게 넘어간다.
64만 5천이라는 숫자는 익명의 통계가 아니다. 그중 한 기가 우리 집 산소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추석, 성묘나 벌초를 다녀오는 길에 우리 집 산소의 사용기한이 언제까지인지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기한이 2031년에 가깝다면, 더더욱.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려면, 화장 하나에만 의존해온 지금의 장례 시스템 자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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