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뒤에 남는 결정권, 미국은 이걸 어떻게 법으로 풀었나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의 자기결정권을 당연하게 여긴다. 어떻게 살지, 누구와 함께할지, 몸에 관한 결정을 어떻게 내릴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 결정권이 죽음이라는 순간에 갑자기 사라지고, 그 이후의 모든 것을 법정 순위에 있는 사람이 알아서 정한다면, 삶을 스스로 결정해왔다는 그 원칙은 마지막 순간에 배신당하는 셈이 된다. 죽음 뒤에 남는 결정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결국, 삶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그 사람이 그 사람 자신으로 남을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다. 이 문제가 사소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존엄의 문제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법이 개입하기 전, 이건 원래 누구의 권리였나
미국법에서 시신을 처리할 권리는 오랫동안 일종의 준재산권으로 취급되어 왔다. 소유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처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의 권리였다는 뜻이다. 코넬 로스쿨의 법률사전은 이 권리를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어떤 관을 쓸지, 유골을 어디에 안치할지를 결정하는 준재산적 권리라고 정의한다. 전통적인 커먼로 원칙은 이 권리를 배우자에게 먼저 주고, 그 다음에 자녀에게 넘기는 순서를 따랐다. 문제는 이 순서에서 벗어난 관계, 그러니까 법률상 배우자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던 경우에는 아무런 발언권이 없었다는 점이다.
뉴욕이 이 문제를 처음 법으로 다룬 계기
이 틈을 메우기 위해 나온 것이 뉴욕주 공중보건법 제4201조다. 2006년 8월 2일부터 시행된 이 법은 그저 행정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 법안은 애초에 동성 커플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들의 요청으로 발의됐다. 법률혼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동성 동반자에게 상대방의 장례를 결정할 법적 지위를 주기 위한 법이었다. 실제로 이 법의 구조는 뉴욕주의 의료대리인 제도와 개념적으로 거의 같다. 누구를 믿고 내 몸을 맡길지 살아있을 때 정해두는 것처럼, 누구를 믿고 내 장례를 맡길지도 살아있을 때 정해두라는 발상이다.
법이 만들어지고 나니 그 효과는 애초에 이 법을 요청했던 동성 커플의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지금은 이혼 후 재혼하지 않은 사람, 오래 떨어져 산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가 있는 사람, 노년에 새로 만난 동반자와 사는 사람까지 폭넓게 이 제도를 쓴다.
주마다 다른 형식, 같은 목적
뉴욕은 서명과 증인 두 명을 요구하지만 다른 주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적을 이룬다. 버지니아는 공증된 문서와 지정받는 사람의 서면 수락을 함께 요구한다. 아이다호는 부동산을 넘길 때와 같은 수준의 공증을 요구하거나, 의료위임장 대리인이 이 권한을 자동으로 겸하도록 허용한다. 워싱턴주는 아예 증인 한 명의 입회만으로 서면이 효력을 갖도록 문턱을 낮췄다. 위스콘신은 증인 두 명이나 공증인 중 하나만 있으면 된다. 켄터키는 2016년 법 개정을 통해 지정받은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은 물론, 본인이 살아있을 때 스스로 화장을 사전 승인할 수 있는 조항까지 뒀다.
결정권에서 그치지 않고 서류까지 이어지는 경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몇몇 주는 결정할 권리와 그 결정을 실행할 행정 권한을 하나로 묶어놨다는 것이다. 워싱턴주 법은 유체처분권을 가진 사람에게 사망보고서를 직접 작성하고, 이를 이틀 안에 의료증명인에게 제출하고, 지역 등록기관에 신고하고, 매장이나 이송에 필요한 허가서까지 발급받을 권한을 준다. 메릴랜드주는 지정된 대리인이 장의사 역할을 겸할 경우 사망증명서의 장례서비스업자 서명란에 직접 서명하는 것도 허용한다. 사망을 의학적으로 확인하고 최초 진단서를 쓰는 일 자체는 어느 주에서든 여전히 의사나 검시관의 몫이다.
지정서가 없을 때 벌어지는 일
지정서를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면 법정 순위가 그대로 작동하고, 이때 다툼이 벌어진다. 1999년 뉴저지주에서 있었던 셔먼 대 셔먼 사건이 대표적이다. 숨진 아버지와 사 년째 별거 중이던 아내가 장례를 주관하겠다고 하자, 성인 자녀들이 이를 막아달라며 법원에 갔다. 자녀들은 부모가 맺었다는 양육 관련 합의를 근거로 자신들에게 더 큰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결론은 명확했다. 별거 중이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배우자의 법적 우선순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뉴저지주 법이 정한 순서, 즉 고인의 의사, 배우자, 자녀 순의 원칙을 법원은 그대로 지켰다.
같은 순위에 있는 사람들끼리 다툴 때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성인 자녀가 여럿이거나 형제자매가 여럿인 경우, 법에는 이들 사이의 우선순위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뉴저지 법원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한 적이 있다. 누가 고인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지, 누가 사망 당시 고인과 가장 가까웠는지, 누가 고인의 종교적 신념을 더 존중할 사람인지, 누가 유산관리인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인지를 살펴서 판단한다는 것이다. 결국 법이 하는 일은 결정권자를 정하는 게 아니라, 고인이 살아있었다면 무엇을 원했을지를 최대한 추정하는 일이라는 게 이 판례들의 공통된 메시지다.
사망증명서 한 줄이 대법원까지 간 사건
이 문제가 얼마나 무거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13년 오하이오주에 살던 제임스 오버거펠과 존 아서는 이십 년 가까이 함께 산 연인이었다. 아서가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자 두 사람은 동성결혼이 합법인 메릴랜드로 비행기를 타고 가 활주로 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문제는 오하이오로 돌아온 뒤였다. 오하이오주는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서가 숨을 거두면 사망증명서에는 그가 미혼으로, 오버거펠은 배우자가 아닌 남으로 기록될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오하이오주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담당 판사는 아서가 사망할 경우 사망증명서에 배우자 관계를 인정하라는 임시 명령을 내렸다. 아서는 2013년 10월 22일 세상을 떠났고, 법원 명령 덕분에 그의 사망증명서에는 오버거펠이 배우자로 기재됐다. 이 소송은 이후 다른 주의 소송들과 합쳐져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고, 2015년 오버거펠 대 하지스 판결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장례나 유체처분권 그 자체를 다툰 사건은 아니지만, 사망 이후 누구를 내 곁에 있던 사람으로 공식 기록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실제로는 결혼이라는 훨씬 큰 법적 지위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관계는 살아있을 때뿐 아니라 죽은 뒤 서류 한 장에서도 지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사건만큼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드물다.
남는 질문
미국의 접근이 완벽한 건 아니다. 증인이나 공증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급하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법정 순위에 속한 가족들끼리 감정적으로 얽힌 다툼이 벌어지면 법원이 개입해도 상처는 남는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보여주는 원칙은 분명하다. 누구에게 내 마지막을 맡길지는 혈연이 자동으로 정해주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살아있을 때 밝혀둘 수 있는 문제이며, 그 결정이 실제로 힘을 가지려면 결정권뿐 아니라 그 결정을 실행할 서류상의 권한까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