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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위의 돌나물,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

 

무덤 위의 돌나물,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공원묘지에 '지속가능한 묘지 장식 시범 구역'이 생겼다. 이름은 인스피라티펠트(Inspiratieveld). 영감의 장(場)이라는 뜻이다. 그 안에 전시된 여섯 가지 친환경 묘지 장식 중 하나가 세덤(Sedum) 매트다. 화강암 판석 대신 살아있는 식물로 무덤 표면을 덮는다. 계절마다 색이 바뀌고, 벌을 불러들이고, 비를 머금는다. 유럽의 장례 업계는 이것을 혁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식물의 학명을 찾아보면 이상한 단어가 나온다.

 

Sedum sarmentosum. 영문 일반명(common name): graveyard moss. 무덤 이끼.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과 중국이 원산지다. 묘지에 심어두면 수십 년을 스스로 버틴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말 이름은 돌나물이다.

 

돌나물은 낯선 식물이 아니다. 봄이면 식탁에 오르는 나물이다. 초고추장에 무쳐 먹고, 물김치로 담근다. 그러나 이 식물이 원래 어디서 자라던 것인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름 그대로다. 돌 틈에서 난다. 돌 위에서 산다. 그리고 무덤 위에서도 살았다.

 

조선의 묘는 대부분 잔디봉분이었다. 비석은 양반가의 것이었고, 서민의 무덤은 흙과 풀이었다. 봉분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지피식물이 깔렸다. 돌나물 같은 다육 지피식물은 척박한 묘지 환경, 즉 뜨거운 햇볕과 건조한 흙에서 관리 없이도 오래 살아남았다. 따로 심지 않아도 퍼졌고, 심어두면 수십 년을 유지했다.

 

그것이 지금 유럽에서 '친환경 혁신'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의 근대 장묘는 두 번의 단절을 겪었다. 첫 번째는 일제강점기다. 근대적 묘지 제도가 이식되면서 서양식 비석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표준이 되었다. 두 번째는 1960~70년대 묘지 정비다. 국토 효율화를 명분으로 봉분이 줄고, 납골당이 늘고, 묘역이 공원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무덤을 덮던 식물의 자리를 화강암 판석과 시멘트가 채웠다.

 

사라진 것은 식물만이 아니다. 무덤을 돌보는 방식의 감각이 사라졌다. 자연이 알아서 하게 두는 대신, 인공물로 통제하는 방식이 '정돈된 것'의 기준이 되었다.

 

지금 수목장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정작 자연장 묘지 대부분은 표지석을 세우고, 화강암 명패를 달고, 나무 옆에 금속 태그를 붙인다. 자연을 표방하면서 석재와 금속으로 마감한다.

 

비석 없이 식물만으로 무덤을 표시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이것은 단순히 미학의 문제가 아니다. '이름을 어디에 새기느냐'의 문제, 즉 기억의 형식에 관한 문제다.

 

네덜란드 자연장 묘지는 GPS 좌표로 위치를 기록하고, 비석 대신 나무에 소형 금속 태그를 단다. 미국의 보전장(conservation burial)은 아예 개인 표식을 금지하는 곳도 있다. 무덤 전체가 숲이 되고, 특정 나무 한 그루가 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이름 없이 숲에 스며드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 맞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지금 비석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짚고 싶다. 그것은 전통이 아니라, 근대가 심어놓은 기준이다.

 

 

돌나물의 꽃말은 근면(勤勉)이다. 돌 위에서도 살고, 뜨거운 여름에도 살고, 아무도 오지 않는 묘지에서도 스스로 산다. 수십 년을 혼자 버틴다. 자주 찾지 못하는 무덤, 돌볼 사람이 없는 무덤에 어울리는 식물이다.

 

1인 가구가 늘고, 무연고 사망이 늘고, 묘지 관리를 맡길 가족이 없는 시대다. 죽은 뒤의 공간을 누가 돌봐줄 것인가. 이것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혼자 짊어져야 하는 질문이 되고 있다.

 

돌나물은 그 질문에 대한 오래된 대답 중 하나였다. 아무도 오지 않아도 무덤은 푸를 수 있다. 그 감각을 우리는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세덤 묘지 사례

네덜란드 — 가장 앞서 있음

PC Uitvaart — Inspiratieveld, Amsterdam EcoRoof 제품 포함 시범 전시 구역. 이미 상세히 확인.

Den Hollandsche 세덤을 묘지 장식에 가장 이상적인 식물로 공식 추천. '영원한 삶'이라는 별명을 가진 종도 있으며, 묘비에 적용하면 강한 상징성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묘석 업체가 직접 세덤 식재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 Denhollandsche

Ariës Natuursteen 묘지의 대부분이 석재로 이루어져 있어 특히 검은 묘석은 50°C까지 달아오른다. 이 환경에서 일반 식물은 버티지 못하지만 세덤은 강하다. 또한 석재는 빗물을 흡수하지 못해 토양 침식과 침하까지 유발할 수 있는 반면, 세덤은 물을 머금어 이를 방지한다. Ariesnatuursteen

Cemetery Westduin, 헤이그 헤이그 시의 베스트데윈(Westduin) 묘지는 추모 광장 주변 전체를 Sempergreen 세덤 매트로 조성했다. Sempergreen

Doetinchem 자연장 묘지 도에틴험 시가 발주한 지속가능 장례 공간 조성 프로젝트. 건물 전체를 바이오 기반 소재로 짓고, 파빌리온 지붕 600㎡에 세덤+허브 혼합 생물다양성 녹지 지붕을 설치했다. 자연 소재로 지어진 건물이 경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시 관계자가 밝혔다. Sempergreen

 

벨기에

Onze Natuur (플랑드르 원예 정보) 세덤(vetkruid)과 Sempervivum('항상 살아있다'는 뜻)을 드라이가든 식물로 추천. 여름에는 야생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고, 겨울에도 잎이 아름답다. Onze Natuur

 

노르웨이 — 가장 오래된 실증 사례

Lommedalen 교회 묘지 노르웨이 롬메달렌의 이 묘지는 경사면에 묘가 열을 지어 조성된 특수한 구조. 언덕 위에 교회가 있고 그 아래 경사면 묘 전체가 세덤 매트로 덮여 있다. 2013년에 조성된 사례로, 묘지 주변 녹색 자연 환경과 잘 어우러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Sempergreen

노르웨이 묘지 설계 역사 — NMBU 기록 1940년대 노르웨이 묘지 설계 전문가 Pål Sæland는 이미 당시 강의에서 "매년 꽃을 심을 여유가 없는 경우 세덤, 비카 미노르, 안테나리아 등 다년생 식물을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세덤 묘지 식재의 역사가 적어도 80년은 된다는 뜻. NMBU

 

독일어권

COMPO (독일 원예 기업) — 묘지 식물 가이드 묘지를 일주일에 한 번만 방문해도 민달팽이, 토끼, 혹서·가뭄이 식물을 해친다는 점을 지적하며, 세덤을 포함한 관리 최소화 다년생 식물 조합을 권장한다. Flox

 

공급사 Sempergreen — 범유럽 세덤 전문기업

EcoRoof와 별개로, Sempergreen이라는 네덜란드 기반 세덤 매트 전문기업이 유럽 전역 묘지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하고 있다.

세덤 매트의 얕은 뿌리 구조가 묘지 식재에 특히 적합하며, 연중 녹색을 유지하고 유지관리가 거의 필요 없다고 소개한다. 확인된 레퍼런스만 노르웨이·네덜란드·독일 포함 여러 건. Sempergreen

 

공통으로 나타나는 선택 이유

수집된 사례들을 보면 세덤을 고르는 이유가 나라마다 거의 동일.


혹서 저항 50°C 묘석 위에서 생존
가뭄 저항 방문 못 해도 스스로 유지
토끼·동물 저항 묘지 특성상 중요
생물다양성 벌·나비 유인
침수·침하 방지 빗물 흡수, 토양 보호
상징성 일부 종 별명이 '영원한 삶'

한국은 이미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특히 여름 폭염이 심해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기후 대응 묘지 식물"이라는 프레임이 한국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작용한다. 공단에도 제안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

 

 

※ 이거 너무 좋아서 용미리 시립묘지에 갔다 왔다. 비교사진 만들어 봤다.

산분장소에 자갈이라도 좀 깔아 놓자. 품위있게.(구덩이 파서 스텐철망놓고 그위에 자갈)
이거 누가 기획했는지 칭찬하고 싶다.

 

산분 구역에 구덩이 파서 스텐철망놓고 그위에 예쁜 자갈 올려놓자.물도 뿌릴 수 있게 만들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