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땅을 샀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등기를 마쳤다. 그런데 그 땅 한켠에 남의 무덤이 있다. 누구의 무덤인지도 모른다. 연고자가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당신은 그 땅에 집을 지을 수 없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심지어 그 무덤을 치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조차 법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장사법 부칙 제2조, 법을 만들고 스스로 무력화한 입법자들의 직무유기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은 2001년 1월 13일 시행됐다. 법은 분명하게 선언했다. 묘지는 60년 이상 설치할 수 없다. 타인의 토지에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에 대해서는 연고자가 토지 사용권을 주장할 수 없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규정이다. 내 땅에 내가 모르는 남의 무덤이 들어서고, 그 무덤의 연고자가 내 땅을 수십 년째 무상으로 점유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칙 제2조를 보라. 단 한 줄이다.
"이 법은 이 법 시행 이후 설치된 분묘에 관하여 적용한다."
이게 전부다. 2001년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법이 바꾸고자 했던 바로 그 문제 — 허락도 없이 남의 땅에 들어선 무덤들 — 에 대해서는 법이 손을 놓겠다는 선언이다.
한국에는 이른바 '분묘기지권'이라는 관습법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법원 판결에서 인정되기 시작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이 법리는, 타인의 토지에 설치된 분묘라도 20년간 평온·공연하게 점유한 경우 그 분묘를 유지할 권리가 생긴다고 본다. 문제는 이 권리가 인정되면 토지 소유자는 무덤을 치울 수도, 지료(토지 사용료)를 청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경기도의 한 농민이 선친으로부터 산자락 논밭을 상속받았다. 등기도 명의도 자신의 것이다. 그런데 그 땅 어딘가에 197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분묘 수기(數基)가 있다. 연고자를 수소문하니 먼 친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 "조상 묘를 건드릴 수 없다"고 버틴다. 법원은 분묘기지권을 인정했다. 토지 소유자는 자기 땅 일부를 수십 년째 아무런 보상도 없이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
장사법이 시행된 지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부칙 제2조는 성실하게 제 역할을 다했다.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토지 소유자들을 보호 대상에서 꾸준히 제외시켰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산재한 분묘는 2000만 기를 넘는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관습법의 보호를 받으며 오늘도 타인의 토지 위에 존재한다.
입법자들은 왜 부칙에 그 한 줄을 넣었는가. 기존 분묘를 모두 소급 적용하면 사회적 혼란이 크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 판단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2001년 이후 25년이 흘렀다. 소급 적용의 충격을 완화할 유예기간은 충분히 지났다. 그럼에도 이 부칙을 개정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죽은 자의 편의를 위해 산 자의 재산권을 반세기 넘게 묶어두는 나라가 법치국가인가.
제27조·제28조, 불법 분묘를 보호하는 기괴한 절차법
이미 무덤이 들어선 땅을 산 사람이 있다고 치자. 연고자가 있다면 협의라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연고자가 없는, 이른바 '무연분묘'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장사법 제27조와 제28조가 그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읽다 보면 분노가 차오른다.
일간신문에 2회 이상 공고해야 한다. 공고는 3개월 이상 유지돼야 한다. 그러고 나서 관할 관청에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허가가 나면 비로소 개장(改葬)할 수 있다. 개장 후 수습한 유골은 10년간 봉안시설에 안치해야 한다. 10년이 지나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제야 처리할 수 있다.
합리적인 절차처럼 보이는가? 잠깐. 이 절차는 합법적으로 설치된 분묘에도, 불법으로 설치된 분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법은 불법 분묘와 합법 분묘를 전혀 구별하지 않는다.
사례를 보자. 충남의 한 지주가 자신의 임야에 불법으로 설치된 무연분묘를 발견했다. 토지대장, 임야도 어디에도 해당 분묘에 관한 기록이 없다. 연고자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땅에서 불법으로 자리 잡은 무덤을 치우기 위해 무려 13개월이 넘는 시간과 상당한 비용을 들였다. 신문 공고비, 봉안 비용, 행정 절차 비용까지 전부 땅 주인이 부담해야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후처리 비용까지 지는 셈이다.
이 법의 논리는 이렇다. 연고자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 충분히 기다려야 한다. 유골을 함부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사자(死者)의 존엄을 보호해야 한다.
누가 반박하겠는가. 사자의 존엄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존엄을 지키는 비용을 왜 피해자인 토지 소유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가. 불법으로 매장한 사람, 혹은 그 행위를 방조한 연고자가 있다면 그들이 처리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법의 상식 아닌가. 연고자가 없다면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더 기가 막힌 것은 유골 10년 의무 안치 조항이다. 내 땅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무덤의 유골을, 내 돈을 써서 10년간 보관해야 한다. 이것이 공공복리 증진이고 보건위생 보호인가. 이것은 불법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불법의 피해를 입은 쪽을 옥죄는 규정이다.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절차가 이렇게 복잡하고 비용이 이렇게 크니, 대부분의 토지 소유자는 아예 포기한다. 무연분묘는 그대로 방치된다. 땅값은 떨어진다. 개발은 막힌다. 법이 무연분묘의 영속화를 사실상 장려하는 셈이다.
이 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장사법 제1조는 말한다. 이 법의 목적은 보건위생상 위해를 방지하고,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공공복리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부칙 제2조는 그 목적을 2001년 이전 분묘에 대해서는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제27조와 제28조는 불법 분묘의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사후처리 비용까지 전가한다. 목적 조항은 1조에 있고, 그것을 무력화하는 조항들은 부칙과 본문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이 나라에서는 죽어서 남의 땅에 묻히면 산 자보다 강한 권리를 갖는다. 100년 전에 묻혔어도, 허락 없이 묻혔어도, 연고자가 없어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 권리의 비용은 모두 살아있는 땅 주인이 치른다.
법은 산 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적어도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공평해야 한다. 지금의 장사법은 그 어느 쪽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부칙 제2조를 삭제하고, 제27조·제28조의 비용 부담 주체와 절차를 전면 재설계하지 않는 한, 이 법은 국토 효율화를 위한 법이 아니라 국토 잠식을 합법화하는 법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금 당장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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