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는 있지만, ‘장례산업’은 없다

대한민국은 왜 장례를 산업으로 키우지 못했나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장례는 단 하루도 멈추지 않는다. 매년 수십만 건의 장례가 치러지고, 수조 원 규모의 시장이 움직인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아직 장례를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장례는 존재하고 장례를 하는 기업도 존재하지만, 장례를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국가의 인식과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장례문화가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을 해 온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한국 장례의 가장 큰 문제는 장례를 담당하는 핵심 주체들이 하나의 산업 생태계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병원장례식장은 의료기관의 부대사업으로 운영된다. 병원장례식장은 병원이 운영하는 의료기관 체계 안에 편입되어 있으며, 운영과 수익 역시 병원 경영의 일부로 관리된다. 장례서비스를 독립된 서비스 산업으로 발전시키기보다 의료기관 운영 논리가 우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상조회사는 더욱 기형적이다. 국민은 상조회사를 장례 전문기업으로 인식하지만, 법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상조회사를 규율하는 법은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이며, 법적 지위는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다. 감독 기관도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다. 기업이 제공하는 것은 장례서비스지만, 국가가 관리하는 대상은 장례산업이 아니라 선불식 거래다. 기업은 장례서비스의 혁신보다 선수금 관리와 지급여력 유지, 소비자 보호를 우선적으로 요구받는다.
결국 병원장례식장은 의료의 논리로, 상조회사는 금융거래의 논리로 관리된다. 국민은 하나의 장례서비스를 이용하지만, 국가는 그것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지 않는다. 장례를 구성하는 핵심 주체들이 서로 다른 법과 행정체계 속에 흩어져 있으니 산업 전체를 바라보는 정책도, 장기적인 발전 전략도 만들어질 수 없다.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에는 산업정책이 존재하기 어렵다. 산업은 단순히 시장 규모가 크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이 이루어지고, 기술이 축적되며, 표준이 만들어지고, 전문 인력이 양성되고, 기업과 학계, 정부가 함께 미래를 설계할 때 비로소 산업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장례는 오랫동안 산업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되어 왔다. 죽음과 관련된 영역이라는 이유로 규제와 행정의 틀 안에만 머물렀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육성하려는 산업적 접근은 사실상 부재했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거대한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장례산업의 연구개발은 활성화되지 못했고, 산업 통계조차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않았다. 기술 표준과 서비스 표준도 미흡하며, 전문 인력 양성 역시 산업 발전 전략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병원장례식장의 수익은 병원 운영으로 흡수되고, 상조회사는 할부거래업의 재무 건전성을 우선적으로 관리한다. 각각의 기업은 자신의 영역에서 경쟁하지만, 산업 전체를 성장시키는 생태계는 형성되지 못한다.
세계는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장례는 더 이상 장례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디지털 추모 플랫폼, 온라인 애도 서비스, 친환경 장례, 생분해 장례용품, AI를 활용한 디지털 유산 관리 등 이른바 '데스테크(Death-Tech)'가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국제협회는 기술과 정책을 공유하고, 각국의 장례산업박람회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하며 투자와 협력을 이끌어 낸다. 장례는 복지의 영역인 동시에 미래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해외에서 등장한 서비스를 뒤늦게 도입하는 데 머물러 있다. 이는 기업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혁신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산업을 키우는 정책이 없는데 산업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씨앗도 심지 않고 수확을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내에 장례산업박람회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다. 박람회는 단순한 전시행사가 아니다. 산업이 스스로 성장하는 플랫폼이다. 기업은 신기술을 발표하고, 연구자는 표준을 제안하며, 투자자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한다. 산업이 있는 곳에는 박람회가 생기고, 박람회는 다시 산업을 성장시킨다. 그러나 한국은 장례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산업을 대표하는 협회도, 산업 발전을 논의하는 플랫폼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물론 한국에도 장례문화와 장사정책을 지원하는 기관은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은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운영과 장사정책 연구, 교육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할은 장사 행정과 문화 진흥에 집중되어 있다. 병원장례식장의 구조, 상조회사의 법적 지위, 장례산업의 연구개발과 국제 경쟁력, 산업 생태계 조성까지 책임지는 산업정책의 컨트롤타워는 아니다.
장례는 국민 누구나 반드시 이용하는 필수 서비스다. 그럼에도 어느 부처도 장례산업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고, 어느 정책도 장례산업의 혁신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관리하는 부처는 있지만 육성하는 부처는 없다. 규제는 있지만 산업 전략은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 장례가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이유다.
장례를 산업으로 육성하자는 것은 죽음을 상업화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산업으로 인정해야만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비용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며, 기술 개발과 표준화를 통해 국민에게 더 나은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다. 장례가 국민 모두를 위한 공공적 서비스라면, 그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산업적 기반 역시 국가가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장례를 의료의 부속사업이나 선불식 거래의 한 유형으로 바라보는 낡은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례서비스를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인정하고, 산업 분류와 정책 체계를 정비하며, 연구개발과 전문 인력 양성, 국제 교류와 산업박람회까지 연결하는 종합적인 산업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장례를 상업화하는 길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더 품격 있고 더 투명한 마지막 서비스를 제공하는 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 서비스를 이용한다. 장례는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고, 그 시장도 충분히 크다. 부족한 것은 시장이 아니라 국가의 시선이다. 대한민국 장례가 뒤처진 이유는 기업이 없어서도, 기술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장례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하고 미래를 설계하려는 국가의 정책과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