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분은 이별의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 인사다
화장장에서 내어 준 유골함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한 사람의 여든 해가 두 손에 들어오는 무게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말없이 받아 들고 천천히 문을 나섰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레 입을 뗀다. 그래서, 어디에 모실까. 봉안당으로 갈지, 선산에 뿌릴지, 바다로 보낼지를 묻는 말이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벌써 이별의 마지막 장소를 정해야 한다. 장례는 사흘이면 끝난다. 그러나 사흘이 지났다고 슬픔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장례의 일정표는 사흘로 짜여 있어도, 마음의 일정표는 그렇게 짜여 있지 않다.
한 번 뿌리면 되돌릴 수 없다
산분이 지닌 가장 무거운 성질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바람에 실린 가루는 다시 손에 담기지 않고, 물에 닿은 것은 다시 건져 올릴 수 없다. 이토록 단호한 결정을, 우리는 마음이 가장 흔들리는 때에 내리곤 한다.
슬픔의 한복판에서 서둘러 정한 일은 시간이 지나 조용해진 뒤에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 사람들은 문득 생각한다. 조금만 더 곁에 두었더라면. 뿌리는 데는 일 분이면 충분하지만, 보낼 마음이 차오르는 데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이 닿지 못한 이별은 몸이 먼저 도착해 버린 이별과 같다.
그 방에서, 한 계절만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유골을 바로 뿌리지 말고, 고인이 살던 집에서 한 계절만 모셔 두자고.
고인이 지내던 그 방에는 아직 그분의 흔적이 있다. 현관에 놓인 낡은 신발, 접어 둔 채 펼쳐진 신문, 안경테에 남은 손때, 욕실 선반의 칫솔 같은 것들이다. 사람은 떠났어도 사람이 남긴 시간은 그 집에 고스란히 머문다. 우리는 그 공간에서 비로소 고인을 천천히 기억할 수 있다. 식탁에 앉아 있다가도, 방문 앞을 지나다가도 저절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 이야기가 곧 애도다. 애도는 애써 하는 일이 아니라 기억이 머무는 곳에서 자연히 일어나는 일이다.
또 하나, 집에는 가족이 모일 이유가 생긴다. 멀리 사는 자식과 형제가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안고 돌아와, 같은 방에 둘러앉는다. 누군가는 아직 울지 못했고, 누군가는 이미 많이 울었다. 서로 다른 속도의 슬픔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시간. 한 사람만 먼저 정리하고 나머지가 뒤늦게 남겨지는 일은 그렇게 막을 수 있다.
값을 치르지 않는 애도
이 방법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봉안당 계약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날짜와 장소를 허둥지둥 잡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것은 햇빛과 습기를 피한 조용한 자리 하나, 사진 한 장, 작은 꽃 한 송이, 그리고 가족이 함께 앉을 몇 분이면 충분하다.
가장 정성스러운 방법이 가장 돈이 들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니, 이만큼 합리적인 선택이 또 있을까 싶다.

보낼 때는 가족이 안다
그렇다면 얼마나 모셔야 하는가. 정해진 답은 없다. 누군가는 마흔아홉 날이면 족하다 할 테고, 누군가는 계절이 한 바퀴 돌아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기준은 달력이 아니라 마음이다. 가족 모두가 고요히 "이제 보내드려도 되겠다"고 느끼는 날이 온다. 그 순간을 가족은 안다.
그날에 이르러 선산의 바람 속에, 혹은 먼 바다 위에 유골을 보내 드린다면 그것은 서둘러 치른 처분이 아니라, 오래 준비한 마지막 인사가 된다. 충분히 앓고 충분히 기억한 사람만이 제대로 놓아줄 수 있다. 산분이 마음에 오래 남는 이별이 되려면, 그 앞에 애도의 시간이 먼저 놓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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