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노트

죽은 뒤에 읽히는 희망은 너무 늦다

다비코 2026. 10. 4. 20:08


혼자 죽는 사람의 마지막 뜻을 일본과 영국은 어떻게 실행하게 했나

지난 글의 정 모 씨는 마지막 뜻을 흰 봉투에 적어 현관 서랍에 넣어 두었다. 그 봉투가 읽힌 것은 그가 숨진 뒤였다. 죽은 뒤에 읽히는 뜻은 이미 한 발 늦다.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도 같은 벽이 제도의 출발점이 됐다. 시청 직원들은 홀로 숨진 노인의 유품에서 메모를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장례비를 어렵게 모아 두었지만, 그 돈을 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뜻은 남았는데 실행할 사람이 없었다.

요코스카는 2015년 7월 질문을 거꾸로 세웠다. 죽은 사람의 뜻을 뒤늦게 찾는 대신,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마지막을 직접 정하게 하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필요한 것은 받아 주는 곳이 아니라 맡겨 두는 곳이다

이 글은 가족 없는 죽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다루지 않는다. 혼자 살고 혼자 죽기를 받아들인 사람이 자기 뜻을 실행할 사람을 어떻게 세울 수 있느냐를 묻는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마지막에 시신을 받아 주는 공공만이 아니다. 죽기 전에 이름을 올려 둘 실행자가 필요하다. 각국의 답은 이 지점에서 갈린다. 본인이 살아 있을 때 정하게 하는 나라가 있고, 사망 뒤에 법이 책임을 정하는 나라가 있다.

첫 번째 답: 살아 있을 때 정한다

요코스카, 상담에서 계약까지

요코스카시에는 혼자 사는 고령자가 1만 명을 넘는다. 신원이 알려졌는데도 유골을 가져갈 사람이 없는 경우가 해마다 50건에 이른다. 시가 만든 '엔딩플랜 서포트 사업'의 구조는 단순하다.

시가 협력 장례사를 소개한다. 본인은 그 장례사와 생전에 장례와 납골을 맡기는 계약을 맺는다. 비용은 시를 거치지 않고 본인이 장례사에 직접 낸다. 시는 계약 내용을 지원 플랜으로 정리해 보관하고, 안부 확인 방문을 하며, 입원이나 입소 같은 국면마다 정해 둔 관계기관에 연락한다. 연명치료에 관한 뜻(리빙윌)도 원하면 함께 보관한다.

대상은 원칙적으로 독거이고 의지할 친족이 없으며, 월수입 18만 엔 이하, 예금 250만 엔 이하, 고정자산 평가액 500만 엔 이하 정도의 고령자 등이다. 시는 이 원칙에 맞지 않아도 질병이나 장애 같은 사정이 있으면 상담해 달라고 안내한다.

대상을 이렇게 잡은 것은 설계의 일부다. 방치하면 어차피 묘지매장법 제9조에 따라 공공이 처리하게 될 시민을 겨냥했다. 계약은 민간이 맡고, 계약이 무너져도 마지막은 공공이 받친다.

효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2023년 보도에 따르면 등록자 124명 중 52명이 이미 숨졌고, 생전에 희망한 대로 장례가 치러졌다. 이 사업이 없었다면 장례 없이 시가 화장했을 사람들이다.

고베, 시가 이행까지 확인한다

고베시는 2024년 6월 3일 같은 이름의 사업 상담 접수를 시작했다. 요코스카와 다른 점은 시의 역할이 계약의 끝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 상담원이 계약에 입회하고, 장례사에 맡긴 예치금의 보관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본인이 숨지면 계약대로 장례와 납골이 이뤄졌는지 시가 확인한다.

문턱도 낮췄다. 대상은 시민이고, 대체로 65세 이상이며, 장례를 부탁할 친족이 없는 사람이다. 친족이 있어도 관계가 소원해 기댈 수 없다면 포함된다. 생활보호 수급자는 제외된다. 시작할 때 있던 소득·자산 요건과 36만 엔의 계약액 상한은 2025년 개정으로 계약액 상한이 없어졌고, 현재 공식 안내의 대상 요건에는 소득·자산 조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널리 퍼지지 않았다

한 조사에서 엔딩노트를 나눠 주는 일본 지자체는 300곳 가까이였다. 요코스카식 생전 계약이나 정보 등록 가운데 하나라도 하는 곳은 20곳 미만이었다. 대다수 지자체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에야 행정이 움직인다.

그 결과가 숫자에 나타난다. 2023년도에 일본 지자체가 인수자 없이 화장하거나 매장한 시신은 4만 1,969명으로 추정되고, 전체 사망자의 2.7%다. 이 숫자에는 신원불명자뿐 아니라, 신원은 알려졌는데 친족이 인수하지 않은 경우도 들어 있다.

민간 시장의 위험도 있다. 가족을 대신해 사후 사무를 맡는 종신서포트 사업이 커지면서 예치금을 둘러싼 분쟁이 이어졌고, 일본 정부는 2024년 6월 사업자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생전 계약형의 약점은 결국 맡긴 돈과 약속이 죽은 뒤에도 지켜지느냐에 있다.

두 번째 답: 법이 사후에 책임을 정한다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근거는 공중보건(질병관리)법 1984 제46조다. 지방정부는 관할 구역에서 사망했거나 발견된 사람의 시신에 대해, 다른 적절한 처리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매장하거나 화장해야 한다. 기준은 거주지가 아니라 사망 장소다. 비용은 고인의 재산에서 회수할 수 있다.

이 제도에서 눈여겨볼 것은 고인의 뜻을 찾는 방식이다. 지방정부는 고인의 집을 수색해 유언이나 친족 정보, 장례에 관한 선호를 찾는다. 법에는 화장이 고인의 뜻에 반하는 경우 매장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다만 이 안전장치는 모두 사망 뒤에 작동한다. 본인이 실행자를 미리 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남은 흔적에서 뜻을 추정하는 구조다. 가족이 장례를 맡으면 지방정부는 나서지 않는다. 가족이 먼저고 공공이 나중이다.

미국 일부 카운티와 호주 수도준주(ACT)도 가족이 없거나 장례비를 낼 사람이 없는 죽음을 공공 프로그램으로 처리한다. 호주 수도준주는 경찰이 먼저 친족을 찾고 그래도 없으면 공공신탁관리청이 맡는 순서를 법에 적었다. 이 모델들은 공공이 마지막에 받친다는 점에서 영국과 같은 계열이다.

한국의 첫걸음, 부산의 사전장례주관자 지정

한국에서 이 질문에 가장 가까이 간 곳은 부산이다. 부산시는 2025년 2월 17일 '사전장례주관자 지정 사업'을 시작했다. 동구와 남구에서 먼저 운영하던 방식을 16개 구·군으로 넓힌 것으로, 광역시도로는 처음이다.

구조는 이렇다. 신청자는 장례를 맡길 사람과 함께 거주지 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신청서를 쓴다. 신청서에는 장례주관 희망자, 부고를 알릴 범위, 종교, 장례 일수, 안치 방법을 적을 수 있다. 내용은 복지 정보시스템(행복e음)에 등록되고 구·군이 관리한다. 사망하면 지자체가 지정된 주관자에게 연락해 부고와 희망한 장례 방식을 전하고, 그에 맞춰 공영장례를 진행한다.

법적 근거는 장사법 제12조 제2항이다. 본인이 사망 전에 서명한 문서나 유언으로 지정한 사람이 장례를 주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청서 한 장으로 쉽게 쓸 수 있게 바꾼 것이다. 이전에는 무연고 사망자가 나오면 지인이 직접 사망 소식을 확인해야 했고, 고인의 장례 의향도 미리 알기 어려웠다.

요코스카와 닮은 점은 살아 있을 때 정해 두고, 죽은 뒤에는 지자체가 연락한다는 점이다. 다른 점도 분명하다. 확인한 자료에는 본인이 장례사와 계약하거나 비용을 미리 내는 절차가 나오지 않는다. 지자체가 공영장례로 진행하는 구조다.

한계도 있다. 신청 대상은 부산 시민 중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기초연금 대상자로 한정된다. 사업도 '무연고자'를 위한 것으로 소개된다. 정 모 씨처럼 동생이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소개 자료만으로 알 수 없다.

갈림길은 네 곳이다

선택권.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 실행자를 정할 수 있는가. 일본의 두 도시와 한국의 부산이 앞서 있지만 모두 소수의 실험이다.

대상. 가난하거나 무연고여야만 문이 열리는가. 재산이 있고 가족이 있어도 열리는가. 지금의 제도는 대체로 앞쪽에 서 있다.

권한. 정해 둔 사람이 시신을 인수하고, 사망진단서를 신청하고, 화장을 결정할 수 있는가. 한국은 장사법 제12조 제2항으로 지정한 사람이 장례를 주관할 길을 열었지만, 연고자를 확인해 무연고로 확정된 뒤에야 열린다. 의료법상 사망진단서 신청 자격 문제도 남아 있다.

돈과 약속. 맡긴 돈과 약속이 죽은 뒤에도 지켜지는가. 요코스카는 본인이 장례회사에 직접 선납하게 하고, 고베는 시가 보관 상태와 이행을 확인한다.

한국도 연고자가 없으면 지자체가 시신을 처리한다. 부산은 그 위에 살아 있을 때 뜻을 등록하는 첫 문을 얹었다. 그렇다면 이 문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가. 혼자 죽기를 택했지만 가족도 재산도 있는 사람의 봉투는 어디에 맡길 수 있는가. 정 모 씨의 흰 봉투가 서랍이 아니라 어딘가에 등록되어 있었다면, 그의 마지막은 다르게 시작됐을지 모른다.

죽은 뒤에 읽히는 희망은 늦다. 살아 있을 때 받아 줄 곳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