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률 95%의 나라가 다시 매장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
5년 뒤인 2031년 1월, 전국 64만 5천여 기의 무덤이 한꺼번에 법적 사용기한을 맞는다. 지난 기사에서 살펴본 이 위기는, 사실 훨씬 더 큰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한국에서 죽음 이후의 선택지를 이야기하면 거의 언제나 화장부터 떠올린다. 화장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집계로 2024년 12월 기준 전국 화장률은 95.1%에 달한다. 반면 매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장법 취급을 받는다. 묘지는 국토를 잠식하고, 관리하기 어렵고, 후손에게 부담을 남기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매장을 줄이고 화장을 늘리는 일을 장례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처럼 여겨왔다.
그 선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산과 들에 흩어진 봉분은 지나치게 넓은 땅을 차지했고, 벌초와 관리에 드는 비용과 노동도 만만치 않았다. 산업화와 도시화,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먼 산에 있는 조상의 묘를 돌볼 사람도 줄었다. 매장은 점점 현실과 맞지 않는 장법이 되어갔고, 화장은 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정말 문제였던 것이 매장이라는 장법 자체였을까, 아니면 매장을 관리해온 방식이었을까.
우리는 매장의 문제를 개선하기보다 화장 쪽으로 방향을 아예 틀었다. 그 결과 장사 수요 대부분이 화장시설이라는 하나의 관문에 몰리게 됐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고, 발인을 하고, 화장장으로 이동해 화장로를 거쳐야 한다. 시설의 처리능력이 충분할 때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망자가 일시적으로 몰리거나, 특정 지역의 화장시설이 부족하거나, 시설에 장애가 생기거나, 예약 시스템이 멈추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 곳의 병목이 곧 모든 유족의 병목이 된다.
이것은 장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인프라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력, 교통, 통신, 의료가 그렇듯 하나의 방식에 모든 수요를 몰아넣으면 효율은 오르지만 그만큼 취약해진다. 국가의 장례 시스템 전체가 하나의 장법에만 의존하면, 그 장법의 시설이 막히는 순간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일은 화장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화장을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되돌려놓는 일이다. 화장률을 100%에 가깝게 끌어올리는 것이 장례정책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화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 그 길을 열어주고, 그 선택이 국토와 환경, 관리 측면에서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장례정책이어야 한다.

한국은 매장을 없앤 게 아니라, 손보지 않고 내버려 뒀다
과거의 매장은 한 사람의 죽음을 하나의 봉분으로 남기는 방식이었다. 가족이나 문중이 산자락에 땅을 확보하고 봉분을 쌓고 주변을 관리했다. 한 번 조성된 무덤은 사실상 영구히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간이 지나면 묘가 늘고, 묘 사이 공간과 진입로, 관리 공간까지 더 필요해졌다. 이런 방식이라면 매장이 국토를 잠식한다는 비판은 당연했다.
여기에는 착각이 하나 있다. 매장이 국토를 많이 차지한 건 매장이라는 장법 자체 때문이 아니다. 묘지가 집단화되지 못한 채 산과 들 곳곳에 흩어져 개별적으로 조성되고 관리돼온 방식이 문제였다.
묘지 한 기를 만들어 그 땅을 영원히 한 사람에게 배정하는 방식과, 일정 기간 사용한 뒤 같은 땅을 다시 쓰는 방식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봉분을 높게 쌓고 넓은 관리 공간을 두는 방식과, 여러 무덤을 하나의 묘역으로 모아 평장으로 조성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다르다.
매장을 없애는 것과 매장을 바꾸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전자를 택했다. 이제는 후자를 고민할 때다.
사실 한국의 법제도에도 한시적 매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들어와 있다. 매장을 영구적인 토지 점유로 보지 않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리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문제는 이 제도가 묘지 사용기간만 정해뒀을 뿐, 그 기간이 끝난 뒤 묘지를 어떻게 정리하고 그 공간을 어떻게 다시 순환시킬지에 대한 설계는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과제는 "기간이 끝난 묘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가 아니다. "사용기간이 끝난 묘역을 다음 세대가 다시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영국의 '리프트 앤 딥'이 던지는 질문
이런 관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영국의 '리프트 앤 딥(Lift and Deepen)'이다. 2007년 제정된 런던지방자치법(London Local Authorities Act 2007)에 따라, 마지막 매장 이후 75년이 지난 무덤 가운데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은 곳을 대상으로 기존 유해를 더 깊은 곳으로 옮겨 다시 안치한 뒤, 그 위에 새로운 매장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런던시티묘지, 뉴사우스게이트묘지 같은 곳에서 실제로 시행되고 있다. 이름 그대로 무덤을 들어 올려 더 깊이 조성하고, 이미 쓴 땅을 다시 쓰는 것이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무덤을 영원히 점유하는 공간으로 볼 것이냐, 일정 기간 쓰는 공간으로 볼 것이냐의 차이다.
이걸 한국식으로 옮겨보면 이렇다. 일정한 안식기간을 보장하고, 그 기간이 지난 분묘 가운데 연고가 사라졌거나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용기간이 끝난 분묘를 대상으로 기존 유해를 예를 갖춰 재배치한다. 그리고 그 위나 인접한 공간에 새로운 매장과 자연장을 허용하는 것이다.
물론 영국 제도를 그대로 들여온다고 풀릴 문제는 아니다. 장사법, 개장 절차, 연고자 확인, 유골 처리, 분묘를 둘러싼 권리관계까지 손봐야 할 법적 과제가 많다. 그래도 핵심은 새 법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한시적 매장제도를 실제로 작동시켜 묘지를 순환적으로 쓸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다.
한번 쓴 공간을 다시 쓰는 것. 그게 지속가능한 장묘 공간의 핵심이다.
집단화, 자연장화, 그리고 순환
여기에 집단화가 더해지면 매장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
과거에는 가족마다 산에 묘를 만들었다. 앞으로는 흩어진 묘를 하나의 공설 또는 공공성이 확보된 묘역으로 모을 수 있다. 개인묘와 문중묘가 산자락 곳곳에 흩어진 구조를 그대로 두는 대신, 일정 구역에 집단화하고 관리시설과 진입로를 함께 쓰는 것이다.
여기에 봉분을 없애고 자연장으로 전환하면 공간 효율은 한층 높아진다. 묘역 전체를 공원처럼 설계하고, 무덤과 무덤 사이 불필요한 관리 공간을 줄일 수 있다. 벌초를 위해 해마다 산을 오르는 대신, 묘역 자체를 하나의 녹지로 관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일정한 사용기간과 순환 시스템까지 결합하면 이야기는 또 한 번 달라진다. 흩어진 개인묘를 모으고, 봉분 대신 자연을 남기고, 다 쓴 공간은 다시 돌려 쓰는 것. 이 세 가지가 맞물릴 때 매장은 비로소 지속가능해진다.
이건 과거의 매장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매장을 버리고 21세기형 매장으로 다시 설계하자는 얘기다.
무덤 1기마다 봉분 하나를 영구히 남기는 대신, 하나의 묘역을 여러 세대가 나눠 쓰도록 만드는 것. 무덤을 부동산처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쓰는 공공 인프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진짜 자연매장'도 선택지에 넣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자연장이라고 하면 대개 수목장이나 잔디장, 화초장처럼 화장한 유골을 자연에 안치하는 방식을 떠올린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자연장(Natural Burial)은 조금 다르다. 핵심은 화장이 아니라 매장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시신을 생분해성 관이나 수의를 이용해 흙에 직접 매장한다. 회벽으로 마감한 광중이나 접착제로 붙인 집성목 관처럼 자연분해를 방해하는 요소는 최소화한다. 봉분과 큰 묘비 대신 자연 지형과 식생을 중심으로 묘역을 꾸민다. 무덤의 위치는 디지털로 관리하고, 묘역 전체는 공원이나 숲에 가까운 형태로 유지한다.
물론 한국에 이런 방식을 들여오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위생관리 기준, 생분해성 관과 수의의 규격, 매장 깊이, 토양과 수질 관리, 묘역의 위치와 관리 방식까지 세부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자연매장이라는 새 장법'을 발명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법체계에 이미 있는 매장을 자연매장 방식으로 다시 설계하는 문제다.
생분해성 관 또는 관 없는 매장, 자연형 묘역, 평장, 최소한의 표식, 장기적인 토지관리. 여기에 앞서 말한 안식기간과 순환 시스템을 결합하면 된다. 새 그릇이 아니라, 있던 그릇에 새 선택지를 담는 일이다.
화장과 매장은 경쟁자가 아니다
이렇게 보면 화장과 매장의 관계도 달라진다. 화장을 원하는 사람은 화장하면 된다. 봉안시설을 원하는 사람은 봉안하면 된다. 산분을 원하는 사람은 산분하면 된다. 그리고 화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연매장이라는 길이, 전통적인 매장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기준 아래 매장이라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장례에도 '복수의 경로'가 있어야 한다.
화장시설에 문제가 생겨도 모든 장례가 동시에 발이 묶이지 않는 구조. 한 지역의 화장장이 부족해도 다른 장법을 고를 수 있는 구조. 한시적 매장과 순환형 묘역 덕분에 새 땅을 계속 확보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친환경 자연매장까지 고를 수 있는 구조.
이런 시스템이라면 화장률 95%는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나머지 5%의 매장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그리고 국민이 원할 때 그 비율을 늘릴 수 있는 인프라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다.
화장률 100%는 목표가 될 수 없다
지난 수십 년, 한국은 매장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그 성공을 다시 평가해볼 시점이다. 화장률이 50%대에서 95%대로 올라온 것은 단순한 통계 변화가 아니다. 장례 시스템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옮겨갔다는 뜻이다. 과거엔 땅이 병목이었다면, 지금은 화장시설이 병목이다.
그렇다고 답이 하나뿐인 건 아니다. 화장장을 더 짓고 화장로를 늘려 더 많은 사람을 그 안에 밀어 넣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일까. 그럴 필요는 없다. 화장이 문제가 아니라, 화장만 가능한 시스템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화장은 좋은 장법이다. 하지만 좋은 장법이라는 이유로 유일한 장법이 될 필요는 없다. 매장도 얼마든지 좋은 장법이 될 수 있다. 다만 과거의 매장 그대로여서는 안 된다.
과거의 매장이 봉분과 영구점유의 매장이었다면, 미래의 매장은 집단화와 평장, 순환과 자연매장이어야 한다. 무덤 하나를 영원한 땅으로 보는 대신 묘역 전체를 여러 세대가 나눠 쓰는 공간으로 만들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쓸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자연매장 구역에서는 생분해성 관이나 관 없는 매장으로 시신을 자연의 순환에 돌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비석은 최소화하고, 자연을 묘역의 주인공으로 세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매장은 더 이상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화장 중심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새로운 장례 인프라가 된다.
한국은 매장을 없앤 게 아니다. 제대로 손보지 않고 내버려 뒀을 뿐이다.
이제 다시 생각할 때다. 화장률을 100%로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라, 화장하지 않아도 되는 장례의 길을 다시 여는 것. 그게 앞으로의 장례정책이 되어야 한다. 죽은 사람에게도 선택권이 필요하다. 사회에도 선택지가 필요하다.
화장만이 답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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