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 당신은 절대로 나를 괴롭힐 수 없어! 빠져나올 수 있으면 빠져나와 봐!"
월하의 공동묘지, 전설의 고향, 드라큐라, 케리...
죽은 자가 무덤을 헤치고 되살아나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이야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 아라비아, 러시아, 폴란드, 터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 발칸지방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있습니다.
이렇게 널리퍼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성급한 매장’입니다. 실제로 가사상태로 매장된 사람이 살아나 묘지에서 기어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런 사람을 귀신 또는 흡혈귀와 동일시하여 두려워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염병 또한 그 원인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는 전염을 막으려면 환자를 격리하거나 매장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생매장을 당한 환자가 가까스로 땅 속에서 기어나와도 사람들에게 환영받기는 커녕 두려움의 대상이 될 뿐이었습니다.
묘지에서 되살아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관 뚜껑을 열고 나와, 섬뜩한 모습으로 달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홀쭉해져 있고 움푹 들어간 눈에서는 기이한 빛이 번득입니다. 수염과 손톱도 길게 자라있습니다.
관 뚜껑을 열고 기어나오면서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어 손과 얼굴에는 핏자국이 선연하고, 그런 모습으로 신음소리를 내며 밤길을 비틀비틀 걸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니 길에서 우연히 ‘부활한 사자(死者)’를 만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귀신’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시체가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방법가운데 우리가 선택한 것은 ‘결박’
그래서 나라마다 시체가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하는 특유의 방법이 생겨났습니다. 시체를 결박하여 매장하는 방법, 절단 또는 엎드린 자세로 매장하거나 낫이나 칼 등을 함께 넣고 매장하는 방법, 방부처리(미라, 엠바밍과는 다른 의미로 혈액과 내장을 빼내고 시체 안에 칼을 넣어 매장)가 그러한 것입니다. 또 독일의 바이에른 주처럼 일단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죽음의 움막’에 안치시켜 정말 죽었는지 확인한 뒤에 매장한 경우도 있습니다.
시체가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방법가운데 우리가 선택한 것은 ‘결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결박‘이 우리의 ’예‘와 ’풍수‘에 결합하면서 묘한 ’전통‘을 만들어 내게됩니다. 바로 장례과정 중에 필수로 행하는 염습(斂襲)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깨끗이 목욕시키고 옷을 입히는 습(襲)과정을 거쳐 다음날 결박의 과정(소렴)을 행하고, 그 다음날에는 관에 입관하는 대렴의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원래 염(斂)의 원류는 고려 말 송으로부터 유입된 주자(1130-1200)의 ‘가례(家禮)’에서 정한 규범에 의한 것입니다.
"옷과 이불은 육신이 썩어도 형체는 깊이 감출 수 있어 사람들이 혐오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주자가례에서 말하는 염은 고인의 시신이 부패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감추다’는 의미이지 결박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짝퉁풍수의 발복사상은 시신이 흐트러지지 못하게 감싸 꽁꽁 묶은 뒤에 입관하게 만들었고, 그것도 모자라 보공과 횡대, 회다지, 봉분 등의 과도한 단속 행위를 하였습니다. 풍수는 지형이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켜, 죽은 사람을 묻거나 집을 짓는 데 알맞은 장소를 구하는 이론입니다.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운운하며 ‘묘(墓)를 잘 써야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음택풍수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자가례나 풍수이론을 뒤져봐도 시신의 결박행위에 대한 의미를 설명한 대목은 없습니다. 시신을 싸서 묶는 습과 염의 의미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에서 수염하나라도 흐트러지지 않고 바르게 생활하라는 생활관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나 풍수에 의한 발복사상에 근거해서 시신의 온전한 육탈을 위해 꽁꽁 묶어 결박하여 매장한다는 주장은 관련업자들의 억지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장례에서 시신을 ‘결박‘하는 나라는 한국뿐
사실 현대의 장례과정 중에 그것도 드러내놓고 시신을 ‘결박‘하는 나라는 우리뿐입니다. 우리만의 고유한 전통임을 내세우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례가 아니라는 듯이 당당하게 행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10여개 대학에 장례관련학과가 있으나, 이들의 커리큘럼에는 시신을 묶는 염습방법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장례지도사 자격 시험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례식장에도 어떻게 잘 묶는지 보라고 염습실앞에 ’관망유리‘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관의 크기도 다른나라에 비해 상당히 작습니다. 시신을 꽁꽁 동여매 평상시 신체보다 작아졌기 때문이며, 관에 여유를 두면 안된다는 묘한 전통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는 시신을 바로 누워 편안히 잠을 자는 자세에서 얼굴도 의복도 평상시의 모습대로, 또는 예쁘게 치장한 모습으로 이별을 행합니다. 관도 신체크기의 2배 정도로 여유를 둡니다. 시신을 청결히 하는 것은 위생교육을 받은 전문인이 행합니다. 우리처럼 고인을 꽁꽁 묶는 전문가는 없으며, 정해진 시간에 치르는 고별식과 영결식의 이별예식이 장례의 주를 이룹니다.
'감추는 의식'과 '꽁꽁 묶는 행위'는 엄연히 다른 것
흔히 장례식을 말할 때 ‘감추는 의식’과 ‘보여주는 의식’의 두가지로 구분하고 있으며, 우리는 ‘감추는 의식’이라는 소리를 많이합니다. 물론 전통적인 우리의 장례의식은 ‘감추는 의식’이 맞습니다. 방부처리 기술도 없었고, 냉동기술도 접목되지 않았기에 몇 겹의 옷과 이불로 감싸 냄새와 부패를 감추는 형태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꽁꽁 묶는 행위는 아니었으며, 전통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저 어느시절, 죽은 고인이 무덤속을 기어나와 내게 헤꼬지할 수 있다는 우매한 사람들의 치기(稚氣)가 퍼져 너도나도 따라하게 된 것 뿐입니다. 전통과는 무관합니다.
우리의 장례식에서 죽은자는 '죄인'
살아생전 많은 죄를 지어서인지 두손 두발 꽁꽁 묶여 옴싹달싹 못하게 동여매고, 겨우 몸하나 들어가는 비좁은 관속에 들어가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습니다. 불에 태워지는 화장을 하든 땅속에 매장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가 꽁꽁 묶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래와서인지 오히려 예쁘게 보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쁘게 포장해 놨으니 마음이 흡족합니다.
“죽은자! 당신은 절대로 나를 괴롭힐 수 없어! 빠져나올 수 있으면 빠져나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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