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삶'의 행정 뒤에 숨겨진 초라한 '죽음'의 무게

36만 명의 죽음, 그런데 담당 부서는 노인지원과
대한민국 정부는 매년 인구 문제를 국가 최우선 의제로 다룬다. 2026년 9월 10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인구전략위원회'로 몸집을 키워 다시 출범한다.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넘어 지역소멸, 인구 이동까지 인구구조 변화 전반을 총괄하는 범정부 컨트롤타워로 확대되는 것이다. 여기에 88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예산, 수십 개 부처가 동원되는 종합대책까지 붙는다. 이 나라가 '인구'라는 단어 앞에서 얼마나 진지해질 수 있는지는, 위원회를 새로 만들고 이름을 바꿔가면서까지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그런데 그 진지함은 철저히 편파적이다.
2025년 출생아 수는 25만 4,500명으로 전년보다 1만 6,100명(6.8%) 늘었고, 합계출산율은 0.80명을 기록했다. 반가운 반등이다. 그러나 같은 해 사망자 수는 36만 3,400명으로 전년보다 4,800명(1.3%) 증가했다. 출생에서 사망을 뺀 인구 자연증가는 마이너스 10만 8,900명이었다. 태어나는 사람 한 명당 죽는 사람이 1.4명이 넘는 사회. 이것이 대한민국의 실제 성적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25만 명의 탄생에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있는데, 36만 명의 죽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답은 초라하다.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관 산하 노인지원과. 장사 행정 전체가 지금도 이 한 개 과의 소관이고, 같은 과가 노인일자리 정책 결정 및 종합계획 수립까지 함께 떠안고 있다. 한 해 36만 명분의 죽음이, 노인 일자리·경로당 업무와 나란히 같은 서랍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것은 단순한 조직도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죽음을 어떤 무게로 다루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증거다.
"죽음은 노인 문제"라는 편리한 착각
행정이 이렇게 짜인 데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사망자의 다수가 고령자이니, 노인복지 부서가 다뤄도 무방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논리는 통계적 사실을 정책적 알리바이로 둔갑시킨 것에 불과하다.
죽음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산업재해로 죽는 청년이 있고, 재난으로 죽는 아이가 있고, 아무도 모르게 방 안에서 홀로 죽어가는 중장년이 있다. 이들 다수는 노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다루는 행정 체계는 여전히 '노인'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
무연고사망자, 고립사, 외국인 노동자의 객사, 재난·참사 희생자. 국가가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할 이 모든 죽음이 지금 이 순간에도 노인복지 부서의 부수 업무로 처리되고 있다.
출생은 국가전략, 죽음은 시설관리
숫자로 비교하면 격차는 더 노골적이다. 출생 정책에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 수십조 원 예산, 전 부처 종합계획이 있다. 죽음 정책은 5년 단위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으로 대표되는데, 그 핵심 내용조차 2027년까지 자연장지 14만 6,000구, 봉안시설 5만 7,000구를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시설 총량 계획이 사실상 전부다.
그 사이 사회는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갔다. 1인 가구가 늘고, 유품정리업이 산업으로 자리 잡았고, 디지털 유산 처리 문제가 새로 생겼다.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설계하려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연명의료를 스스로 유보·중단할 수 있도록 의사를 밝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35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은 이미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국가에 묻고 답을 요구하고 있는데, 국가는 여전히 화장로 대기 시간과 시설 총량 계획으로만 응답한다.
담론 없는 행정, 그래서 사고가 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조직이 아니라 철학의 부재다.
출생에는 국가적 담론이 있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어떻게 키울 것인가, 국가는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들은 예산과 제도로 번역된다.
죽음에는 그런 질문 자체가 없다. 그 방치는 이미 현실에서 구체적인 사고로 터지고 있다.
2025년 전주의 한 사설 봉안시설에서는 전 소유주와 새 소유주 간 분쟁 끝에 새 소유주가 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지 못해 시설을 폐쇄했고, 유골이 안치된 건물에 유족들이 아예 들어갈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봉안시설은 서민들이 장기간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관리가 부실하거나 폐쇄될 경우 집단 민원으로 번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공성 통제가 사실상 부재한 민간 장사시장에서, 이런 사고는 예고된 재난이지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이 방치는 실제 현장에서 훨씬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신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는 기준은 2016년 메르스 사태 이후 법으로 마련됐다. 그러나 2025년 2월 조사에 따르면, 감염병 사망자용 전용 안치 냉장고를 갖춘 장례식장은 전국 1,100여 곳 가운데 50여 곳, 5%가 채 되지 않는다. 실제로 2022년 코로나19 사망자가 몰렸을 때는 화장장 예약이 밀리면서 한 장례식장이 정육점 냉동창고를 빌려 시신을 보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9년째 지켜지지 않고, 지켜지지 않아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담론이 없다'는 말은 바로 이런 장면을 가리킨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장사정책관'이다
연간 36만 명의 죽음. 전국 수백 개 장사시설. 화장률은 이미 2024년 12월 기준 95.1%까지 올라섰다. 화장이 사실상 표준이 된 시대에, 장사 행정을 노인복지의 부속 업무로 남겨두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다.
장사 행정을 노인복지의 곁가지가 아니라 독립된 정책 영역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장사정책과 신설, 나아가 장사정책관 체계 구축을 지금 검토해야 한다. 이것은 조직 몸집을 불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죽음을 국가가 정면으로 책임져야 할 생애 마지막 정책으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이다.
환경부는 화장시설의 대기오염 관리를 더 촘촘히 맡고, 국토교통부는 장사시설 입지를 주거·산업시설과 동등한 무게로 다루고, 행정안전부는 고립사를 사회 안전망의 실패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처럼 죽음이 어느 부처에도 제대로 걸리지 않는 구조로는, 이 문제는 영원히 '노인지원과의 잡무'로 남는다.
문명은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대한민국은 출생 앞에서는 국가전략을 말한다. 죽음 앞에서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출생은 인구정책이라 부르면서, 죽음은 노인지원과의 여러 업무 중 하나로 남겨두고 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계속 같은 질문을 회피하고 있다.
죽음은 노인복지의 일부인가, 아니면 국가가 책임져야 할 또 하나의 생애정책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 그것이 장사행정 개혁의 진짜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