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의궤조사보고서
국립민속박물관은 2007년 안동 의성김씨 학봉종택 14대 종손인 “소운 김시인”과 김해의 전주이씨 “화재 이우섭”의 삼년상,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을 직접 참여관찰하여 보고서를 발간했다.
소운과 화재의 삼년상은 한국 상례문화의 전통으로 정착한 유교식 상례를 예법에 따라 치러졌고, 이 보고서는 이러한 삼년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감 있게 기록한 최초의 보고서이며, 선종 보고서 역시 김수환 추기경의 운명부터 연도(煉禱), 위령미사, 장례미사 그리고 추도미사와 추모행사까지 50일간의 장례 및 추모행사 전 과정을 직접 조사하여 현장감 있게 기록한 최초의 보고서이다.
현대판 한국 상례의궤 작업의 첫 걸음, 「 삼년상 」 보고서
「소운 김시인 삼년상
」 은 의성김씨 학봉종택 14대 종손 소운 김시인의 삼년상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지금까지 관념적으로만 알려진 삼년상의 실체를 고스란히 기록한 최초의 보고서라는점에서, 종가의 유구한 전통에 입각한 삼년상을 최초로 기록한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학봉선생 불천위제에서 한쪽 구석에 엎드린 상주들
현 15대 종손 김종길은 당시 부친이 연로하여 서울의 생활을 정리하고, 종가를 지킬 준비를하고 있던 중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완전히 안동으로 와서 삼년상을 치를 정도로 종가의 전통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백립을 쓰고 대상을 지내는 상주
종가이기 때문에 삼년상을 치르는 중에도 학봉선생의 불천지위(불천지위) 기제사를 지내야 하지만, 죄인인 상주가 학봉선생의 제사를 직접 주재할 수가 없어 복이 가벼운 족친이 대신 주재하고, 삼헌을 단헌으로 줄여 제사를 지냈다. 상주는 죄인이기 때문에 제사에 참사할 수 없어 제청 한쪽 구석에 엎드려 있다가 제사가 끝나면 겨우 재배하는 등 예법에 따라 삼년상을 치렀다.
3년에 걸쳐 진행되는 유교식 상례 19개 절차를 소홀함 없이 수행하면서도 종가의 전통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매장을 하고 신주를 만들어 집으로 오는 반곡을 하면 여자상주들과 주부들이 대문 밖에 나가 맞이하는 장면들은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형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소상과 대상을 맞이하여서는 상주의 슬픔을 경감하는 것을 상징하는 역복(易服)을 예법에 따라 행하고, 의례를 진행할 때마다 전거를 찾는 모습은 종가가 유교식 의례문화의 보고임을 잘 알려주고 있었다. 소상과 대상 전날이 되면 유족은 물론 친지와 유림에서 음식을차려와 제문을 읽어 고인을 추모하는 기정(寄情)을 드리는 모습 역시 우리식의 전통문화임을보여주는 대목이다.
길제 참신
유교식 상례가 전통임에도 학봉선생과 서산 김흥락 선생의 봉정사와의 인연에 따라 사십구재를 지내는 모습 역시 학봉종택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해진 날짜는 어쩔수 없다고 하나 날을 잡아서 행하는 의례절차의 경우 휴일을 잡아 후손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는 전통을 현대에 적극 수용하고, 전통을 유지하는 비법처럼 보였다. 그래서학봉종택 14대 종손의 상례는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삼년상’이라 이름 붙였다. 이 보고서에는 이러한 특징을 잘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다.
견전
「화재 이우섭 삼년상」은 전주이씨 화재 이우섭의 삼년상 보고서 이다. 화재선생의 고인이 평생을 한학에 전념한 위상에 따라 유림장(儒林葬)을 하였다. 화재 선생은 신학문을 하지 않고, 평생 유학에 힘쓰셨고, 고인이 부친과 모친의 삼년상을 치렀듯이 아들 4형제가 선친의 유지에 따라 따라 삼년상을 치렀다.
이번 삼년상은 소종을 시작하는 집안의 삼년상이라는 점에서 학봉종택의 삼년상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집안에서는 「 사례편람 」 을 옆에 두고 일일이 확인하면서 의례를 하나하나 진행하였다. 물론 낙론으로서의 전통이 있긴 하였지만 고인이 둘째아들이었기 때문에 「 사례편람 」 에서 규정한 예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기때문에 교과서적으로 치러진 보기 드문 삼년상이었다.
부제
화재 선생의 상례는 양례 때에 방상시(方相氏)를 세우고, 노제를 지내며, 전문적인 선소리꾼을 내세우는 등 형식 하나하나를 갖추는 등 교과서적인 면이 강했다. 맏상주 이홍규는 사업을 잠시 그만두고, 3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친의 산소에 성묘를 하여 가히 여묘살이를 방불케 하는 근신을 겸한 생활을 3년간 지속하였다. 둘째아들은 수염과 머리를 자르지 않고 삼년상을 치러내기도 하였다. 이번 화재 이우섭의 삼년상 조사보고서는 종가가 아닌 소종가의 상례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는 물론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행상
또한 고인이 유학의 대가였기 때문에 문하생들이 많아서 문하생들이 선생을 위해 입는 심상삼년(心喪三年)
의 상복인 가마(加麻)를 직접 행한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그리고 일부 제자들이 삼년 동안 행해진 모든 의례에 빠짐없이 참가하는 모습은 현대 한국사회의 긍정적인 면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 고인이 일으킨 월봉서원을 토대로 전통적인 예법은 물론 집안의 유학적 전통을 세우고 있고, 소종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보았기 때문에 화재선생의 상례를 ‘가문의 전통을 세우기 위한 삼년상’이라 명명하였다.
한국식 천주교 장례의궤, 선종 -김수환 추기경
발인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은 천주교 장례문화와 한국의 전통상례문화가 융화되어 한국적 천주교 장례가 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창 형식의 연도, 습과 염, 명정,매장 방법, 우제, 문상시 절을 하는 모습 등은 천주교와 한국의 전통문화가 융화되어 나타난새로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장례 기간 동안 수많은 추모행렬과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사들이 보내온 메시지와 해외 언론의 취재 열기까지 당시 현장의 모습을 면밀히 기록하였다.
이번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조사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융화 된 천주교 장례문화를 알리고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소운 김시인”과 “화재 이우섭”,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 보고서는 사진으로 현장을 설명하는 영상민속학적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진 및 내용출처 :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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