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 침략했던 자들의 묘가 아직도 남아있는 이유와 관광명소로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고종 22년(1885)부터 1887년까지 약 23개월에 걸쳐 영국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던 ‘거문도 사건’ 과정에서 병이나 사고로 죽은 영국군의 묘지입니다.
당시 영국군의 철군 결과를 확인하고자 거문도에 내려온 경략사(經略使) 이원회(李元會)의 보고에 의하면 사망자 묘지는 총 9기 였으나 현재는 3기만 남아있습니다.
서구식 비문에는 “1886년 3월 알바트로스(Albatross) 호의 수병 2명이 우연한 폭발 사고로 죽다. 월리암 J. 메레이(William J. Murray)와 17세 소년 찰스 댈리(Charles Dale)"로 새겨져 있고, 십자가에는 ”1903년 10월 3일 알비온호 승무원 알렉스 우드(Alex Wood)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영국군 묘지는 당초 고도의 하늘땀(여객선 터미널 동북쪽 100m 지점)에 있었는데, 1910년 경술국치와 더불어 일본인들이 고도를 삼산면 면소재지로 만들면서 현재 자리로 이장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영 타도 주장이 높아져 일본인들에 의해 지금 남아 있는 묘비보다 저 큰 서구식 묘비는 파손되고 현재 남아 있는 서구식 비석도 두 동강나 굴러 다닌 것을 해방 이듬해 섬 유지들이 보수하여 다시 세웠습니다. - 여수시 관광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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