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천 4백만 원.
처음 그 숫자를 들었을 때, 잠시 말문이 막혔다.
경기도의 한 사설 봉안당. 1층 부부단 사용료란다. 거기에 5년마다 관리비 64만 원이 별도라고 했다. 30cm 곱하기 60cm. 두 손을 펼쳐도 다 가려질 것 같은 작은 공간 하나가 3천 4백만 원이었다.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것이다. 부지 값, 건물 값, 관리 인건비. 그렇다 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부모님을 그 작은 칸 안에 넣고, 달력에 관리비 납부일을 표시해 두고, 명절에 주차난을 뚫고 찾아가는 일. 그게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부모님은 26평짜리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사셨다.
현관을 열면 특유의 냄새가 났다. 된장찌개 냄새인지, 오래된 나무 가구 냄새인지, 아니면 그냥 '부모님 냄새'인지 —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냄새 안에 들어서면 어깨가 내려가고 숨이 편해졌다. 그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었다. 두 분의 삶 자체였다.
리모델링이 필요했다. 오래된 집이었으니까. 비용을 알아보니 대략 3천만 원 선.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봉안당 비용이랑 비슷하네.
결심이 섰다.
봉안당 대신, 집을 고치기로 했다. 그리고 두 분을 그 집에, 그 공간에 모시기로 했다.
현관 옆의 작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짐을 쌓아두던, 사실은 늘 애매했던 그 방. 나는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추모의 방.
공사가 끝나고 방 안에 추모 테이블을 들였다. 그 위에 두 분의 유골함을 나란히 올려놓았다. 살아 계실 때처럼 나란히. 옆에는 좋아하시던 꽃을 닮은 조화를 두고, 생전의 사진 몇 장을 정성껏 놓았다.
벽면에는 유리문 달린 선반을 짜 넣었다. 서랍 안에 고이 접어두었던 유품들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낡은 손목시계, 어머니가 쓰시던 머리빗, 두 분이 함께 찍은 오래된 사진 한 장. 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것들은 더 이상 '짐'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이었고, 이야기였다.
방은 작지만 기품이 있었다. 슬프기보다는 따뜻했다.
이제 나는 아침마다 그 방 앞에 선다.
"잘 주무셨어요?"
저녁에는 하루 있었던 일을 조금 늘어놓기도 한다. 그리운 날에는 문을 열고 한참 앉아 있다가 나온다.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밤에는 — 창피한 말이지만 — 문을 열고 그냥 곁에 누워 있기도 했다.
봉안당이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3천만 원으로 집을 고쳤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추모의 방이 생겼다.
비용도 비슷했고, 관리비 걱정도 없어졌고, 무엇보다 — 부모님이 늘 계시던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신다.
명절에 주차 걱정 없이 찾아뵐 수 있고, 아무 날도 아닌 평범한 화요일 저녁에도 불쑥 얼굴을 뵐 수 있다.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른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오늘도 그 방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드린다.
잘 계시죠? 저 왔어요.
사실 병원에 계실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집으로 가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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