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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죽음

법정 스님의 천화(遷化)

법정 스님이 말한 '천화(遷化)' — 전통 개념과 어떻게 같고 다른가

 

"나무꾼도 안다니는 길로 자기가 걸음을 옮길 수 있는데 까지 들어간다고,
 그리고 쓰러지는 거야. 그래도 기운이 남아 있으면 나무 긁어서 깔고,
 나무 긁어서 덮고 그리고 눕는거지. 완전 기진맥진 상태에서 그냥 그대로 가는 거야.
 그러면 시체도 못찾는 거지. 산속이니까 누가 찾을 수 있겠어,"

 

먼저, 두 가지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

법정 스님의 저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먼저 분리해야 한다. 하나는 천화(遷化)라는 단어의 전통적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법정 스님이 그 단어를 빌려 표현하고자 한 자신만의 죽음관이다. 이 둘은 일부는 겹치고, 일부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1. 전통적 천화의 핵심 — '가르침의 이동'

천화(遷化)의 본래 의미는 "이 세상에서의 교화(敎化)를 마치고, 다른 세계에서의 교화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죽음을 소멸이 아닌 활동 무대의 전환으로 보는 관점이다. 고승은 이 세상에서의 가르침이 다하면, 저 세상 혹은 다른 국토에서 다시 중생을 위한 교화를 이어간다는 대승불교적 세계관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이 개념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죽음은 끝이 아니라 연속이다. 둘째, 고승의 가르침과 역할은 세상이 바뀌어도 이어진다. 셋째, 그렇기 때문에 고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기억되고 추모되어야 한다. 즉 전통적 천화에는 가르침의 계승, 공동체의 추모, 스승과 제자 사이의 연결이라는 사회적 기능이 내포되어 있다.


2. 법정 스님의 '산속 죽음' —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인가

이 맥락에서 법정 스님의 말을 읽어보자.

 

"나무꾼도 안 다니는 길로 자기가 걸음을 옮길 수 있는 데까지 들어간다. 쓰러지면 나무 긁어서 깔고, 나무 긁어서 덮고, 그리고 눕는 거야. 완전 기진맥진 상태에서 그냥 그대로 가는 거야. 시체도 못 찾는 거지. 그것이 가장 멋진 죽음이지. 흔적 없는 죽음. 중들이 꿈꾸는."

 

이 말에서 법정 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흔적 없음'과 '혼자임'이다. 이것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무소유(無所有) 사상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이렇게 정의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그는 난초 두 분을 기르다가 집착에 빠진 자신을 반성하고 난초를 친구에게 줘버린 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을 느꼈다고 썼다. 이 무소유의 논리를 죽음에까지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는가. 죽음마저 소유하지 않는 것, 즉 죽음이 타인에게 아무런 짐도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이 된다.

 

시체를 남기는 것도, 다비식(茶毘式)을 치르게 하는 것도, 유족과 제자들이 슬픔에 잠기게 만드는 것도, 추모비를 세우는 것도 — 법정 스님의 이상 안에서는 모두 '소유'의 연장이었다. 죽음 이후에도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는 것, 남겨진 것들이 타인의 마음과 공간을 차지하는 것, 그것이 그에게는 집착이었다.

 

산속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낙엽 이불을 덮고 사라지는 것은 따라서 단순한 낭만적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의 무소유'를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3. 그렇다면 이것은 전통적 천화와 부합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부분적으로 겹치지만 핵심에서는 다르다.

 

전통적 천화의 핵심은 가르침의 이동과 연속이다. 스승이 죽어도 그 가르침은 제자들을 통해, 혹은 저 세상에서의 새로운 교화를 통해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공동체적 관점의 죽음이다. 고승의 죽음은 공동체가 함께 추모하고,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사건이다.

 

법정 스님이 꿈꾼 죽음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는 가르침의 연속보다 존재의 소멸에 더 가까운 무언가를 원했다. '시체도 못 찾는', '흔적 없는' 죽음. 이것은 전통적 천화의 사회적 의미망을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제자들이 스승의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조차 집착의 한 형태라는 생각이, 그 말 안에 깔려 있다.

 

단, 두 개념이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전통 천화가 죽음을 '이 세상에서의 임무 완수 이후의 전환'으로 보듯, 법정 스님도 자연 속에서의 소멸을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마친 자의 귀환'으로 보았다. 죽음을 공포나 패배가 아닌, 자연스러운 귀결로 바라보는 시선은 같다. 다만 전통 천화가 '다음 세계로의 이동'을 이야기한다면, 법정 스님은 '이 세계에서의 완전한 용해(溶解)'를 이야기했다.


4. 법정 스님 자신은 어떻게 갔는가

흥미롭고도 씁쓸한 사실이 있다. 법정 스님은 자신이 꿈꾸었던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지 못했다.

 

법정 스님은 2010년 3월 11일,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입적하였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장례는 최대한 그 정신을 따랐다. 딱 한 사람 누울 수 있는 크기의 대나무 평상은 법정 스님이 앉은 자리만 닳아서 반질거렸다. 그 평상에 법정 스님을 뉘었다. 위패에는 이런저런 문구 없이 '비구 법정' 네 글자만 썼다. 관도 없었고 상여도 없었다. 평소 쓰던 평상이 관을 대신했다.

 

법정은 '사후에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그의 저서들은 모두 절판, 품절되었다. 자신의 글마저 세상에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것 역시 '흔적 없는 죽음'을 향한 마지막 몸짓이었다.

 

지금 법정 스님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불일암의 나무 아래, 흙이 되어 누워 있다. 수목장(樹木葬)이었다. 비석도 탑도 없이 나무 아래 작은 안내판 하나만 있다. '법정스님 계시는 곳'이라고.


5. 결론 — 법정 스님에게 천화란 무엇이었나

법정 스님이 말한 천화는 전통적 개념을 계승하면서도, 자신의 무소유 철학 안에서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었다.

 

전통적 천화가 "가르침을 옮긴다"는 뜻이라면, 법정 스님에게 천화란 "존재 자체를 옮긴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어느 다른 세계가 아닌, 자연 그 자체로. 사람의 손에 닿지 않은 산속 깊은 곳에서, 낙엽으로 제 몸을 덮고, 아무도 찾지 못하게 사라지는 것. 그것이 그가 꿈꾼 가장 완전한 무소유였고, 가장 멋진 천화였다.

 

그는 결국 그 방식으로 가지 못했다. 하지만 관 없이 평상 위에 눕혀지고, 네 글자만 적힌 위패 하나로 떠나보내지고, 책마저 세상에서 지워지고, 이름 모를 나무 아래 흙이 된 그의 마지막은 — 산속에서 혼자 낙엽 이불을 덮고 사라지는 것과 그리 멀지 않았다. 방법은 달랐으나 정신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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