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여행
2026. 6. 11.
베를린의 회색 미로가 묻는 질문
베를린 중심부를 걷다 보면 이상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끝없이 늘어선 콘크리트 상자들 같다. 누군가는 묘지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현대미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아이들은 그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는 순간, 풍경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땅은 조금씩 낮아지고 콘크리트 기둥은 점점 높아진다. 처음에는 허리 높이였던 기둥이 어느새 머리 위로 솟아오른다. 주변 건물은 보이지 않고, 함께 들어온 사람도 시야에서 사라진다. 도시의 소음마저 멀어지면서 묘한 고립감이 찾아온다. 이곳은 베를린의 '유럽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다. 흔히 홀로코스트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