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원래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주제다. 그런데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해마다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묘지가 있다. 산책을 하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결혼식을 올리며, 아이들과 소풍처럼 둘러보기도 한다. 심지어 "죽은 자를 위한 디즈니랜드(Disneyland for the Dead)"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곳은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의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파크(Forest Lawn Memorial Park)다. 1906년 비영리 단체가 세운 묘지지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포레스트 론을 만든 인물은 따로 있다. 1912년 묘지 부지 판매를 맡아 일하기 시작한 휴버트 이턴(Hubert Eaton)이다. 그는 1917년 운영권을 넘겨받은 뒤, 단순히 묘지를 운영한 것이 아니라 '메모리얼 파크'라는 새로운 개념 자체를 만들어냈다. 공식 창립자는 아니지만 지금도 '설립자(Founder)'로 불리는 이유다.
이턴이 품은 생각은 당시로서는 거의 혁명에 가까웠다. 그는 기존의 묘지를 "보기 흉하고 음울한 돌무더기 마당"이라고 혹평했다. 그리고 자신의 묘지는 "태양이 어둠과 다르듯 다른 모든 묘지와 완전히 달라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가 남긴 '건설자의 신조(Builder's Creed)'에는 분명한 청사진이 담겨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음침한 묘비 대신 끝없이 이어지는 잔디, 하늘 높이 자란 나무, 물줄기가 솟는 분수, 아름다운 조각상,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있는 거대한 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며, 묘지는 슬픔에 잠기는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이 철학은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이턴은 세워져 있던 묘비를 대부분 없애고, 그 자리를 예술 작품으로 채워 넣었다. 원작과 정교한 복제품을 함께 들여왔고, 조각과 건축을 묘지 풍경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또한 묘지 안에 정식 장례식장(funeral home)을 만든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흔한 장례 서비스의 통합 운영이지만, 당시에는 매장과 장례 절차를 한 공간에서 해결한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혁신적이었다.
현재 여섯 곳의 포레스트 론 부지에는 약 1,500점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중 약 10%는 세계적인 명작의 복제품이다.
글렌데일 본원에는 예술 공간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의 '십자가 처형-부활의 전당(Hall of Crucifixion–Resurrection)'에는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주제로 한 서반구 최대 규모의 종교화 두 점이 전시되어 있다. 무료로 개방되는 포레스트 론 미술관에는 회화와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고문서, 사진 등이 소장되어 있으며 상설전과 특별전을 꾸준히 개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턴이 미술관을 바라본 시선이다. 그는 이곳이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스케치하고 공부하는 곳, 그리고 교사들이 학생들을 데려와 책에서만 보던 예술을 직접 보여주는 교육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묘지 안에 미술관을 세운 이유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교육과 문화에 있었던 셈이다.
포레스트 론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안장이다. 월트 디즈니,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수많은 배우와 음악가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죽음만 기념하지 않는다. 1940년에는 로널드 레이건과 제인 와이먼의 결혼식이 부지 내 교회에서 열렸고, 이후에도 수천 건의 결혼식이 이어졌다. 한 공간에서 장례와 결혼이 함께 이루어지는 풍경은, 삶과 죽음을 하나의 연속선으로 바라본 이턴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사람들은 포레스트 론을 '죽은 자를 위한 디즈니랜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턴은 방문객들이 입장료를 내고 건축과 예술품을 감상하는 모델을 도입했고, 20세기 전반 포레스트 론은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며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에도 매년 백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
공원의 건축적 구성 역시 하나의 여행처럼 이어진다. 할리우드 힐스 지점에는 보스턴의 역사적인 올드 노스 처치를 재현한 건물이 서 있고, 한때는 올멕 거석 두상과 아즈텍 태양력, 테오티우아칸 부조 등을 배치한 메소아메리카 광장도 조성됐다. 서구의 종교미술과 미국 식민지 시대 건축, 중남미 문명의 유산이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묘지라기보다 하나의 세계사 박물관을 걷는 듯한 경험을 의도한 셈이다.
그래서 포레스트 론은 단순히 아름다운 묘지가 아니다. 조경과 예술, 건축, 장례 서비스, 교육 기능을 하나로 묶으며 현대 메모리얼 파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죽음을 기억하는 장소를 삶을 기념하는 문화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휴버트 이턴의 실험은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아남았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철학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결국 포레스트 론의 성공은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된다. 예술(조각과 회화, 미술관), 상징(부활과 영생, 다양한 문화권의 건축), 서비스(장례식장·예배당·결혼식장의 통합 운영), 개방성(누구나 무료로 산책하고 관람할 수 있는 공원), 그리고 브랜드(유명 인사들의 안장이 만드는 상징성)다.
사람들은 흔히 묘지를 혐오시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포레스트 론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죽음을 숨길 것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공간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백만 명이 그 질문에 발걸음으로 답했다. 포레스트 론은 결국 죽음을 가장 두려운 장소가 아니라, 삶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공원으로 바꿔낸 세계 최초의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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