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데이
— 서울추모식물원 엔딩데이의 하룻밤
1. 초대장
초대장은 매년 3월 중순에 도착했다.
흰 봉투 안에 연두색 카드. 인쇄된 글자는 단 세 줄.
4월 4일. 서울추모식물원. 벚꽃이 핀다면, 우리도 핀다. 엔딩데이에 초대합니다.
올해로 세 번째 초대장을 받은 정은수(57세)는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창밖 용산구의 아파트 단지는 여전히 회색이었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봉투 뒤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짚었다.
정은수 회원님께.
회원. 그는 그 단어가 아직도 낯설었다. 가입 당시 담당자가 웃으며 말했었다. "골프장 회원권이라고 생각하세요. 다만 이곳은 마지막 라운드를 위한 곳이에요." 그때 은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아내가 떠나고 2년. 아이는 없었다. 형제는 멀었다. 남은 것은 아파트 한 채와 적당히 모아둔 노후 자금, 그리고 이 초대장.
그는 결국 카드를 집어 가방에 넣었다.
2. 기자
KBC 다큐멘터리팀 이서진(33세)은 오전 여섯시에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서울 서초구 원지동 일원에 자리한 서울추모식물원은 그가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납골당의 차가운 대리석도, 묘지의 음습한 기운도 없었다. 넓은 언덕에 수백 그루의 나무가 심겨 있고, 그 나무들 사이사이에 작은 표식들이 박혀 있었다. 표식마다 이름과 날짜. 살아있는 사람들이 미리 골라둔 자신의 나무들이었다.
"아직 살아 계신 분들 거예요." 안내를 맡은 직원 박지유(28세)가 말했다. "생전에 자기 나무를 직접 선택하고, 관리하고, 가끔 와서 그 나무 아래 앉아 책도 읽으세요. 그러다가 때가 되면—"
"때가 되면?"
"화장 후 수목장으로 돌아오시는 거죠. 자기 나무 품으로요."
서진은 카메라를 든 채 잠시 말을 잃었다. 죽음을 이렇게 밝게 설명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식물원 본관 건물 앞에는 이미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형 천막이 세워지고, 테이블보가 깔리고, 꽃 장식이 달렸다. 냄새가 났다. 꽃 냄새가 아니었다. 빵 굽는 냄새, 수프 끓는 냄새. 뷔페 준비가 시작된 것이었다.
서진은 PD 강민수에게 전화했다.
"선배, 여기…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곳이에요. 근데 이상하게 좋아요."
3. 엔딩데이
오전 열 시. 회원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 홀로 걸어오는 사람. 대부분 혼자였다. 그러나 입구에서 이름표를 받아 가슴에 달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어머, 이정희 씨! 작년에 무릎 수술하셨다고 했잖아요, 다 나으셨어요?"
"최 선생님, 머리 색깔 바꾸셨네요. 잘 어울려요!"
"오셨어요? 혼자 오셨어요? 저도요. 우리 같이 다녀요."
이름표에는 이름과 함께 작은 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각자 자신의 수목장 나무 종류. 은수의 이름표에는 소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아내가 좋아하던 나무였다.
그는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소나무네요."
돌아보니 칠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름표에는 '서명옥'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림은 벚나무였다.
"저는 벚나무예요. 오늘 같은 날에 딱 맞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 오셨어요?"
"세 번째입니다."
"그럼 저보다 선배시네. 저는 올해 처음이에요. 작년에 가입했는데 용기가 안 났거든요, 오기가." 그녀는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았다. "같이 들어가요."
4. 오전의 풍경
세미나실에서는 오전 내내 강연이 이어졌다.
'나의 마지막 10년을 디자인하기', '혼자 살다 잘 가기', '수목장, 자연으로 돌아가는 법'. 제목들은 직설적이었다. 그러나 강연장 분위기는 장례식이 아니라 독서 모임에 가까웠다. 질문이 쏟아졌고, 웃음이 터졌고, 가끔 누군가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전시관에는 회원들이 보내온 사진과 편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제목은 '내가 사랑한 것들'. 강아지 사진, 여행 사진, 낡은 편지. 그리고 짧은 문장들.
"나는 된장찌개를 끓일 때 가장 살아있다고 느꼈다."
"내 생에 가장 잘한 일은 이혼이었다. 덕분에 나를 찾았다."
"아들에게 미안하고, 아들을 사랑하고, 그래도 이게 내 삶이었다."
이서진 기자는 전시물 앞에서 카메라를 내리고 한참을 서 있었다. 옆에 있던 작가 김재원(64세)이 말을 걸었다.
"뭘 찍으러 왔어요, 기자 양반?"
"저는... 사실 슬픈 이야기를 찍으러 왔어요. 고독사 직전의 사람들, 뭐 그런 거."
"에이, 실망이네." 김재원이 혀를 찼다. "여기 그런 사람 없어요. 다들 자기 죽음을 먼저 친구로 만든 사람들이에요. 죽음이 무섭지 않으면,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알아요?"
서진은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각도로.
5. 오후 4시 44분
정확히 오후 4시 44분.
식물원 야외 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엔딩프렌드 여러분! 묘우 여러분! 드디어 왔습니다. 우리의 엔딩데이!"
박수가 터졌다. 정은수는 자신이 박수를 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놀랐다.
벚꽃이 쏟아지고 있었다. 4월 4일의 바람이 꽃잎을 식물원 전체로 흩뿌렸다. 어디선가 기타 반주가 시작되었다. 무대 위 밴드는 평균 연령이 예순을 훌쩍 넘어 보였다. 드럼을 치는 사람은 팔십대였다.
첫 곡은 '봄이 오면'이었다.
노래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박자를 맞추는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춤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시킨 것이 아니었다. 서명옥 씨가 먼저였다. 그녀는 손을 들어 은수에게 내밀었다.
"추실 줄 아세요?"
"아니요."
"저도요." 그녀가 웃었다. "같이해요."
뷔페 테이블에는 음식이 가득했다. 갈비찜, 해물파전, 각종 나물, 따뜻한 국. 한쪽에는 케이크와 과일, 다른 쪽에는 막걸리와 와인. '어차피 건강 관리는 됐다'며 농담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접시를 들고 삼삼오오 자리를 잡았다.
이서진은 카메라를 돌리다가 한 장면에서 멈췄다.
구석 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 남자. 음식도 손대지 않고, 무대도 보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이름표에는 '박인철 68세'라고 적혀 있었다. 나무는 느티나무.
서진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박인철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아, 네. 괜찮아요."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냥... 여기 처음 왔는데, 이상하게 울음이 나와서요. 슬퍼서가 아니에요. 이상하게도 슬퍼서가 아니에요."
서진은 카메라를 내렸다.
"그냥 앉아 계세요. 저도 잠깐 여기 앉아도 될까요?"
박인철이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무대를 바라보았다. 벚꽃이 흩날렸다. 노래가 계속되었다.
6. 밤
해가 지고 나서 식물원은 또 다른 얼굴이 되었다.
나무들 사이에 조명이 켜졌다. 노란빛, 흰빛. 수백 개의 작은 등불이 수목장 언덕을 밝혔다. 멀리서 보면 별밭 같았다. 각자의 나무 표식 앞에 작은 초를 켜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 살아있는 자신의 자리에, 살아있는 동안 불을 밝히는 의식이었다.
정은수는 소나무를 찾아갔다.
식물원 동쪽 언덕 중턱. 3년 전 아내가 먼저 이 자리를 골랐다. 암 진단을 받고 석 달 뒤였다. "여기 좋다. 여기 있을게. 당신도 나중에 여기로 와." 그리고 아내는 이듬해 봄에 이 소나무 아래로 왔다. 은수는 그때서야 자신도 같은 식물원에, 같은 소나무 곁에 자리를 만들었다.
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초를 켜는 순간, 어깨에 손이 얹혔다.
서명옥이었다.
"아내분 계신 나무예요?"
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남편이요." 그녀도 근처에 쪼그려 앉았다. "옆 구역 단풍나무가 남편 거예요. 매년 혼자 오다가 올해 처음 여기 왔어요. 혼자 오는 것도 이제 괜찮아졌거든요."
"저도요."
두 사람은 한동안 나란히 앉아 초를 바라보았다.
"이상하죠?" 서명옥이 말했다. "여기 오면 덜 외로워요. 이렇게 낯선 사람이랑 있는데도요."
"이상하지 않아요." 은수가 말했다.
멀리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느린 곡이었다. 트로트였다. 누군가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가 하나둘 늘었다.
7. 새벽 두 시
본관 라운지의 안락의자와 소파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나머지가 귀를 기울였다. 박인철은 두 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32년을 함께 산 아내, 교통사고, 텅 빈 아파트. 아무도 말을 끊지 않았다. 아무도 "힘내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옆에 앉아있던 최영숙(71세)이 말했다.
"저는 아이를 잃었어요. 스물다섯에."
침묵.
"오래됐는데, 여기 오면 말할 수 있어요. 다른 데서는 말하면 다들 당황하거든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고 이제 잊으라고." 그녀는 잔잔하게 웃었다. "잊어지지 않아요. 그냥 같이 사는 거예요. 그 슬픔이랑."
이서진은 이 대화를 카메라에 담지 않았다.
수첩을 꺼내 뭔가를 적었다. 나중에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슬픔이 부끄럽지 않다.
8. 새벽 네 시, 식물원 한 귀퉁이
열 명 남짓이 남아 있었다. 뷔페 테이블은 치워졌지만, 직원이 조용히 따뜻한 차와 과자를 가져다놓았다.
김재원 작가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아무도 신청하지 않은 즉흥 공연이었다. 목소리는 형편없었고, 가사도 중간에 틀렸다. 그러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니, 다들 웃었다. 같이 틀리면서.
"저 사실 작가가 아니에요." 노래를 마치고 김재원이 말했다. "퇴직한 공무원이에요. 소설 한 편 써보려고 이십 년째 도전 중이에요."
"그럼 뭐가 소재예요?" 누군가 물었다.
"죽음이요." 그가 웃었다. "그런데 요즘은 모르겠어요. 여기 오면 죽음이 너무 평범해져서 쓸 이야기가 없어져요."
박인철이 말했다. "그게 좋은 거 아닌가요."
김재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게 좋은 거예요."
9. 아침
오전 여섯시 반.
식당에서 아침이 차려졌다. 미역국, 흰 쌀밥, 계란찜, 두부조림. 소박하고 따뜻한 상차림이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하나둘 식당으로 들어왔다. 눈이 퉁퉁 부은 사람도 있었고, 화장이 번진 사람도 있었고, 양치질을 마치고 상쾌한 얼굴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정은수는 서명옥 씨 옆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내년에도 오실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올 것 같아요." 그가 밥을 한 숟가락 떴다. "아직 소나무가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서명옥이 웃었다. "저는 매년 올 거예요. 이제 결정했어요."
이서진은 한쪽 구석 테이블에서 밥을 먹으며 수첩을 펼쳤다. 어젯밤부터 적어온 메모들. 그는 펜을 들고 제목을 고쳐 썼다.
처음에 적었던 제목은 '고독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고쳐 쓴 제목은 이랬다.
'가장 잘 살기 위해, 가장 잘 죽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
10. 귀가
오전 여덟시.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짐을 챙겨 나왔다. 작별 인사가 이어졌다. 껴안는 사람들, 번호를 주고받는 사람들, 그냥 손을 꼭 쥐는 사람들.
정은수는 셔틀버스에 오르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소나무 언덕이 보였다. 어젯밤 켜둔 초는 꺼져 있었다. 그러나 나무는 거기 있었다. 아내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도 거기 있을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무섭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벚꽃이 아직 남아 있었다. 4월 4일의 바람이 꽃잎을 버스 유리창에 던졌다가 데려갔다.
은수는 눈을 감았다.
집에 돌아가면 아침에 밥을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된장찌개. 아내가 좋아하던 방식으로.
그것만으로 충분한 하루였다.
— 끝 —
'엔딩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보건의료대리인 완전 가이드 (1) | 2026.04.03 |
|---|---|
| 엔딩노트는 왜 종이로 써야 할까 (0) | 2026.04.02 |
| 죽음은 '고립'이 아니라 '연결' (0) | 2026.03.29 |
| 내 마지막 정거장 (0) | 2026.03.27 |
| 죽음과 비슷한 상태 (0) | 2026.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