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장례식

두 개의 장례식
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두 아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형은 장례식장에서 사흘을 보냈다. 빈소를 지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절을 받고, 발인 절차를 준비했다. 아버지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빈소를 찾았고, 형은 그들을 맞았다. 동생은 그 자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자취방에 향을 피우고, 아버지가 좋아하던 노래를 틀었다. 사진 앞에 밥 한 그릇을 올려놓고, 장례가 진행되는 사흘 동안 매일 같은 시간 혼자 아버지를 생각했다. 두 사람은 같은 아버지를 잃었지만, 아버지를 보내는 방법은 달랐다.
동생은 장례지도사였다. 수많은 빈소에서 유족을 만나고, 조문객을 안내하고, 장례 절차를 진행해온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장례를 잘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장례가 유족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조문객을 맞고, 같은 인사를 반복하고, 장례와 관련된 수많은 결정을 내리는 동안 유족은 정작 고인과 조용히 작별할 시간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빈소가 북적일수록 장례를 잘 치른 것처럼 여겨지고, 찾아온 사람의 수가 고인의 인간관계를 대신 평가하는 기준처럼 사용되는 모습도 그는 수없이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부모의 장례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했다. 공식적인 장례 절차와 빈소는 형에게 맡겼다. 자신은 사람들 앞에서 상주 역할을 하는 대신, 혼자 아버지를 기억하는 시간을 선택했다. 형은 그 선택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아버지의 장례를 앞두고 동생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흘을 보냈다.
문제는 장례식장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형에게 물었다. "동생은 안 왔습니까?" 처음에는 짧게 대답했다. "사정이 있어서요." 그러나 같은 질문이 반복되면서 설명하는 일 자체가 부담이 됐다. 동생이 왜 오지 않았는지 설명하는 것은 결국 동생의 선택을 대신 해명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곤란함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운함이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분노가 됐다. 형에게 동생의 불참은 단순한 장례식 불참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가족으로서 함께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자신은 사흘 동안 빈소를 지켰는데, 동생은 자신의 방에 있었다. 자신은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하며 아버지를 보냈는데, 동생은 그 모든 것을 형에게 맡겨버렸다. 형에게는 그것이 불공평했다. 동생에게는 형의 장례가 지나치게 형식적이었다. 서로는 상대방의 애도를 인정하지 않았다. 형은 동생에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 장례인데'라고 생각했고, 동생은 형에게 '장례식장에 있는 것만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슬퍼했지만, 결국 슬픔보다 서로에 대한 판단이 더 오래 남았다.
장례식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지만, 가족에게 장례는 그때부터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발인을 마친 다음 날 밤, 형은 거실 탁자에 부의금 봉투 뭉치를 꺼내놓고 하나씩 열어 액수를 적어 내려갔다. 방명록에 적힌 이름과 봉투 속 액수를 맞춰보는 그 작업을, 형은 혼자 했다. 동생에게 전화해 같이 정리하자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동생도 먼저 묻지 않았다. 그렇게 부의금은 형의 손을 거쳐 형의 통장으로 들어갔고, 아버지가 남긴 예금과 작은 아파트의 명의 이전 절차도 형이 주도했다. 법무사를 만나고, 서류를 준비하고, 등기소를 오가는 일들이 전부 형의 몫이었다. 동생은 그 과정에서 서명이 필요할 때만 몇 차례 연락을 받았고, 그때마다 별다른 이의 없이 도장을 찍었다. 형은 그것을 동생이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돈을 두고 형과 다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처음으로 형제 사이에 벌어진 일이 장례였는데, 그 장례를 두고 다시 돈과 재산까지 다투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장례식장에 없었던 것에 대한 형의 분노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그래서 감내했다. 부의금도, 재산도. 동생에게 그것은 단순히 돈을 포기하는 일만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관계까지 돈 때문에 완전히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이 마음을 지나치게 아름답게만 볼 수는 없다. 침묵은 관계를 지키려는 선택인 동시에, 자신의 정당한 몫조차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이기도 했다. 형은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에게는 동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장례를 자신에게 맡겼고, 그 결과 자신이 모든 책임을 떠안았다는 생각이 남았다. 결국 두 사람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정리하면서도 정작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나누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단순히 형과 동생 중 누가 옳았는지를 묻는 이야기로 읽으면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형에게 장례는 고인을 둘러싼 사람들이 함께 작별하는 자리였다. 아버지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족은 그들을 맞으며 아버지의 죽음을 공동체 안에서 확인한다. 전통적인 상례가 지녔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것이었다. 죽음은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도 함께 그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니 형에게 조문객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었고,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었을 수도 있다. 형이 빈소를 지킨 것을 단순히 체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를 주고, 가족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에게 사흘 동안 빈소를 지킨 것은 귀찮은 의무가 아니라 아버지를 보내는 방식이었을 수 있다.
반대로 동생의 선택도 무책임이나 회피로만 볼 수 없다. 그에게 장례는 오랫동안 반복해서 보아온 직업적 장면이기도 했다. 유족이 조문객을 맞느라 고인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모습, 장례를 치르는 동안 정작 슬퍼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모습을 그는 너무 많이 보았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에게만큼은 다른 시간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향을 피우고, 사진을 놓고, 밥 한 그릇을 올리고, 아버지가 좋아하던 노래를 듣는 시간. 그것은 공식적인 장례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장례의 형식을 내려놓고, 자기 방식으로 아버지와 작별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형의 장례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의례였다면, 동생의 의례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고인에게 집중하는 의례였다. 하나는 관계를 넓혔고 다른 하나는 관계를 좁혔다. 하나는 공동체 앞에서 죽음을 확인했고 다른 하나는 혼자 죽음을 받아들였다. 어느 쪽만 진짜 애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직 두 가지 방식을 똑같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빈소에 찾아오고, 상주가 자리를 지키고, 조문객이 많으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제대로 된 장례'라고 생각한다. 반면 아무도 오지 않는 방에서 사진 한 장을 놓고 고인을 기억한 사람에게는 묻는다. "장례는 치렀어?"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가족에게는 다시 묻는다. "가족인데 왜 안 왔어?" 장례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애도의 진정성까지 의심하는 시선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동생은 자신의 슬픔을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슬픔은 원래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울어야 슬픔이 풀리고, 누군가는 혼자 있어야 비로소 울 수 있다. 누군가는 많은 조문객에게 위로받고, 누군가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인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애도의 방식은 원래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장례의 형식은 오랫동안 그것을 하나의 틀 안에 넣어왔다.
그렇다고 동생의 선택을 아름다운 저항으로만 그려서도 안 된다. 그에게도 대가는 있었다. 형과의 관계를 잃었고, 가족 안에서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를 감수해야 했다. 부의금과 아버지의 재산을 둘러싼 문제에서도 자신의 몫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선택한 애도 방식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형제 관계까지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동생은 그것을 감내했다. 그러나 그것이 형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고, 동생의 선택을 완전히 옳은 것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형은 동생의 불참 때문에 상처받았고, 동생은 형이 자신의 애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 때문에 상처받았다. 형은 자신이 장례를 책임졌다는 이유로 부의금과 재산에 대한 주도권을 가졌고, 동생은 그 과정에서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은 돈을 나누는 문제에서는 침묵으로 셈을 끝냈으면서도, 정작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는 서로의 몫을 조금도 인정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한국의 장례문화가 마주하고 있는 변화와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빈소를 크게 차리지 않거나 가까운 가족만 참석하는 장례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비용과 절차에 대한 부담도 이유지만, 가족 중심으로 조용히 작별하고 싶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는 대신 고인의 사진과 유품을 둘러보며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장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례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장례를 잘 치렀다는 말이 조문객의 수나 빈소의 규모와 쉽게 연결됐다면, 이제는 유족이 고인과 충분히 작별했는지, 가족에게 필요한 시간이 보장됐는지도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공동체의 장례가 사라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고인을 보내는 장례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장례가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유일하게 정상적인 장례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두 형제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형과 동생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다. 같은 시대에 살면서도 장례를 다르게 이해했다. 형에게 장례는 아버지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였다. 조문객의 발걸음은 부담이면서도 아버지가 혼자 살다 간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 표시였을 수 있다. 동생에게 장례는 외부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아버지와 단둘이 머무는 시간이었다. 그에게 조용함은 무관심이 아니라 집중이었고, 빈소에 나타나지 않는 일은 애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일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면 형은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네가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야. 그런데 그 자리에 네가 없으니까 나 혼자 아버지를 보내는 것 같았어." 동생은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를 보내고 있었어. 다만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혼자 있는 자리에서였어." 형은 다시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나한테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 동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을 것이다. "그랬어야 했어."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미 장례는 끝났고, 부의금도 정리됐고, 재산도 나뉘었으며, 형제 사이의 상처도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서로의 애도가 존재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장례는 고인을 위한 의례이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공동체가 함께 작별하는 장례가 필요한 사람도 있고, 가족끼리 조용히 고인을 기억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어느 한쪽만을 진정한 애도로 규정하는 순간 장례는 다시 유족의 필요보다 사회의 기준을 앞세우게 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장례를 없애는 법이 아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슬퍼하는 사람의 애도도 애도로 인정하는 법이다.
형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동생도 자기 방식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애도를 인정하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를 잃은 뒤 두 사람이 잃은 것은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형은 동생을 잃었고, 동생은 형을 잃었다.
어쩌면 이것이 장례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장례의 형식을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슬퍼하는 사람의 슬픔도 슬픔이라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은 혼자 감당해야만 진실한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 앞에 드러내야만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장례는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애도는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 서로 다른 애도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