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배출 기준만 만들었다. 세계는 이미 그 다음 단계로 갔다.

불이 붙으면 수은이 난다
화장로에 불이 들어오면 온도는 800도를 넘는다. 그 열기 속에서 시신에 남아 있던 수은이 기화한다. 출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말감 치과 충전재다. 1830년대부터 충치 치료에 쓰여온 아말감은 무게의 절반이 수은이다. 다른 하나는 몸 자체다.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인간의 몸에는 평생 섭취한 어패류와 환경오염을 통해 축적된 수은이 간과 장기에 쌓여 있다.
기화된 수은은 굴뚝을 타고 대기로 올라간다. 활성탄 흡착탑과 백필터가 상당 부분을 붙잡지만 완전 차단은 불가능하다. 대기 중으로 나간 수은은 비를 타고 내려앉아 토양과 수계에 축적된다. 미나마타병의 원인 물질이 바로 이렇게 순환하는 수은이다. 반감기는 수십 년에 달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전국 화장장 굴뚝에서 수은이 얼마나 나오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없다. 실시간으로는 아무도 모른다.
전광판에는 없는 숫자
환경부는 주요 화장 시설에 굴뚝자동측정기기(TMS)를 설치해 운영한다. 배출 데이터가 한국환경공단으로 24시간 실시간 전송된다. 투명성을 강조하는 화장장은 입구 전광판에 수치를 공개하기도 한다. 얼핏 촘촘한 감시망처럼 보인다.
그런데 TMS의 법정 측정항목은 7가지다.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염화수소, 불화수소, 암모니아, 일산화탄소. 여기까지다. 수은은 없다.
이유는 기술적이다. 수은은 극미량 농도에서 측정되는 물질이라 연속자동측정기기 운용 비용이 높고, 현재 체계로는 주기적 수동 채취 방식에 의존한다. 분기 또는 반기마다 검사원이 직접 채취해서 분석한다. 1년에 두 번 또는 네 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에 남지 않는다.
주민들이 전광판을 보며 안심하는 그 숫자는 완전한 정보가 아니다. 화장 시설에서 가장 민감한 유해물질인 수은이 실시간 감시에서 빠져 있다.
기준은 만들었지만, 감시는 멈췄다
환경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화장로 수은 배출허용기준을 기존 대비 42% 강화해 0.05mg/Sm³ 이하로 설정했다. 현재 국내 대부분의 공설 화장장에는 활성탄 흡착탑과 백필터가 함께 설치되어 있다. 숫자만 보면 그럴듯한 규제다.
그러나 그 기준이 지켜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체계는 수동 채취 검사에 머물러 있다. 규제는 선언했고, 감시는 생략했다.
여기에 구조적 문제가 겹친다. 화장 시설의 설치 허가는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환경부는 배출 기준을 정하고 사후 관리를 맡는다. 허가권자와 관리권자가 다른 구조에서, 수은 연속측정 설비를 신규 허가 조건으로 의무화하기는 어렵다. 허가를 낸 것도 아닌 부처가 시설 구조에 관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준은 있고 감시는 없는 상태, 이 구조가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다.
세계는 이미 다른 단계에 있다
이것이 한국만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가 이미 화장장 수은 배출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2003년부터 배출허용기준을 시행했다. 독일은 대기질 기술지침에 수은 기준값을 명시했다. 이 나라들은 배출 기준 설정에 그치지 않고 실제 감시 체계까지 함께 갖추었다.
영국은 조금 다른 경로를 걸었다. 2006년 업계 자율 조직인 CAMEO(화장장 수은 배출 저감 기구)를 만들어 수은 저감 장치 설치 비용을 업계 전체가 분담하는 구조를 운영해왔다. 2012년까지 전체 화장의 50% 저감이라는 목표를 자율적으로 달성했다. 그런데 자율에만 맡기자 저감률이 70% 수준에서 정체됐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2023년 새 지침을 통해 방향을 틀었다. 2027년 1월 1일까지 전체 화장장의 95%에 수은 저감 장치를 의무 설치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자율에서 의무로, 영국이 내린 결론이다.
EU 전체 차원에서는 더 근본적인 접근이 진행 중이다. 집행위원회는 모든 화장장에 수은 저감 장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비용 대비 효과가 낮다고 보았다. 대신 원인 물질을 없애는 전략을 택했다. 2024년 개정 수은 규정을 통해 2025년 1월 1일부터 치과용 아말감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아말감을 없애면 수십 년 후에는 화장장 수은도 줄어든다는 장기적 논리다. EU는 2025년 말까지 각 회원국의 화장장 수은 배출 저감 현황을 보고받아 추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일본도 대기오염방지법에 수은 배출 기준과 정기 측정 의무를 두고 있다. 화장로에 특화된 장치 의무화는 아직 없지만, 전국 화장로의 수은 배출량을 주기적으로 집계해 국가 수은 배출 인벤토리에 포함시킨다.
한국은 어느 단계에 있는가
각국의 현황을 놓고 보면 한국의 위치가 선명해진다.
유럽 7개국이 이미 법제화한 배출 기준과 감시 체계의 결합, 영국이 2027년까지 완성하려는 95% 장치 의무화, EU가 채택한 원인 물질 차단 전략. 한국은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다.
배출허용기준은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지켜지는지를 확인하는 실시간 감시 체계가 없다. 저감 장치 설치를 강제하는 법적 의무도 없다. 아말감 퇴출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영국이 자율 체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의무화로 전환한 것이 2023년이다. EU가 아말감을 금지한 것이 2025년이다. 한국에서 화장장 수은 문제가 정책 의제에 오른 적은 아직 없다.
허가는 복지부, 관리는 환경부
이 공백이 지속되는 구조적 이유를 짚지 않을 수 없다.
화장 시설 허가는 보건복지부, 대기오염 관리는 환경부. 같은 굴뚝을 두 부처가 나눠 본다. 이 이원 구조에서 수은 연속측정 설비 의무화 같은 요구는 부처 간 협의 사항으로 표류한다. 협의는 동의가 아니다. 허가권이 복지부에 있는 이상, 환경부의 요구는 의견일 뿐이다.
영국은 환경식품농무부(DEFRA)가 화장 시설 대기오염 규제를 주도하고 의무화를 강제했다. 싱가포르는 국립환경청(NEA) 단일 체계에서 허가와 환경 관리가 함께 이루어진다. 이 나라들에서 수은 대책이 진전된 데는 소관 부처가 환경 전문성을 가진 기관이었다는 사실도 무관하지 않다.
허가와 관리가 분리된 구조는 규제 공백을 구조적으로 내장한다. 그 공백으로 수은이 통과한다.
전광판 너머의 질문
화장장 앞 전광판이 오늘도 숫자를 보여준다. 먼지, 질소산화물, 일산화탄소. 초록불이다.
그 전광판에 수은 항목은 없다. 마지막으로 수동 채취 검사를 한 것이 언제인지도 나오지 않는다. 주민들은 그 숫자를 믿는다. 숫자가 있으니 관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는 숫자가 전부가 아닐 때, 투명성은 안심의 도구가 아니라 눈가림이 된다.
화장률 95%.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화장을 많이 하는 나라다. 매년 33만 건 이상의 화장이 이루어진다. 그 굴뚝에서 수은이 얼마나 나오는지, 지금 이 순간 아무도 실시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꿀 책임이 어느 부처에 있는지, 이 나라에는 아직 명확한 답이 없다.
세계가 20년에 걸쳐 쌓아온 질문에, 한국은 이제 답을 시작해야 할 시점에 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정식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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