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여행

장례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나라들

다비코 2026. 10. 27. 04:44

마지막 길 앞에서 공공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이들은 슬픔 속에서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한다. 사망신고를 하고, 빈소를 마련하고, 시신을 모시고, 마지막 인사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모든 절차가 슬픔보다 먼저 계산서의 모양으로 다가온다.

장례는 누구에게나 한 번뿐인 일이지만, 장례비는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다가오지 않는다. 가족의 형편이 넉넉한 사람에게 장례비는 감당할 수 있는 지출일 수 있다. 반면 홀로 살아온 사람이나 소득이 낮은 가정, 연고가 끊긴 사람에게 장례비는 남은 가족의 생계를 흔드는 벽이 된다.

그래서 여러 나라는 장례를 온전히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세금과 사회보장 재정, 지방정부 예산을 통해 최소한의 장례를 보장한다. 장례를 치를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필요한 비용을 보태거나, 지방정부가 직접 장례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영국 Kensal Green Cemetery


영국과 뉴질랜드, 화장료까지 보태는 국가들

영국에는 Funeral Expenses Payment라는 제도가 있다. 일정한 복지급여를 받는 저소득층이 장례를 주관할 때 신청할 수 있는 지원이다. 특정 묘지의 매장료뿐 아니라 화장 비용과 의사 확인서 비용, 시신 운구비도 지원 대상에 들어간다. 장례지도사 비용이나 관, 꽃과 같은 다른 장례비에는 별도의 한도가 적용된다.

이 지원이 장례 전체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망자의 유산이나 보험금처럼 다른 재원이 있다면 지원액은 줄어들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마지막 절차를 포기하지 않도록 국가가 한 걸음 개입하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는 별도의 Funeral Support Payment를 운영한다. 성인뿐 아니라 아동과 사산아의 매장·화장 비용 일부도 지원한다. 지원금은 유족에게 지급될 수도 있고 장례업체로 직접 전달될 수도 있다. 슬픔에 잠긴 가족이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또 다른 빚을 떠안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뉴질랜드에도 Funeral Grant가 있다. 사망자의 유산과 유족의 재산만으로 합리적인 장례비를 마련하기 어려운 경우 신청할 수 있다. 장례지도사 비용, 관, 운구비, 매장비와 함께 화장료도 지원 항목에 포함된다. 2026년 6월 기준 최대 지급액은 2,697.43뉴질랜드달러로, 약 203만 원에 해당한다. 실제 지급액은 소득과 자산, 가족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 장제부조와 화장장 감면을 함께 운영하는 나라

일본은 공공부조 안에 장례 지원을 분명하게 담아둔 나라다. 생활보호제도에는 장제부조가 포함되어 있다. 도쿄도의 2024년 안내를 보면 성인 기준 장례비는 21만5,000엔 이내이며, 화장 비용이 일정액을 넘을 경우 초과분을 추가로 인정할 수 있다. 운구와 시신 보존에 필요한 비용도 조건에 따라 더해진다.

일본의 특징은 장례비 지원과 화장장 사용료 감면이 함께 작동한다는 점이다. 아이치현 야토미시는 생활보호법상 보호를 받던 사망자에 대해 화장장 사용료를 전액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례비를 현금으로 보조하는 것과 공공시설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지만, 남은 가족에게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마지막 이별 앞에서 돈 때문에 멈춰 서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독일 라이프치히(Leipzig)의 남부묘지(Südfriedhof Leipzig)


프랑스와 독일, 감당할 수 없는 장례를 공공이 책임지다

프랑스에서는 유족의 자원이 충분하지 않으면 사망 장소의 지방자치단체가 장례비를 부담한다. 장례업체는 지방정부가 선정하고, 유족의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지는 시장이 판단한다. 고인이 화장을 원했다면 지방정부는 화장을 진행할 수 있다.

프랑스의 방식은 유족에게 일정액을 송금하는 제도와는 조금 다르다. 지방정부가 필요한 장례를 직접 조달한다.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거나 비용을 낼 사람이 없는 경우에도, 한 사람의 죽음이 행정의 빈틈 속에 남겨지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독일 역시 사회법 제12권 제74조를 통해 비용 부담 의무자에게 장례비를 내도록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필요한 장례비를 사회부조로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비용은 고급 장례나 선택적인 서비스를 뜻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답게 떠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례비다.

독일이 전국적으로 화장장 사용료를 일률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도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공공부조가 작동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 둔 것은 분명하다.

캐나다와 미국, 지방정부가 빈틈을 메우다

캐나다는 연방정부가 하나의 제도를 운영하기보다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각자의 방식으로 장례 지원을 마련하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사망자의 유산과 책임 있는 가족이 비용을 낼 수 없을 때 Burial or Cremation Supplement를 제공한다.

화장료와 유골함, 납골공간, 기본 장례업체 서비스와 운송비가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생활지원 수급자가 아니더라도 조건을 충족하면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부담한 비용은 사망자의 유산이나 책임 있는 사람의 재산이 확인될 경우 회수될 수 있다.

온타리오주에서도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은 거주 지역 지방자치단체에 장례·매장·화장 비용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장례업체와 계약하기 전에 신청해야 하며, 관과 유골함, 묘지와 서비스에는 일정한 한도가 있다. 공공의 지원은 무제한의 선택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마지막 절차를 가능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시 사례가 눈에 띈다. 뉴욕시 인적자원청은 저소득 사망자의 매장, 화장, 화장 유골 매장에 최대 1,700달러를 지원한다. 장례비가 일정 기준을 넘는 경우에는 묘지와 개장, 화장 비용을 계산에 반영한다.

미국 전체에 적용되는 하나의 전국 제도는 아니다.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각자 다른 기준과 한도로 운영하는 분권형 제도다. 그러나 지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공이 죽음 이후의 최소한의 절차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호주 퀸즐랜드에서는 가족이나 친구가 장례를 주선하거나 비용을 낼 수 없고, 사망자의 유산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 주정부가 간소한 화장이나 매장을 직접 주선할 수 있다. 유족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라기보다 공공기관이 최소한의 장례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마지막 길의 차이를 줄이는 일

해외 사례를 두고 국가가 장례비를 대신 내준다고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영국과 뉴질랜드는 현금급여에 가깝고, 일본은 장제부조와 화장장 감면을 함께 운영한다. 프랑스와 퀸즐랜드는 지방정부가 장례를 직접 마련한다. 독일은 필요한 장례비를 사회부조로 부담하며, 캐나다와 미국은 지역에 따라 지원의 폭이 달라진다.

그러나 이들 제도에는 공통점이 있다. 공공이 부담하는 것은 화려한 장례가 아니라 최소한의 장례다. 화장료와 운구비, 관과 유골함처럼 장례를 성립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은 돕되, 고급 시설이나 선택적인 의식까지 모두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는 장례를 무료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의 경제력에 따라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지나치게 달라져도 되는지 묻는 일이다. 누구도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죽음 이후까지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해외 여러 나라의 제도는 그 손길을 가족에게만 맡기지 않는다. 전면적인 무료 장례 대신,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최소한의 장례와 화장의 기회를 보장한다.

장례비 지원은 결국 돈에 관한 정책이면서 존엄에 관한 정책이다. 마지막 길에서만큼은 가난이 사람의 이름보다 먼저 불리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공공이 맡아야 할 가장 조용하고도 인간적인 책임일 것이다.

 


※ 참고자료

영국 정부, Funeral Expenses Payment
[https://www.gov.uk/funeral-payments](https://www.gov.uk/funeral-payments)

스코틀랜드 정부, Funeral Support Payment
[https://www.mygov.scot/funeral-support-payment](https://www.mygov.scot/funeral-support-payment)

뉴질랜드 사회개발부, Funeral Grant
[https://www.workandincome.govt.nz/products/a-z-benefits/funeral-grant.html](https://www.workandincome.govt.nz/products/a-z-benefits/funeral-grant.html)

도쿄도, 생활보호 안내서
[https://www.fukushi.metro.tokyo.lg.jp/documents/d/fukushi/2024tebiki06](https://www.fukushi.metro.tokyo.lg.jp/documents/d/fukushi/2024tebiki06)

일본 야토미시, 화장장 사용료 감면 신청서
[https://www.city.yatomi.lg.jp/_res/projects/default_project/_page_/001/005/534/genmensinsei.pdf](https://www.city.yatomi.lg.jp/_res/projects/default_project/_page_/001/005/534/genmensinsei.pdf)

프랑스 정부, 화장 및 장례비 안내
[https://www.service-public.fr/particuliers/vosdroits/F1558](https://www.service-public.fr/particuliers/vosdroits/F1558)

독일 법령, 사회법전 제12권 제74조
[https://www.gesetze-im-internet.de/sgb_12/__74.html](https://www.gesetze-im-internet.de/sgb_12/__74.html)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정부, Burial or Cremation Supplement
[https://www2.gov.bc.ca/gov/content/governments/policies-for-government/bcea-policy-and-procedure-manual/general-supplements-and-programs/burial-cremation-supplement](https://www2.gov.bc.ca/gov/content/governments/policies-for-government/bcea-policy-and-procedure-manual/general-supplements-and-programs/burial-cremation-supplement)

온타리오 주정부, 장례·매장·화장 비용 지원 안내
[https://www.ontario.ca/page/arrange-funeral-burial-cremation-alkaline-hydrolysis-or-scattering](https://www.ontario.ca/page/arrange-funeral-burial-cremation-alkaline-hydrolysis-or-scattering)

뉴욕시 인적자원청, Burial Assistance
[https://www.nyc.gov/site/hra/help/burial-assistance.page](https://www.nyc.gov/site/hra/help/burial-assistance.page)

퀸즐랜드 검시법원, Funeral Assistance
[https://www.coronerscourt.qld.gov.au/for-families/funeral-assistance](https://www.coronerscourt.qld.gov.au/for-families/funeral-assist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