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엔딩

"장례식에도 안 왔는데 무슨 유산이야"

다비코 2026. 8. 1. 13:22

 

"장례식에도 안 왔는데 무슨 유산이야"

 

빈소에서 가장 차가운 말, 그리고 법과 감정이 가장 크게 충돌하는 순간

 

아버지가 병원에 누워 계신 지 3년이 넘었다.

 

큰형은 그 3년 동안 매주 병원을 오갔다. 

 

막내는 달랐다. 명절에나 얼굴을 비칠 뿐, 평소에는 연락조차 뜸했다. 그래도 큰형은 몇 번이고 동생에게 아버지의 상태를 전했다.

 

"한번 다녀가라"는 말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큰형은 곧바로 동생에게 부고를 전했다. 장례 일정도 빠짐없이 알렸다. 하지만 삼일장 내내, 발인까지 동생은 끝내 오지 않았다.

 

 

발인을 하루 앞둔 저녁, 빈소에는 어머니와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고모와 외삼촌, 사촌들까지 자리를 채웠다. 상복을 입은 어머니는 영정 앞에서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한참 조문객이 뜸해진 시간, 고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정리도 해야 하지 않겠니. 집이랑 통장이랑... 막내는 언제 온다니?"

 

큰형의 표정이 굳었다.

 

"안 와요. 안 올 거예요."

 

"그래도 자식인데 연락은 해봤어?"

 

"부고도 보냈고, 발인 날짜도 다 알렸어요. 그런데 삼일 내내 코빼기도 안 비쳤어요. 그런 놈이 유산은 왜 받아야 하는데요?"

 

외삼촌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그래도 법적으로는 자식 몫이 따로 있다더라. 온 자식, 안 온 자식 나누는 게 아니라던데."

 

"법은 그렇다 쳐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큰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장례식에도 안 왔는데 무슨 유산이야."

 

빈소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사촌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고, 고모는 한숨을 삼켰다.

 

그때까지 말이 없던 어머니가 낮게 입을 열었다.

 

"그만들 해라. 아버지 앞에서."

 

그 한마디에 방 안의 목소리들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도 저마다의 억울함과 서운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장례지도사들은 말한다. 이런 다툼은 생각보다 흔하다고.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 돈 때문에 싸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돈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싸움은 '누가 마지막까지 부모 곁에 있었는가'를 둘러싼 인정의 싸움이다.

 

몇 년 동안 병원을 오가며 간병한 자녀가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를 돌본 사람도 있다. 병원비를 대신 낸 사람도 있다. 그런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정작 장례식조차 오지 않은 형제도 법 앞에서는 똑같은 상속인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간병했던 가족은 돈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견뎌온 시간이 이렇게 쉽게 같은 무게가 되는 건가.'

 

그 억울함이 먼저 올라온다. 그래서 빈소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장례식에도 안 왔는데 무슨 유산이야." "부모 마지막도 안 지킨 사람이 자식이냐." "유산은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장례식 참석 여부와 상속권은 별개의 문제다. 부모의 임종이나 장례를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상속권이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빈소에서 이 사실을 듣고 더 화를 내는 가족도 적지 않다.

 

"법은 그렇다 쳐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바로 그 지점에서 법과 감정은 가장 크게 충돌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부모의 죽음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중심축 하나가 사라지는 사건이다. 가족은 갑자기 불안해지고, 그 불안은 누군가를 향한 분노로 바뀌기 쉽다. 연락하지 않았던 형제는 그 분노를 모두 떠안기 가장 쉬운 대상이 된다.

 

그래서 빈소에서 오가는 말은 상속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인정받지 못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나는 몇 년을 병원에 다녔다." "나는 부모님 손을 마지막까지 잡고 있었다." "그런데 왜 똑같은 자식이냐."

 

이 말의 끝에는 늘 같은 질문이 숨어 있다.

 

'내 희생은 누가 인정해 주는가.'

 

그날 밤, 다들 지쳐 말을 아끼고 있을 때 어머니가 다시 한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희 아버지가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하실 것 같니."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그 한마디에 빈소의 공기가 조금 달라지는 순간이 있었다.

 

큰형은 여전히 화가 나 있고, 막내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법도 변하지 않는다. 상속권도 그대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한 가지 사실만큼은 인정하게 된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싸우는 이유는 결국 유산이 아니라, 부모를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책임졌는지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어쩌면 장례식은 재산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평생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가장 거칠게 쏟아지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마음은 종종 상속보다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