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를 위해 식탁을 차리는 사람들
시월의 끝자락에는 어김없이 바람의 냄새가 달라진다. 마른 잎은 발끝에서 바스러지고, 저녁은 하루가 다르게 일찍 내려앉는다. 그런 날이면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얼굴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안부를 전할 곳이 없어서 더 오래 마음에 머무는 얼굴이다.
지구 반대편에는 바로 이맘때, 그런 얼굴들을 맞이하려고 식탁을 차리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떠난 이가 돌아오는 길목마다 불을 밝히고, 빈 의자 앞에 따뜻한 음식을 놓아 두는 사람들이다.
슬픔을 잔칫상으로 바꾸는 날
멕시코의 '망자의 날', Día de Muertos는 해마다 11월 1일과 2일에 열린다. 지역에 따라서는 10월 31일 밤부터 문을 연다. 분장과 행렬이 닮아 할로윈의 멕시코판이라 불리곤 하지만, 두 명절은 뿌리가 다르다. 망자의 날은 죽음을 문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집 안으로 맞아들이는 날이다.
그래서 이날의 공기는 무겁지 않다. 기독교의 만성절 전통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울음보다 웃음이 먼저 번지는 잔치에 가깝다. 이 풍습은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곳 사람들은 이별을 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1년에 한 번, 가장 환한 얼굴로 다시 초대할 뿐이다.

제단은 가장 다정한 환영 인사
이날의 한가운데에는 집집마다 차리는 제단, 오프렌다가 있다. 스페인어로 '바치는 것'을 뜻하는 이름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추모라기보다 귀한 손님을 맞는 채비에 가깝다. 먼 길을 돌아올 사람을 위해 집주인이 하나하나 챙기던 마음이 오랜 세월 쌓여 하나의 상징이 된 것이다.
먼저 길을 밝힌다. 주황빛 마리골드는 짙은 향과 빛깔로 영혼을 제단까지 이끈다고 한다. 촛불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말라고 켜 두는 등불이고, 향이 피워 올리는 연기는 그 길 위에 얇게 깔리는 안개와 같다.
다음으로 쉬게 한다. 제단 발치에는 돗자리를 깔아 둔다. 먼 길을 돌아온 이가 다리를 쉬어 갈 자리다. 물 한 잔은 긴 여정에 마른 목을 적시라는 뜻이고, 소금 한 접시에는 정화의 뜻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식사를 준비한다. 제단 위에는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과 술을 정성껏 올린다. 떠난 이가 일 년에 한 번 돌아와 그 음식을 맛본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의 제사상과도 닮았다. 평생 즐겨 드시던 국 한 그릇, 마지막 해에는 끝내 입에 대지 못하셨던 그 국까지. 제단 위 음식에는 떠난 이가 생전에 누렸던 소소한 기쁨을 다시 건네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 마음
제단은 대개 층을 이룬다. 가장 흔한 것은 3단이다. 맨 아래는 지하의 세계, 가운데는 사람이 사는 세상, 맨 위는 영혼이 머무는 세계를 뜻한다. 가장 전통적인 형태는 7단으로, 고요한 안식에 이르는 일곱 걸음을 상징한다. 다만 정해진 모양은 없다. 누구를 기리는지, 어느 고장에 사는지에 따라 제단은 저마다 다른 얼굴로 차려진다.
그래서 제단 위에는 늘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들이 놓인다. 빛바랜 사진 한 장, 손때 묻은 만년필, 단골 빵집의 빵. 설탕으로 빚은 작은 해골은 고인의 영혼을 닮아, 무섭기는커녕 어딘가 다정하고 익살스럽다. 제단 앞에 모인 가족은 그 물건들을 따라 그 사람이 어떻게 웃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다시 이야기하게 된다. 그렇게 기억은 한 번 더 숨을 쉰다.
우리에게도 있는 풍경
이 글을 쓰는 내내 우리의 제사상이 겹쳐 보였다. 좋아하시던 음식을 올리고, 향을 피우고, 이름을 불러 보는 마음은 어느 땅에서나 닮아 있는가 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웃으며 부르고, 우리는 고개 숙여 부른다는 것 정도다. 어느 쪽이든 부르는 마음은 같다. 아직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마음이다.
할로윈과 망자의 날로 지구촌 곳곳이 축제의 열기로 물드는 이맘때, 우리도 작은 제단 하나쯤 차려 보면 어떨까. 거창할 필요는 없다. 선반 한쪽에 사진을 세우고, 주황빛 꽃 한 송이를 꽂고, 물 한 잔과 그분이 좋아하시던 간식을 놓아두면 된다. 마리골드가 없다면 비슷한 빛깔의 꽃도 좋다. 촛불 하나를 밝히고, 그 앞에서 잠시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026년 11월 1일은 일요일이고, 2일은 월요일이다. 한 주가 시작되는 일요일 저녁, 작은 불 하나를 밝히고 그리운 이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 보자. 대답은 들리지 않아도 괜찮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이름은 부르는 것만으로도 다시 우리 곁에 온다. 멕시코 사람들은 해마다 이맘때, 떠난 이들이 돌아와 잠시 머물다 간다고 믿는다.
따뜻한 정종 한 잔이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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