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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의 경제학

네번째 여행

by LMS10 2011.02.2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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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프로쇼(Nicholas Frochot) - wikipedia

우리가 알고있는 '공원묘지'라는 개념은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니콜라스 프로쇼(Nicholas Frochot)'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프로쇼는 묘지에 공원기능을 결합하고 시신 1구당 1개의 묘지를 사용하게 하여 영구적인 소유권을 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개념의 '공원묘지'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 이전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교회마당 등의 장소에 구덩이를 파고 여러 구의 시신을 모아 한꺼번에 묻어버리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804년 프로쇼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파리 외곽지역에 '페르 라쉐즈(Pere Lachaise)'라는 이름의 '세계최초의 공원형 묘지'를 개업하게 됩니다.

이후 이런 현대식 공원묘지가 하나의 유행처럼 퍼져나가 영국과 유럽, 미국 등의 국가에도 넓고 경관이 좋은 장소에 '공원형 묘지'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대식 공원묘지는 주로 돈 많은 부유층과 지도층을 대상으로 타겟을 잡았는데,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사람들이 그다지 찾아주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비싼 돈을 내고 이곳에 묻혀야 되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공원묘지 사업가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죽어서 '이 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묘지의 경관이나 위치, 편의시설만으로는 부족했고 뭔가 다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이때 주목한 것이 경제학자 베블린(Thorstein Veblen)의 '비위에 거슬리는 비교(invidious comparison)'였습니다.
이는 신분상승의 욕구, 즉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나 부자, 유명인 등 죽어서 함께 묻히고 싶은 사람과 같이라면 사후에라도 그들과 동등한 신분으로 취급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일종의 '신분상승의 대리만족 심리'를 이용해 보자는 발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공원묘지 사업가들은 많은 사람들이 같이 묻히기를 원하는 '생전에 이름을 날린 유명인'들의 시신을 찾아나서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수 많은 전쟁영웅과 정치인, 예술가들의 시신이 이들의 현대식 공원묘지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엔 정부를 상대로 과감한 로비도 서슴지 않았고 심지어는 가짜 시신을 모셔와 유명인이라고 속이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페르라쉐즈에 있는 '몰리에르'와 '퐁뗀느'의 묘가 그러한 경우입니다.

페르라쉐즈에 있는 '몰리에르'와 '퐁뗀느의 묘(뒷편)'

다른 사람의 시신이 들어있는 '몰리에르'의 묘


아무튼 공원묘지 사업자들의 이런 아이디어는 적중하여, 이후로는 수많은 부르조아들이 '신분상승의 대리만족'을 위해 이들의 공원묘지에 묻히고자 줄을 이었고, 사업자들은 대를 이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당시 이들의 공원묘지로 이장되어 온 유명인들의 묘는 추후에 '유물'로 등록되어, 공원묘지가 관광명소화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세기 경제학자 베블린(Thorstein Veblen)의 '비위에 거슬리는 비교(invidious comparison)'는 현재까지도 묘지 경제학의 기본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Wikipedia백과사전', 'After the Funeral(Edwin Murphy)'을 참고로 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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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23 21:45
    이미 19세기 초에도 했던 생각을 왜 우리 묘지에는 적용을 못하고 있을까요? 모두 공원묘지라는 이름으로 아니 아예 묘지도 빼고 ㅇㅇ 공원이라하면서 공원다운 공원은 어디서도 못 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