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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가 묘지문제를 만들었다.

네번째 여행

by LMS10 2012. 5. 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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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법(葬法)이 아니라  '산재되어 있는 묘지'가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공동묘지의 형태가 만들어진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6월, '묘지 화장장 매장 및 화장 취채규칙'이 발포되면서 부터입니다. 이전까지는 주거지 인근 임야나 선산에 개인과 가족묘지, 문중묘지 형태로 산재해 있었습니다.


그당시 일본인들이 산송(山訟, 묘지 다툼)과 암장 등 여러가지 이유에서 산재되어 있는 묘를 집단화시키려고 만든 규칙인데, 풍수사상에 젖어있던 조선의 유림과 문중들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몇 곳의 공동묘지가 생겨나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래의 산재된 형태로 묘지를 조성했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언론이나 관련단체 등에서 '묘지문제'라고 거론되는 점이 바로 이 '산재되어 있는 묘지'입니다. 한 곳에 모여있으면 각 각의 묘 크기도 작고 관리와 활용도 용이하지만 여러곳에 산재되어 있으면 묘의 크기도 크고 관리가 어려울 뿐 아니라 무척이나 많아 보입니다.

한국의 묘지문제는 집단화 되지 못하고 산재되어 제각각 조성되고 관리되거나 방치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매장·화장의 장법(葬法)이 문제가 아니라 묘지의 조성형태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묘지가 집단화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풍수'에 있습니다.  


묘지가 집단화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풍수'에 있습니다. 수백년 동안 뿌리깊게 각인되어 있는 이 '풍수'의 발복신앙 때문에 산송과 암장이 끈이질 않았고 온 나라의 산림이 몸살을 앓았던 것입니다. 일이 안풀린다 싶으면 풍수가 좋은 곳을 찾아 조상의 묘를 이곳 저곳으로 이장해 가며, 발복을 기원하는 것은 윤달이면 치러야 하는 필수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풍수로 인해 우리가 묘지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상을 숭배하는 장소와 자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장소로 양분되었고, 성심을 다해 잘 보살피는가 하면 어느순간 확 파헤쳐버리고 마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묘지는 시신을 처리하는 장소이자 고인을 기리는 추모의 장소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도심 녹지조성의 대표적인 유형이 되고 있고 휴식과 명상, 산책과 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오래된 집단묘지는 숲을 지키고 가꾸어 줍니다.(美 마운트 어번 묘지Mount Auburn Cemetery) - wikipedia / 마운트어번묘지는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어 묘지가 부족하게 되자 비위생적으로 묘지를 쓰게 되어 교외에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묘지를 구상하게 되고, 의사이자 생물학자인 쟈콥 비글로우(Jacob Biglow)박사와 원예학회가 조성하게 되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산책과 피크닉을 하는 장소로 사용되었고, 묘지를 이용하는 사람 이외에 관광객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마운트어번묘지를 계기로 미국에 공공정원과 공원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집단화 된 묘지는 숲을 지키고 가꾸어 줍니다. 


한 곳에 모여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들이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서게 되고 동물들이 뛰어노는 아름다운 숲으로 변하게 됩니다. 
  

혐오니 기피니 풍수니 타령만 하고 앉아, 때만되면 파내어 없애고 돌덩이로 다시 만드는 멍청한 짓거리들을 계속 하고 있는 한, 묘지가 '숲'이 되고 '자연'이 되는 외국의 사례는 뜬구름 잡는 황당한 거짓말로 들릴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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