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실에 나타난 낯선 가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두 달 전, 거실 창가 가장 햇살이 잘 드는 자리에 작고 정갈한 '원목 안치상자'가 놓였다. 아버지가 투병 중에도 목공소에 드나들며 직접 깎고 기름칠해 완성한 것이었다.
"이게 뭐예요, 아버지?" 아들의 물음에 아버지는 그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내 마지막 정거장이다. 내가 먼 길 떠나기 전에 여기서 일주일만 쉬다 갈 거니까, 그때 너희랑 차 한잔하려고 미리 만들어 뒀지."
그때는 농담처럼 들렸던 그 말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병원 임종실에서의 24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가족들의 가슴을 쳤다.
염습 없는 이별, 집으로의 귀환
가족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화려한 수의도, 몸을 결박하는 염습도 거부했다. 아버지는 평소 즐겨 입으시던 편안한 면 셔츠 차림으로 관에 누웠고, 화장장의 불길을 거쳐 한 줌의 순백색 가루가 되어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아들은 아버지가 미리 마련해 둔 거실의 안치상자 위에 유골함을 올렸다. 아버지는 이미 자신이 돌아올 자리를 미리 계산해 두었던 것이다.
안치상자 곁에는 아버지가 직접 고른 꽃병과 초, 그리고 낡은 '엔딩노트'가 나란히 놓였다. 장례식장의 차가운 냉장고이 아닌, 아버지가 직접 고른 나무 향이 감도는 거실에서 비로소 '진짜 장례'가 시작되었다.
3. 일주일간의 대화
그 일주일 동안, 거실은 슬픔의 공간이 아니라 기억의 정원이었다. 가족들은 안치상자 앞에 모여 앉아 아버지가 남긴 엔딩노트를 한 장씩 넘겼다.
노트에는 장례 절차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전하는 짧은 편지들이 날짜별로 적혀 있었다.
- 3일째: "진우야, 베란다 화초는 사흘에 한 번만 물을 주거라. 너무 과한 관심은 뿌리를 썩게 한단다."
- 5일째: "여보, 주방 서랍 두 번째 칸에 당신이 좋아하는 차를 숨겨뒀소. 내가 없어도 향긋하게 마셔주구려."
가족들은 노트를 읽으며 울다가 웃었고, 아버지가 설계한 안치상자 주위에서 차를 마시며 마치 아버지가 곁에 계신 듯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아버지가 가족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연착륙'의 과정이었다.
4. 안치상자 속의 마지막 비밀
일주일이 지나고 지인들을 초대한 이별 모임의 날.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아들은 안치상자 하단에 숨겨진 작은 서랍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지인들에게 나눠줄 '작은 답례품'과 함께 아버지가 미리 결제해 둔 제주도 수목장 부지의 증서가 들어 있었다.
"이 안치상자는 내 생의 마지막 설계도다. 이제 나는 너희를 떠나 바다가 보이는 언덕으로 이사를 하려 한다. 슬퍼하지 마라. 나는 이미 그곳에 내 집을 다 지어놨으니까."
지인들은 아버지가 남긴 엔딩노트의 문장들을 돌아가며 낭독했다. 소란스러운 통곡 대신, 고인의 삶을 기리는 정중한 찬사와 위로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는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 풍경을 스스로 '완성'하고 떠난 예술가였다.
다음 날, 가족들은 아버지의 유골함을 소중히 챙겨 제주도로 향했고, 아버지가 지정한 그 언덕 위에서 수목장으로 모셨다.
이제 안치상자는 아버지를 모시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의 엔딩노트와 가족사진을 보관하는 '기억의 상자'가 되었다. 거실 창가에 여전히 머무는 햇살처럼, 아버지는 그렇게 가족들의 일상 속에 영원한 정거장을 마련해 두고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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