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설을 고치려다 막힌 자리에서
지금까지 짚어온 문제는 결국 이거였다. 병원장례식장은 의료법의 논리에, 상조회사는 할부거래법의 논리에 갇혀 있고, 이 둘을 하나의 '장례업'으로 묶어낼 통로가 지금 제도 안에는 없다.
문제는 이 통로를 새로 뚫으려 해도 막힌다는 데 있다. 병원의 의료법 종속을 풀려면 의료법을 건드려야 하고, 상조회사의 할부거래법 종속을 풀려면 할부거래법을 건드려야 한다. 둘 다 오래된 법이고, 둘 다 각자의 소관 부처(보건복지부·공정거래위원회)가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시설과 자본을 기준으로 산업을 재편하려는 시도는, 결국 서로 다른 두 개의 거대한 법 체계와 정면으로 부딪혀야 끝나는 싸움이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시설이 아니라, 사람은 어떨까.
유일하게 파편을 가로지르는 존재
병원장례식장에도, 독립 장례식장에도, 상조회사에도, 화장·봉안시설에도 공통으로 존재하는 게 하나 있다. 장례지도사다.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파편화는 '사업 형태'의 파편화였다. 의료법, 할부거래법, 장사법이 각자 다른 사업체를 규율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례지도사는 이 사업 형태를 가로질러 존재하는 유일한 축이다. 병원 소속이든, 상조회사 소속이든, 독립 장례식장 소속이든, 이들은 모두 같은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을 갖고 같은 일을 한다.
시설을 통합하려면 서로 다른 법을 전부 뜯어고쳐야 하지만, 사람은 이미 하나의 자격 제도 아래 묶여 있다. 새로 만들 필요가 없는, 이미 존재하는 지렛대다.
미국 사례를 다시 보면 이 프레임이 더 선명해진다. 미국에서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의 이름은 "National Funeral Directors Association"이다. 장례'식장'의 협회가 아니라 장례'지도사'의 협회다. 기업 형태가 대기업 체인이든 가족 운영 소규모 업체든 상관없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조직됐다는 것이 오히려 이 협회가 압도적 대표성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였을 수 있다.
왜 사람이 먼저인가
서로 다른 자본, 서로 다른 법, 서로 다른 소관 부처를 가진 사업체들은 애초에 통합될 유인이 없다. 병원 입장에서는 장례식장이 부대사업일 뿐이고, 상조회사 입장에서는 할부거래업자 지위가 지금 당장 아쉬울 게 없다. 사업체는 스스로 통합할 이유가 없는데, 밖에서 "산업으로 묶이라"고 요구한들 움직일 리 없다.
반면 사람은 다르다. 장례지도사는 병원에서 일하든 상조회사에서 일하든, 이미 같은 이름의 자격증을 갖고 같은 일을 한다. 이들은 사업체가 아니라 직역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직역은, 사업체와 달리 스스로 뭉칠 유인이 있다. 흩어져 있으면 임금도, 근로조건도, 사회적 지위도 사업주가 정하는 대로 따라갈 뿐이지만, 하나로 뭉치면 그 조건을 스스로 협상할 힘이 생긴다.
그래서 순서는 이래야 한다. 사업체를 통합하는 게 아니라, 사업체를 가로질러 존재하는 전문직을 먼저 세운다. 그 전문직이 하나의 목소리로 뭉치면, 병원도 상조회사도 무시할 수 없는 협상 상대가 생긴다. 사업체 통합은 그다음에 오는 결과이지, 먼저 밀어붙일 원인이 아니다.
지렛대가 되려면 필요한 것
물론 지금 상태의 장례지도사로는 이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 지금 장례지도사는 자격증을 딴 개인들의 집합일 뿐, 하나의 전문직으로 서 있지 않다. 미국의 funeral director는 방부처리 자격까지 포함한 준의료급 면허이고, 주(州) 단위로 엄격하게 규제된다. 한국의 장례지도사 자격은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교육 이수 중심 자격이고, 이걸 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단일한 대표 기구도 없다.
그래서 필요한 건 두 가지다. 첫째, 장례지도사 자격을 지금보다 훨씬 무거운 전문 면허로 격상시켜, 단순한 '자격증 보유자'가 아니라 사회가 인정하는 '전문직'으로 만드는 것. 둘째, 그 전문직을 대표하는 협회를 하나로 통합해 대표성과 협상력을 확보하는 것. 이 둘이 갖춰져야 비로소 병원·상조회사의 법적 종속 구조까지 되짚어볼 힘이 생긴다.
장례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협회가 둘 이상으로 쪼개지는 현상은 사실 장례지도사만의 특수한 병리가 아니다. 한국 직능단체 전반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공인중개사 업계도 오랫동안 한국공인중개사협회(한공협)와 새대한공인중개사협회(새대한), 두 단체로 갈라져 있었다. 2022년 한공협 대의원 임시총회에서 새대한과의 통합 안건이 표결에 부쳐졌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회원 가입이 의무화된 법정단체는 복수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2025년 여야 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2026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한공협은 법정단체 지위를 되찾았다. 원래 법정단체였다가 1999년 외환위기 당시 임의단체로 전환되며 공적 권한을 잃었던 이 협회가, 27년 만에 입법을 통해 다시 단일 법정단체로 복귀한 것이다.
요양보호사 쪽은 더 심하다. 대한요양보호사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요양보호협회,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서울요양보호사협회까지, 확인되는 것만 대여섯 개 단체가 각자 활동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이라는 국가 제도와 직결된 중요한 직역인데도 대표 창구는 이렇게 흩어져 있다.
이 사례가 말해주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장례지도사협회의 분열이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 사단법인 설립 요건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한국에서는, 국회가 나서서 단수단체 원칙을 세우지 않는 한 복수단체가 난립하는 게 오히려 흔한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분열이 영원한 숙명은 아니라는 것. 공인중개사협회는 실제로 입법을 통해 통합에 성공했다. 회원 의무가입이 걸린 법정단체는 복수로 둘 수 없다는 원칙 하나가, 20년 넘게 굳어 있던 분열 구조를 실제로 무너뜨렸다.
결론
병원의 의료법 종속과 상조회사의 할부거래법 종속을 직접 풀어내려는 길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두 개의 거대한 법 체계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싸움이다. 그렇다면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다. 공인중개사협회의 선례처럼, 장례지도사를 단순한 자격증 보유자가 아니라 하나의 전문직으로 세우고, 그 전문직을 대표하는 단일한 법정단체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애초에 이런 전환이 자연스러운 이유도 있다. 병원이 소유하든 상조회사가 소유하든 장례식장은 결국 시설일 뿐이다. 그 시설에서 실제로 장례를 수행하는 것은 사람이고,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장례지도사도 사람이며, 고인을 떠나보내는 유족도 사람이다. 시설의 소유 구조가 의료법의 논리에 묶여 있든 할부거래법의 논리에 묶여 있든, 그 사이에서 장례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결정된다.
그동안 장례산업은 시설과 자본을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정작 장례를 만들어가는 사람의 자리가 지워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사람부터 세워야 한다. 장례지도사를 하나의 전문직으로 세우고, 그 전문직이 하나의 목소리로 사회와 정부를 상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문직의 힘이 병원과 상조회사조차 무시할 수 없는 협상 상대를 만들고, 그 힘이 결국 장례산업의 제도와 구조를 바꾸는 동력이 될 것이다.
산업은 그 힘으로부터 뒤따라온다. 그리고 그 산업의 중심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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