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에게 땅을 얼마나 오래 허락할 것인가

신석기 시대의 집단무덤에서 이스라엘의 수직묘지, 브라질의 고층 묘지, 영국의 리프트 앤 딥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질문에 도달한다. 죽은 사람에게 한 번 내어준 땅을 얼마나 오래 사용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시작은 신석기 시대였다
기원전 4500년경 유럽에서는 이미 하나의 무덤을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 사용하는 관습이 나타났다. 스페인 부르고스의 알토 데 레이노소 거석무덤에서는 바닥에서 완전한 유골 6구와 부분 유골 6구가 확인됐고, 그 위에는 이후 다른 방식으로 추가 매장된 유해들이 놓여 있었다. 연구진은 이 무덤이 약 100년, 대략 3세대에 걸쳐 사용된 것으로 본다. 유럽 신석기 후기의 집단무덤은 기원전 4천년기 초반 널리 확산됐으며 단순한 흙무덤에서 대형 통로형 무덤까지 형태도 다양했다.
프랑스의 롱배로우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발견된다. 일부 무덤은 최초 매장 이후 다시 열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후대의 매장을 위해 기존 유해가 이동하거나 재배치된 사례도 확인된다. 이를 현대의 적층식 매장과 직접 잇는 계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한 번 마련한 죽은 자의 공간을 여러 세대가 반복해서 사용하는 발상 자체가 매우 오래된 것임은 분명하다. 죽음은 한 번이지만 묘지는 한 번만 사용되는 공간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집트, 좁은 갱도에 여러 관을 넣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여러 사람을 하나의 공간에 안치한 사례가 나타난다. 사카라 네크로폴리스에서는 후기 시대의 지하 수직 갱도에서 여러 개의 관이 층층이 놓인 사례가 대량으로 발견됐다. 과거처럼 개인을 위해 거대한 무덤을 따로 만드는 대신, 하나의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을 수용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적층이 아니다. 제한된 공간 안에 더 많은 죽음을 수용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점이다. 묘지가 넓어질 수 없다면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옆으로 넓히거나 위아래로 사용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여러 사람을 한 무덤에 묻는 방식이 있었다
한국의 고분에서도 여러 사람을 한 무덤에 안치하는 여러널묘와 집단묘, 부부합장묘 등의 형태가 확인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이러한 묘제가 사회적 지위와도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상위 신분층이 독립된 묘실을 사용하는 동안 하위 신분층에서는 하나의 공간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형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의 묘지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합장과 집단매장은 경제적 조건뿐 아니라 가족관계와 장례 관습, 시대적 변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동일한 원리는 발견된다. 한정된 묘지 공간을 여러 사람이 공유했다는 사실이다.
중세 유럽, 무덤은 다시 열렸다
중세 유럽에서도 하나의 무덤을 세대를 거쳐 반복해서 사용하는 관행이 흔했다. 먼저 묻힌 사람의 유골이 후대 매장 과정에서 이동하거나 다른 유골과 섞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한 사람당 한 무덤이라는 개념과 상당히 다르다. 당시 묘지는 개인의 영구적인 사유 공간이라기보다 공동체와 가족이 세대를 거쳐 공유하는 장소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적층이나 재사용은 단순한 공간 절약의 기술만은 아니었다. 먼저 죽은 사람과 나중에 죽은 사람을 같은 공간에 놓음으로써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를 묘지에 남기는 방식이기도 했다.
프랑스, 묘지를 지하와 벽으로 압축하다
근대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보다 규격화된 형태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것이 까보다. 지하에 콘크리트로 만든 매장실을 설치하고 그 안에 여러 개의 관을 수용한다. 관을 흙에 직접 묻는 대신 구조물 안에 넣기 때문에 한정된 면적을 여러 세대가 사용할 수 있다. 까보에도 여러 형태가 있어, 관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배치하는 방식부터 여러 관을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까지 다양하며 별도의 구조물 없이 흙 속에 관을 층층이 매장하는 방식도 존재한다.
또 하나는 앙프다. 지상에 설치된 매장 구획으로 하나 또는 여러 관을 수용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교회와 성당 등의 벽면이나 내부에 만들어진 매장 공간에서 비롯됐으며 오늘날에는 특히 프랑스 남부 등에서 볼 수 있다.
까보와 앙프가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 묘지를 평면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땅을 계속 옆으로 확장하는 대신 지하와 벽면을 이용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스라엘, 종교와 토지 부족이 만나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절박하다. 화장이 종교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인구가 집중된 지역의 묘지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기존 평지 매장을 고밀도 수직 매장으로 전환하는 다양한 방식이 개발됐다.
텔아비브의 야르콘 묘지는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 묘지의 토지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수직 구조물을 활용하고, 하르 하메누호트 묘지에서도 벽면에 매장 공간을 층층이 배치하는 방식이 사용된다. 부부를 한 공간에 위아래로 매장하는 방식도 활용된다.
이스라엘에서 흥미로운 점은 기술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매장 방식은 유대교의 할라카, 곧 종교법과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산헤드린 매장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했다. 고대 예루살렘의 매장 전통을 현대적으로 응용해 시신을 벽면의 매장 공간에 안치하는 방식이다. 즉 이스라엘의 적층식 매장은 단순한 토지 절약 기술이 아니라 토지의 한계와 종교적 규범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사회적 타협이다.
브라질, 묘지가 마천루가 되다
브라질 상파울루주 산투스의 한 묘지는 32층 규모의 고층 건축물이다. 넓은 땅에 무덤을 펼쳐놓는 대신 건축물 자체를 묘지로 만든 것이다. 이 시설이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높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매장, 화장, 유골 안치, 추모 기능을 하나의 복합시설 안으로 결합했다는 점에서다.
이는 한국에도 질문을 던진다. 묘지는 반드시 하나의 장례방식만을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리프트 앤 딥, 하나의 기법이 여러 나라에서
무덤을 없애지 않고 다시 쓰는 나라들도 있다. 새 건물을 짓거나 무덤을 위로 쌓는 대신, 이미 있는 무덤을 열어 그 안에서 공간을 다시 확보하는 방식이다. 기존 유해를 더 깊이 옮기고 그 위에 새로운 매장 공간을 만드는 이 기법을 영국에서는 리프트 앤 딥이라 부른다.
영국에서는 75년 이상 된 무덤을 대상으로 이 방식을 쓴다. 유해를 발굴해 더 깊게 재굴착한 뒤, 필요하면 새 관에 담아 아래쪽에 다시 묻고, 비워진 위쪽 공간에 새로운 시신을 매장한다. 다만 이 방식이 영국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18세기 중반 지금과 같은 시립묘지가 도입되기 전까지 영국 교회 묘지에서도 수백 년간 같은 방식을 써왔고, 유럽 여러 나라와 호주에서도 흔하게 쓰인다.
호주에서는 주마다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남호주는 사용권이 만료되고 연고자를 찾을 수 없으면 부지를 재사용하는데, 이때도 기존 매장을 무덤 아래쪽으로 옮기고 그 위에 새로운 매장을 들이는 영국과 똑같은 방식을 쓴다. 다만 서호주는 조금 다르게, 깊이를 더하는 대신 기존 매장들 사이 빈 공간에 새로운 매장을 끼워 넣는 변형을 쓴다.
포르투갈의 많은 묘지도 같은 기법을 일상적으로 쓴다. 기존 유해를 일시적으로 꺼내 무덤을 더 깊게 판 뒤 바닥에 다시 넣고, 그 위에 새로운 시신을 올리는 방식이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매장권을 영구적으로 부여해 재사용이 드물지만, 일부 주는 상당히 긴 절차를 거쳐 통상 75년에서 100년 후 지자체가 부지를 회수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뉴올리언스의 가족묘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작동한다. 최소 1년이 지나면 다음 가족 구성원을 위해 무덤을 다시 열 수 있는데, 이때 기존 유해는 깊이 파묻는 대신 아래쪽 보관함으로 쓸어 넣는다. 방향은 다르지만 기존 유해를 아래로, 새 매장을 위로 배치한다는 점에서 같은 원리다.
이렇게 보면 리프트 앤 딥은 영국만의 발명품이 아니다. 같은 구덩이 혹은 같은 무덤 안에서 기존 유해의 위치를 조정해 공간을 다시 확보한다는 하나의 원리가, 영국과 호주 남부, 포르투갈, 미국 일부, 뉴올리언스까지 여러 나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 시한을 정했지만 아직 순환시키지는 못했다
한국은 이미 묘지를 무한정 점유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했다. 2001년 1월 13일 이후 조성된 묘지를 대상으로 한시적 매장제도를 도입했는데, 처음엔 15년에 3회 연장이었으나 개장 후 화장이라는 법 적용에 어려움이 있어 30년에 1회 연장으로 돌려막았다. 이대로 가면 30년이 다시 60년으로 늘어나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는 중요한 변화이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한계다. 한국의 묘지는 원칙적으로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게 됐지만, 매장기간을 제한하는 것과 묘지를 재사용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간이 지나 분묘를 정리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 곧바로 다른 사람을 매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묘지의 정리와 새로운 매장공간으로의 전환 사이에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법적, 행정적 절차가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의 제도는 지금까지 언제 묘지를 끝낼 것인가에는 답했지만, 끝난 묘지를 어떻게 다시 사용할 것인가에는 충분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국과 호주, 포르투갈이 써온 리프트 앤 딥이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31년이면 시한부 매장 기간이 처음으로 만료되는 무덤이 한꺼번에 몰린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한 신고 대상만 64만 5천여 기이며, 신고되지 않은 무연분묘까지 합치면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법대로라면 이 무덤을 전부 개장해서 화장하고 봉안해야 한다.
현실성이 없는 계획이다. 실태조사에만 2,221억 원이 소요되고, 그 많은 무덤을 실제로 개장해서 화장, 봉안하는 비용은 수조 원 단위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력도, 예산도, 시간도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그런데도 법은 여전히 개장 후 화장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첫 만료 시한을 2주 앞둔 2015년 12월에 15년이던 사용 기한을 30년으로 급하게 늘린 전례가 있다. 기한이 되면 개장해서 화장하겠다는 원칙을 세워놓고도 정작 그 시점에서 집행하지 못해 기한 자체를 연장한 것이다. 2031년에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이번에도 땜질로 60년까지 돌려막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리프트 앤 딥은 선택지가 아니라 대체안이다. 개장해서 화장, 봉안하는 대신 기존 유해를 더 깊이 옮기고 그 위에 새 매장(자연장)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화장장을 더 짓지 않아도 되고, 봉안시설을 새로 확충하지 않아도 된다. 무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를 그대로 되돌려 쓰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이 방법은 억지로 강제할 필요조차 없다. 산재된 무연고 묘지는 토지 소유자가 필요에 따라 알아서 파묘한 뒤 더 깊이 묻어 자연으로 돌려놓을 것이고, 공원묘지는 운영 주체가 새로운 수입원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설 것이다. 정부가 수조 원을 들여 화장, 봉안을 강제하지 않아도 시장과 현장이 이미 움직일 유인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2031년의 위기 앞에서 필요한 것은 개장 후 화장이라는 원칙을 계속 연장해서 돌려막는 일이 아니다. 개장 후 화장 대신 파묘 후 더 깊게로 정책의 기본값 자체를 바꾸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에 필요한 답이다.
층층이 쌓인 죽음이 말해주는 것
신석기 시대의 집단무덤에서 고대 이집트의 다중 매장, 프랑스의 까보와 앙프, 이스라엘의 수직묘지, 브라질의 묘지 마천루, 영국과 호주, 포르투갈의 리프트 앤 딥까지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사례들은 서로 달라 보인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하나의 공통된 문제가 있다. 땅은 유한하고 죽음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죽은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공간을 마련해도 그 공간을 영원히 늘릴 수는 없다. 그래서 인류는 옆으로 넓히고, 아래로 파고, 위로 쌓고, 벽에 넣고, 다시 파고, 다시 사용해왔다.
결국 미래의 묘지를 결정하는 것은 건축기술만이 아니다. 죽은 자에게 한 사람당 얼마만큼의 땅을, 그리고 얼마 동안 허락할 것인가 하는 선택이다. 한국은 이미 매장기간을 제한하는 데까지 왔다. 이제 다음 단계의 질문을 던질 때다. 묘지를 없애는 것에서 끝낼 것인가, 아니면 한 번 사용한 묘지를 다시 다음 세대에게 돌려줄 것인가. 어쩌면 미래의 묘지는 더 많은 땅을 확보하는 곳이 아니라 이미 있는 땅을 여러 세대가 순환해서 사용하는 시스템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