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되는 장묘 행정의 약속 불이행
15년이 30년으로, 이번엔 60년?
2001년 도입된 한시적 매장제도는 처음엔 단순했다. 묘지 설치 기간을 15년으로 하고, 원하면 15년씩 세 번 더 연장해 최장 60년까지 쓸 수 있게 한다는 원칙이었다. 대신 기한이 끝나면 개장해서 화장한 뒤 봉안하도록 정했다.
문제는 그 기한이 실제로 닥쳤을 때 벌어졌다. 첫 만료 시한을 불과 2주 앞둔 2015년 12월, 정부는 15년이던 기본 기한을 30년으로 급하게 늘렸다. 개장과 화장, 봉안에 필요한 실태조사도, 절차도, 예산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 만료 시한은 2031년이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한 신고 대상만 64만 5천여 기에 이르고, 신고되지 않은 무연분묘까지 더하면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크다. 지금 추세라면 이번에도 준비 부족을 이유로 기한을 60년으로 다시 늘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이 실패의 성격이다. 정부가 스스로 정한 기한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경우다. 국민에게 무언가를 받아놓고 약속을 어긴 게 아니라, 정부 자신이 세운 계획을 정부 자신이 이행하지 못한 무능력에 가깝다. 그런데 장묘 행정에는 이보다 더 노골적인 사례가 있다. 서울 서초구 원지동이다.
화장장은 지어졌고, 병원은 오지 않았다
2003년, 서울시는 원지동에 제2화장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두고 주민들과 6년째 갈등을 빚고 있었다. 서울시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화장장을 짓는 대신 그 부지에 국립의료원을 이전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죽음을 처리하는 시설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삶을 돌보는 시설을 주겠다는 거래였다.
주민들은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법정에서 6년을 다툰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2011년, 화장로 15기를 갖춘 서울추모공원이 예정대로 준공됐다.
병원은 오지 않았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사업은 이후 16년을 표류했다. 경부고속도로 소음 문제 등이 이유로 제시됐고, 2020년 정부는 기존 이전 계획을 공식 철회했다. 이전 예정지는 서울 중구로 바뀌었다. 정부가 원하던 화장장은 약속대로 자리를 잡았지만, 주민이 기대했던 병원은 다른 지역으로 가버렸다.
두 사례가 가리키는 하나의 패턴
두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다르다. 매장 시한 연장은 정부 스스로의 계획이 어그러진 경우이고, 원지동은 정부와 주민 사이의 약속이 깨진 경우다. 그러나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구조가 드러난다.
정부가 어떤 조건을 제시하고, 그 조건 위에서 국민이 협조하거나 인내하고, 정작 정부는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챙기고 상대에게 줘야 할 부분은 흐지부지 만드는 구조다. 매장 시한에서는 이 실패가 "지연"의 형태로 나타났다. 원지동에서는 이 실패가 "이행 자체의 취소"라는 더 노골적인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두 사건 모두 책임을 물을 사람이 사라진 뒤에야 문제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2001년 매장제도를 설계한 담당자와 2003년 원지동 협상을 이끈 책임자들은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약속은 그들의 이름으로 만들어졌지만, 약속이 깨진 뒤의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와 주민들에게 남았다.
법은 누구에게 벌을 내리는가
이 패턴을 법 조문까지 들여다보면 더 선명해진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설치기간이 끝난 분묘의 연고자에게, 기한이 끝난 날부터 1년 이내에 시설물을 철거하고 유골을 화장하거나 봉안하도록 의무를 지운다. 이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행강제금 500만원이 부과되고, 여기에 더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받을 수 있다. 행정벌과 형사처벌이 동시에 적용되는 이중 구조다.
그런데 같은 법 안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조항을 찾아보면, 처벌 규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묘지와 화장시설의 수급에 관한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는 있지만, 이 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때의 벌칙이나 이행강제금은 법 조문 어디에도 없다.
결국 이 법은 개인에게는 징역과 벌금까지 예정해 놓고, 정작 그 개인이 지켜야 할 기한을 정하고 관리해야 할 정부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는 비대칭 위에 서 있다. 15년을 30년으로 늘린 전례가 있고, 2031년에도 같은 이유로 60년으로 다시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쪽에는 아무런 법적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지동에서 주민이 약속을 지키고도 병원을 받지 못한 것과, 국민이 기한을 어기면 처벌받는 반면 정부가 기한을 어겨도 아무 일도 없는 것은 결국 같은 구조의 두 얼굴이다.
신뢰가 소모되는 방식
장묘 행정은 특성상 국민이 정부의 약속을 다시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분야다. 무덤을 만든 유족이 15년, 30년 뒤 그 무덤의 운명을 직접 감시하기는 어렵고, 원지동 주민들처럼 6년간 법정 다툼까지 감수하며 조건을 받아들인 경우에도 상대방의 이행 여부를 강제할 뾰족한 수단은 많지 않다.
두 사례와 법 조문이 함께 보여주는 것은 결국 같은 질문이다. 정부가 스스로 정한 기한과 스스로 제시한 조건을, 정부는 얼마나 지킬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국민에게는 징역과 벌금을 예정해 두면서 스스로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지우지 않는 법 구조 위에서, 15년이 60년이 되고 화장장은 지어졌는데 병원은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면, 다음 세대가 마주할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같은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 한국과 대만은 왜 다른 길을 갔을까 (0) | 2026.08.17 |
|---|---|
| 화장한 유골, 법은 왜 시신과 구분하지 않는가 (0) | 2026.08.16 |
| 장례식을 싫어하는 장례지도사 (0) | 2026.08.13 |
| 두 개의 장례식 (0) | 2026.08.13 |
| 자격증에서 마이스터까지, 독일 장례지도사가 만든 전문직 사다리 (0) | 2026.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