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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여행

망나니와 장의사

 

조선 중기, 천민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머물렀던 망나니 형 '업복'과 장의사 동생 '두천'의 이야기.

형 업복은 젊은 시절 배고픔을 참지 못해 관아의 창고를 털다 잡혔습니다. 그 벌로 이마에는 '절도(竊盜)'라는 글자가 새겨지는 자자형(刺字型)을 받았죠. 망나니가 된 그는 사람들의 목을 치며 살아가지만, 술만 들어가면 "나는 운이 없었을 뿐, 본래 선한 놈이다"라고 한탄하곤 했습니다.


반면 동생 두천은 시신을 닦고 염을 하는 장의사였습니다. 형의 죄를 대신 씻겠다는 듯 늘 묵묵히 죽은 자의 마지막을 지켰죠. 사람들은 두천의 성실함을 믿고 그에게 집안의 대소사를 맡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세도가 집안에서 거액의 부조금 상자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당장 이마에 도둑 낙인이 찍힌 망나니 업복을 의심했습니다.


"사람 목 치는 놈이 돈이라고 못 훔치겠느냐!"


억울함에 날뛰던 업복은 동생 두천을 찾아가 하소연했습니다. "두천아, 나는 손을 씻었다. 이마의 글자는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는구나!" 두천은 슬픈 눈으로 형을 위로하며 그만 잊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날 밤, 형 업복은 분에 못이겨 사건이 벌어진 대갓집 뒷마당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달빛 아래 나타난 그림자는 다름 아닌 장의사 두천이었습니다. 그는 낮에 염을 하러 들어갔을 때 봐두었던 비밀 구멍을 통해 은밀하게 상자를 빼돌리고 있었죠.


깜짝 놀란 업복이 동생을 가로막았습니다. "네가 어찌 이런 짓을 하느냐!"


두천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습니다. "형님, 형님은 이마에 죄를 새겨 세상이 경계하게 했지만, 나는 마음속에 죄를 숨겨 세상을 속였을 뿐입니다. 형님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릴 때, 나는 시신을 닦으며 그들의 품속에서 노자 한 푼 빼내는 법을 익혔지요."


결국, 겉으로 드러난 낙인은 형의 과거를 말해주었지만, 겉으로 보이지 않는 품성은 동생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형은 비록 천한 일을 하며 낙인이 찍혔어도 그 정직함은 변하지 않았고, 동생은 거룩한 일을 하면서도 그 탐욕스러운 본성은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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