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례문화진흥원 통합은 장사행정의 퇴행인가

정부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을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합친다. 새 이름은 '한국노인복지개발원'이다. 명분은 공공기관 기능개혁. 유사·중복 기능을 정리해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숫자만 보면 그럴듯하다. 노인인력개발원 정원 188명에 장례문화진흥원 28명을 더하면 216명. 작은 기관 하나가 큰 기관에 흡수되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 계산에는 결정적인 항목이 빠져 있다. 28명이 떠받쳐온 국가의 죽음 행정이라는 무게다.
28명이 아니라 국가기능을 지우는 것이다
이 조직이 해온 일을 보라. e하늘장사정보시스템, 재난·재해 장례지원, 무연고 사망자 장례지원, 장사시설 종사자 교육. 하나같이 시장이 대신할 수 없는 공공기능이다. 정원이 작다는 이유로 조직을 없애면서, 정부가 정말 줄이는 것이 인건비 28명분뿐이라고 믿는다면 순진한 것이다. 줄어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전문성이다.
죽음에는 연령이 없는데, 행정은 죽음을 노인복지에 가둔다
통합기관 이름부터 문제다. '노인복지개발원'. 죽음을 노인의 일로 규정하는 순간 정책의 질문 자체가 바뀐다.
어린이도 죽는다. 산재로 청년이 죽는다. 재난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국가의 장사행정 조직은 '노인'이라는 이름 아래로 들어간다. 이름이 바뀌면 예산 순위가 바뀌고, 예산 순위가 바뀌면 현장이 바뀐다. 노인복지라는 큰 간판 밑에서 장사 업무는 결국 '여러 사업 중 하나'로 쪼그라들 것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출생 앞엔 위원회가 있고, 죽음 앞엔 사무관 한 명이 있다
대한민국은 출생을 국가전략으로 다룬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범정부 대책, 막대한 예산까지 붙는다. 그런데 한 해 36만 명이 넘게 죽고, 화장률은 이미 95%를 넘어선 이 나라에서 죽음은 여전히 행정조직의 한 과가 처리한다. 출생 앞에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있고, 죽음 앞에는 사무관 한 명이 있다. 이 한 줄이 대한민국 장사행정의 현주소다.

통합이 문제가 아니라, 격하가 문제다
기관을 합치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통합 이후 장사 기능이 어떤 위상을 갖느냐다. 장사지원센터가 독립 조직으로 남는가. e하늘은 독립적으로 관리되는가. 재난장례 전담기능은 살아 있는가. 무연고 사망자 지원은 누가 책임지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발표된 '기관 통합'은 개혁이 아니라 조직표 갈아치우기에 불과하다.
죽음의 상당 부분은 이미 시장이 맡고 있다. 장례식장도, 상조서비스도 민간이다. 그러나 시신의 안전한 안치, 화장시설 관리, 재난장례, 무연고 사망자 지원까지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시장은 수익을 좇고, 국가는 존엄을 지켜야 한다. 전문기관을 없애 이 경계가 흐려지면,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결국 시장이다.
장례는 이미 산업으로 변했는데, 행정은 아직 시설 개수만 센다
빈소 없는 장례, 자연장, 유품정리와 디지털 유산 관리까지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1인 가구의 사후처리 문제도 커지는 중이다. 그런데 정부 행정은 여전히 화장·봉안시설 개수를 세는 데 힘을 쓴다. 장사행정이 시설을 세는 동안, 사회는 이미 죽음을 새롭게 설계하고 있다. 이 시간차가 지금 한국 장사행정의 가장 큰 위기다.
지금 필요한 건 통합이 아니라 '장사정책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을 지울 때가 아니라, 이번 개편을 오히려 장사정책을 격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보건복지부 안에 무연고·고립사, 재난장례, 화장시설 안전, 봉안시설 소비자 보호, 자연장, 1인 가구 사후관리까지 총괄하는 독립 조직, 가칭 '장사정책관'이 필요하다. 환경부는 화장시설 환경을, 행정안전부는 재난·고립사를, 국토교통부는 장사시설 입지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 죽음은 한 부처가 아니라 국가 전체가 떠안아야 할 정책 영역이다.
진짜 효율은 기관 수가 아니라 이 질문에 있다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장례가 신속히 진행되는가. 재난이 터졌을 때 시스템이 작동하는가. 가족 없는 사람도 존엄한 장례를 받는가. 유골은 안전하게 보호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진짜 효율화다. 기관 하나 없애는 것보다, 국민 한 사람의 죽음을 제대로 책임지는 게 훨씬 어려운 효율화다.
이번 통합에 안전장치가 없다면 이는 명백한 퇴행이다. 반대로 장사정책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조직을 두고, 재난·무연고 장례의 국가 책임을 넓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결국 중요한 건 기관의 이름이 아니라 죽음을 어떤 정책으로 보느냐다.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사람이 혼자 죽고, 더 많은 가족이 장례를 감당하지 못할 시대가 온다. 그런데도 국가의 답이 '기관 통합'뿐이라면, 정부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장사정책은 누가 책임지는가?"
노인복지개발원의 부서 하나가 책임질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죽음을 독립된 국가정책으로 세울 것인가. 36만 명이 죽는 나라에서, 이 질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기관을 줄이는 것은 개혁의 시작일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무게까지 줄이는 순간,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퇴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